*take a trekking

[스크랩] [해외 트레킹] 중국 운남성

인천싸나이 2009. 9. 18. 15:31
 
[해외 트레킹] 중국 운남성
 
운남성 茶馬古道를 가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중국 서남부의 운남성, 사천성에서 티벳을 거쳐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육상 교역로다.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했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길이가 약 5,000km에 이르며 평균 해발고도 4,000m 이상의 높고 험준한 길이다.


또한 고봉의 설산(雪山)들과 금사강(金沙江), 란창강(瀾滄江), 노강(怒江)의 협곡이 조화를 이루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이 길을 따라 교역하던 상인조직을 마방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도로가 많이 건설되었지만 아직도 일부가 활동하고 있다.


 

 ▲ 하얗게 눈이 쌓인 길라야 고갯마루에서 하산하는 답사팀.

5월8일, 우리는 차마고도 상의 산행을 하기 위해 오후 10시 곤명(昆明)으로 출발했다. 기내에서 피곤함에 한잠 자고나니 어느덧 도착(현지 시각 새벽 1시)이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형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대리(大理)로 가는데, 중도에서 대형화물차의 충돌사고로 도로가 막혀 버린다. 차속에서 밤을 지새운 우리는 오전 10시에 대리에 도착하여 호텔에 투숙할 수 있었다.


대리는 백족(白族)자치주로 인구가 330만 명으로 인근에 19봉의 창산(蒼山)이 병풍처럼 서있고, 면적 240㎢의 이해(?海)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석재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리석이다.  


호텔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화사한 날씨 속에 나비공원인 호접천, 백족 엄씨 고택의 민속공연과 삼도차 시음, 삼탑, 대리고성 등을 둘러봤다. 산행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는데, 랜턴용 부탄 가스통은 어디서도 구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곳 교민 김봉준씨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2개를 얻을 수 있었다.


▲ (좌)벽라설산의 길라야 고개에서 바라본 백망설산.(우)길라야 고개에서 본 벽라설산 줄기.

5월10일 오전6시, 창문을 열어 보니 창산에 구름이 덮여 있고 이슬비가 내린다. 오늘은 고속도로로 보산(保山)으로 가다 란창강 IC로 빠져 육고(六庫)까지 가서 노강을 거슬러 북쪽의 공산(貢山)까지 가는 일정이다. 오전 7시30분 출발하여 란창강 IC에 이르니 란창강대교 공사로 9월20일까지 통행금지다. 할 수 없이 보산 방향으로 직진하여 노영(老營)으로 빠져 우회했다.


조간(漕澗)에서 점심을 먹고 해발 2,600m 언덕을 넘어 내려가기를 두어 시간, 화개현 검문소가 나타난다. 무장한 군인이 차에 올라 여권을 수거하여 가지고 가더니 한참이나 시간을 끈다. 아마도 티벳 소요사태 때문에 검문이 심한 것 같다. 별탈없이 검문소를 지나니 제법 큰 건물들이 나타나는데 리수족 자치구인 노수현 육고(六庫)다. 이곳부터 오른쪽으로 노강을 끼고 공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거리는 248㎞로 7시간 정도 소요된다.


노강은 중국 남서지구를 흐르는 강으로 상류는 티벳의 당고랍(唐古拉·탕구라)산맥에서 발원하여 나곡(那曲·나취)을 거쳐 반바 부근에서 운남성으로 들어오며, 미얀마 국경쪽의 고려공산(高藜貢山)산맥과 반대편의 횡단(橫斷)산맥의 깊은 협곡을 남하하여 덕굉(德宏·더훙) 남단에서 미얀마로 나가는데, 그 하류는 사르윈강이 된다. 중국 내의 강 길이만 1,540km다. 육고에서부터 공산까지 가다 보면 현수교와 외줄로 강을 건너는 유삭(溜索)을 중간 중간 볼 수 있다.


▲ 운무에 가린 벽라설산의 장중한 모습.

오후 3시40분 육고를 출발한 우리는 고등(古登)을 거쳐 복공(福貢)에 도착했다. 잠시 편의점에 들러 간식과 음료수를 사고 다시 출발이다. 1시간 후,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 도착한 곳이 석월량(石月亮) 전망대. 3,300m 높이로 삐죽삐죽 솟은 바위산에 뚫린 큰 구멍이 마치 산에 달이 걸쳐 있는 모습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재촉해 노강제일담을 거쳐 목적지인 공산에 밤 10시30분에 도착했다.
 


