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스크랩] 낙안읍성 민속마을
인천싸나이
2006. 5. 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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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서 엄마의 품속 같은 포근함 속을 거닐었다. 그 때는 지붕 위에 무엇을 많이 말려 놓았다. 애호박을 썰어서 펴 널어놓기도 하였다. 아침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조심스럽게 널어놓았다가 해질 무렵에 걷어 왔다. 그런데 사다리를 오르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지붕의 썩은 짚들을 잘못 밟으면 쑥 빠졌다. 비틀하는 몸을 가까스로 바로잡고 바짝 긴장하여 사다리에 달라붙어서 내려 왔다. 그런데 한 겨울이 지나면 썩은 짚들로 뒤덮여 있던 지붕이 새 옷을 입는다. 아주 예쁜 새신랑 머리 같이 된다.
그러나 지붕 위에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만약 고약한 잠버릇 때문에 나돌다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붕 위에 누워 있다가 엄마께라도 들키고 나면 감당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늘 올라가 누워보고 싶은 지붕이었지만 지붕 위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 나갔던 초가집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자.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가꾸세.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새마을 운동> 노래 중에서 그래, 초가집을 없애는 것이 새마을 운동이었다. 석면이 주는 재앙도 모른 채 모두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을 잃어 버렸다. 모두 서울로 몰려들어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찾아 몸부림쳤다. 부자마을을 만들자던 동네 스피커의 울림을 환청으로 들으면서.
낙안읍성의 특징은 관청과 민가가 성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 때는 객사의 터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거의 방치되었으나 정비가 이루어져 동헌, 객사 등이 되살려졌고, 중요 민속 가옥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는 초가집들이 많다. 대부분이 초가집들이다. 그 요란한 새마을 운동에도 잘 보존된 것은 기적이다.
특히 낙안읍성이 소중한 것은 많은 100여 가구의 초가집에서 사람들이 직접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전래의 토속적인 민속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고, 세시풍속과 의례 등 전통생활문화 양식을 간직해오고 있는 주민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민박을 하면서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따뜻한 구들장에서 말이다.
낙안읍성에 들어서자 마음이 평안해 졌다. 그냥 차분하여 졌다.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지붕과 지붕이 이어져 있는 초가집이 말끔하게 새로 지붕을 얹었다. 골목은 그대로 수많은 세월을 간직한 돌담의 돌에 이끼가 끼어 있었다.
동헌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사또와 이방, 그리고 사령, 사또 앞에 꿇어 있는 죄인, 모두 재미있는 형상이었다. 그런데 사또 앞에 꿇어 있는 죄인의 얼굴이 너무나 처량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보리밭, 보리밭 가득 갈가마귀떼들이 날아들기 시작하면 고무신을 두 손에 쥐고 쫓아나 날려보냈던 어린 시절, 신발을 신고 뛰다가는 어느새 벗겨진 신발을 찾지 못하고, 밤이 되어도 집에도 들어가지 못해 문 밖에 서성거렸던 기억, 그래도 하루 종일 뛰어 다닌 다리는 저녁밥도 다 넘기기 전에 쓰러져 잠자리에 들었던 따뜻한 구들장의 아랫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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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배꾸마당 밟는 소리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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