계획보다 훨씬 험한 길로 산을 넘다
5월11일, 공산은 노족(怒族), 독룡족(獨龍族) 자치구로 쾌 큰 편이다. 조식 후 시내에서 휘발유를 구입해 산행기점인 적마락(迪麻洛·디마루)으로 들어간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니 왼쪽으로 유명관광지인 독룡강 협곡으로 가는 입구가 보이고, 노강을 따라 직진을 하다보니 봉당(捧)이 나타난다.


봉당를 조금 지나니 차량통행이 가능한 현수교가 나타나는데, 이곳을 건너 우회전해 강을 거슬러 오르다 좌측 계곡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적마락으로 가게 된다. 현수교를 건너지 않고 계속 직진하여 올라가면 국가공원인 병중락(丙中洛)이다.


통행료 100위안을 주고 철교를 건너는데 생각보다 튼튼하다. 적마락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이다 보니 차가 고생을 많이 한다. 차 바닥이 불거진 흙에 끼어 모두가 내려 차를 밀고 당기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수량이 풍부한 적마락촌 계곡으로 들어섰다.
고생 끝에 도착한 적마락촌(디마루·1,680m)은 수량이 많은 하천을 끼고 30여 호의 가옥이 있는 마을로 인근 주변의 인구수는 3,000여 명으로 모두가 천주교 신자란다. 드디어 도착한 곳이 알루오스 게스트하우스(Aluo’s Guesthouse)로 목조건물인데 비교적 깨끗한 것이 마음에 든다.


▲ 공산현 봉당향에서 적마락으로 들어가는 길에 놓인 노강의 출렁다리.

저녁식사 후 산행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 이곳을 기점으로 하는 산행코스는 적마락~영지하(永芝河) 코스와 적마락~자중(茨中) 코스가 있는데, 등반시즌은 4월 하순에서 11월 중순까지고 겨울시즌에도 날씨가 허락한다면 가능하단다. 이 두 코스 모두 노강쪽에서 산을 넘어 란창강으로 내려선다.


우리는 당초 영지하 코스를 계획했으나 그쪽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이다. 마을간 분쟁이 있어 위험하다는 말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영지하 코스보다 난이도가 높은 자중 코스로 결정했다. 애초에 말로 짐을 운반하려고 했으나 산에 눈이 많이 쌓여 포터를 고용하기로 했다. 포터 한 사람이 짊어지는 무게가 20㎏으로 한정되어 10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산행기간은 4일, 1일 150위안, 총 6,000위안으로 합의를 보니 계약금 10%, 잔금 90%를 지불하기로 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예전에 홍콩팀이 와서 잔금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분쟁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1년에 대여섯 팀이 오는데 주로 중국과 홍콩팀이다. 한국인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 (좌)야영장에서 바라본 노강 중기 넘어 고려공산 산맥.(우)산행을 마치고 일행 모두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가게 아주머니도 동참했다.

5월12일. 마당에서는 포터들이 저울을 갖다놓고 정확히 20㎏씩 분배하여 짐을 꾸리고 있다. 이들은 장족, 이수족, 노족들로 구성되어 짐을 지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오전 8시30분 출발했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자마자 바로 급경사 산길로 접어드는데 벌써 숨이 찬다. 한 30분 오르고 잠시 쉬는데 반대편 길에서 수십 필의 말이 등에 짐을 메고 목에 단 종을 울리며 올라온다. 이때 산 위쪽에서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코흘리개 녀석들이 서너 명 달려 내려온다. 가방을 맨 것이 학교에 가는 모양인데 비탈길을 비호같이 뛰어 다닌다. 산 위 마을에서 적마락(1,680m)의 학교까지 가는 녀석들을 보니 고향의 옛 모습을 보는 듯하여 향수가 일어난다.


오전 10시, 1811년에 세워져 국가보호유물로 지정된 백한락(白漢洛) 교당(2,370m)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여자들은 모두 일하러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나이 많은 촌로가 손자를 업고 서성이고 있다. 설산에서 녹아내리는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마을 뒤편의 십자가 꽂힌 무덤군을 지나 해발 2,680m 지점에 이르렀다. 좌측으로 고려공산, 우측으로는 웅장한 벽라설산 지맥이 보이는데 만년설에 뒤덮여 있다.


오전 11시40분 해발 2,860m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먹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아프기 시작한다. 약간의 감기증세에 고소증으로 식욕이 없어 라면 한 공기로 때우고 다시 올라간다. 이 시점이 다음날 알았지만 사천성 대지진이 일어난 때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몇 시간을 오르니 너와집(대피소)이 보이고 일찍 도착한 포터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오후 3시30분에 산행이 끝났다. 이곳이 오늘의 야영지(3,300m)라는 말에 반가운 마음도 잠시 머리가 굉장히 아파 그늘에 깔판을 깔고 드러누워 버렸다. 서둘러 텐트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해도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새벽에는 제법 많은 비도 내렸다.

 

밤마다 내리는 비와 만년설의 한기
5월13일.
비는 멎고 안개가 자욱하다. 어제 초저녁부터 잠을 자서 그런지 머리가 맑다. 새벽 비에 일부 텐트가 약간 침수되었으나 젖은 텐트를 말릴 짬도 없이 짐을 꾸렸다. 9시에 출발해 고도를 높이니 고산지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나뭇가지에는 이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한 나무 너머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현지의 아루오 대장이 간간히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산행분위기를 북돋우고 고소적응을 위해 자주 쉬게 한다.


▲ (좌)란창강 주변에서 소떼를 몰고 산길의 고개를 넘어 고산 목초지로 이동하고 있다. (우)현지 포터들이 산행 중에 메고 갈 짐을 저울로 재고 있다.

오전 10시30분 해발 3,600m 지대에 당도하니 물기를 머금은 안개가 산을 거슬러 올라오는데 10여m 앞을 보기 힘들다. 이곳부터는 원시림의 수목지대로 만년설이 뒤덮어 있는데 적설량이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수목지대의 설사면을 지나 마라구 언덕(4,000m)에 도착했다. 앞에는 내일 넘어야 할 거대한 설산이 버티고 있는데, 계곡마다 떨어지는 길고 긴 폭포들이 가히 장관이다.


잠시 시장기를 간식으로 달래면서 쉬고 있는데 포터들이 자기 짐 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큼직한 비닐로 비나 눈이 올 때는 우의로, 밤에 잘 때는 침낭으로 사용하는 다목적 장비다. 이번에는 눈썰매를 타려고 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워낙 경사가 심해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데, 이 친구들은 ‘야호!’를 외치며 눈썰매를 타고 내려간다.


 나도 우의의 뒷면을 가랑이 사이로 끌어 올리고 앉으니 거침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런 고산에서 눈썰매를 타고 하산하는 재미를 느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눈썰매가 끝나고 다시금 원시림 사이의 완만한 눈길을 구불구불 돌아 내려갔다. 오후 2시30분, 고도계를 보니 3,500m다. 너와집이 눈에 덮여 지붕 일부만 겨우 보였다.


다시 급경사 내리막인데다 눈 덮인 산죽지대라 매우 미끄럽다. 아루오 대장이 앞장서고 중간에 포터들이 포진하여 우리들을 붙잡고 내려가는데 갑자기 희재 아우가 산죽에 걸려 앞으로 엎어지면서 미끄러진다. 포터와 내가 엉겁결에 잡았으나 가속도에 우리들도 덩달아 넘어지면서 미끄러지는데, 다행히도 밑에 있던 아루오의 저지로 큰 추락을 모면할 수 있었다. 모두들 놀란 가슴을 쓸어 담았다.


아루오는 옆쪽에서 포터들이 늘 소지하고 다니는 커다란 무쇠칼로 눈을 쪼아 길을 만들고 있다.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잠잠했던 머리가 다시 아파온다. 무사히 설사면을 통과하여 질퍽한 흙으로 범벅이 된 너덜지대를 내려왔다.


포터들은 벌써 멀리 보이는 협곡 속의 분지에 도착하여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오후 4시30분, 맑은 하천이 흐르는 사이와룸바 야영지(3,200m)에 도착했다. 허기가 몰려온다. 오늘은 점심을 먹지 않고 산행했는데, 가이드는 내일도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이유를 물어보니 적게 먹는 것이 이곳에서 움직이는 데 훨씬 좋다고 한다.
텐트를 치고 모닥불 옆에 젖은 배낭, 등산화, 옷 등을 걸어 놓고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후 모닥불 주변에 둘러 앉아 포터들이 춤과 노래로 분위기를 띄웠다. 우리도 노래 한 곡 들려주니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다. 즐거운 저녁이었다.


▲ (좌)길라야 고개 꼭대기에 올라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행.(우)적마락 마을의 천주교회당.

보기에도 아찔한 고산설원의 봅슬레이
5월14일. 오늘은 앞쪽에 버티고 있는 설산을 넘어야 하는 일정이다. 오전 8시 어제보다 1시간 빨리 출발이다. 하천을 끼고 상류로 조금 오르니 빙하 밑으로 엄청난 물이 흘러나온다. 이 빙하를 조심스럽게 우회전하여 급경사의 눈길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얼마나 올랐을까? 얼굴이 따갑기 시작한다. 뒤늦게 선블럭을 챙기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오르는 길이 미끄러워 위험도 하지만 모두들 고소증에 숨소리가 거칠다. 정말이지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다. 앞서가는 문일 선배는 평상시에 보약을 많이 먹었는지 말없이 올라가는데, 뒤에 오는 영태 형님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튀어 나온다. 그런데도 이곳 친구들은 장쾌하게 노래를 하는데 그나마 위안이 된다.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차갑다.


오후 1시, 야영지를 출발한 지 5시간만에 드디어 정상인 길라야령(4,230m)에 도착했다. 멀리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설산 연봉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세찬 바람을 피해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단무지에 주먹밥을 먹는데 도무지 넘어가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루오 대장의 손짓에 포터들이 짐을 메기 시작하고 우리에게도 주의를 당부한다. 눈에 반사되는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급경사 눈길을 우회하여 하산하기 시작한다. 눈 속에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일행들은 잔뜩이나 긴장하는 눈치다. 조금더 내려가니 우리가 섣불리 갈 수 없는 곳이다. 너무 경사가 심해 다들 머뭇거린다.


포터들이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한 사람씩 손을 잡고 건너가는데 마음이 조마조마 하다. 그런데도 이런 곳에서 또다시 눈썰매를 타고 내려간 몇 명의 친구들이 저 밑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손짓을 한다. 위험지대를 벗어나니 포터들이 자기 비닐 뒤에 타란다.


 2인 1조가 되어 눈썰매를 타고 내달리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난리법석이다. 모두들 다치지 않고 무사히 내려왔나 싶을 즈음 간간히 빙하 밑에 물이 흐르는 곳이 보인다. 조심해서 계곡을 빠져나가야 한다. 걷다보니 군데군데 크레바스가 눈에 뛴다. 오후 4시30분 야영지인 러시아둥 목장(3,200m)에 도착했다.


목장이라고 하여 항상 가축을 사육하는 것이 아니고 시즌에만 가축을 몰고 와 방목하는 곳이다. 우선 젖은 텐트를 말리고 허기를 달래는데 숭늉에 젓갈이 최고다. 오늘 밤도 큰 모닥불을 피우고 젖은 등산화를 말리면서 정담을 나누는데 머리 위에 떠 있는 반달이 수정처럼 맑다. 야참의 유혹을 뿌리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에 소리가 요란해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다.


▲ (좌)마라구 언덕의 설사면에서 비닐을 깔고 앉아 썰매를 타는 현지 포터들.(우)해발 2,370m 고지에 위치한 백한락촌의 천주교회당. 1811년 세워진 건물이다.

5월15일.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그쳤다. 밤사이 짙은 구름이 몰려오면 어김없이 비가 온다. 오늘은 협곡을 따라 하산이다. 오전 8시30분 출발하여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만개한 철쭉과 고사목을 잡고 늘어진 이끼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간다. 산이 높은 만큼 계곡 또한 깊다.


계속 내리막길을 걷다가 11시쯤 오르막길로 접어들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큰 바위가 우뚝 서 있는 언덕에 도착하니 드디어 멀리 란창강이 보인다. 이곳에서 핸드폰이 터졌다. 전화기를 켜서 집으로 전화를 하니 집사람이 난리가 났다. 사천성 대지진의 피해를 알려주면서 모든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단다. 모두들 미안한 마음에 집으로 안부를 전하고 하산했다.


오후 1시30분 드디어 목적지 자중(茨中·1,900m)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유명한 자중천주교당(茨中天主敎堂)이 있다. 조그만 가게 앞으로 가니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시원한 맥주 한 병씩을 들고 목을 축이고 있다. 산행 전에 헤어졌던 차량도 돌고 돌아 이곳에 와있었다. 계약대로 잔금을 지급하고 별도의 사례비도 건네니 모두들 고마워한다. 나흘 산행에 정이 든 우리는 아이젠 등 장비를 건네주고 단체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이 친구들은 왔던 길을 이틀에 걸쳐 되돌아간단다.


우리는 란창강을 거슬러 올라 연문(燕門), 운령(雲嶺)을 거쳐 덕흠(德欽)에서 중전(中甸·샹그릴라)으로 가야한다. 중간에 란창강과 매리설산 조망대에 들려 중국 내륙의 장관을 감상했다. 중전에서 여강을 거쳐 곤명으로 돌아오는 도중 지진의 여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주유가 어려워 차량운행도 쉽지 않았다. 큰 재난의 현장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무사히 우리 땅으로 돌아올 수 있어 감사한다.



 

 

월간산/ 글 진종익 구야회 회원 ㅣ 사진 박중신

출처 : silkroad
글쓴이 : ♧실크로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