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입동이 지났으니, 벌써 겨울인가보다. 자연은 속임이 없는 법. 때를 알고 찾아온 겨울철새들이 천수만에 가득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물 반 철새 반’. 가창오리, 기러기, 고니, 청둥오리, 흑두루미, 황새, 왜가리, 노랑부리저어새, 해오라기…. 겨울 혹한을 피해 이곳에 찾아든 철새는 300여종. 하루 관찰되는 개체수만 40여만마리다. 이중 가창오리는 전세계 개체수의 90%에 달하는 30여만마리가 날아왔다. 붉게 노을진 가을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가창오리의 군무는 자연의 신비함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 계절이 가기 전 탐조여행에 나서보자.
천수만은 충남 서산시를 중심으로 태안군 안면읍과 보령시 사이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철새 도래지다. 이곳은 본래 수초가 무성하고 영양염류가 풍부해 농어, 도미, 민어, 숭어 등 고급어종의 산란장이자 다양한 어류의 서식지였다.
하지만 태안군 남면 당암리에서 서산시 부석면 창리를 지나 홍성군 서부면 궁리를 잇는 7704m를 방조제로 막아 4700만평의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 그 면적이 자그마치 여의도의 18배. 논 3000만평, 호수 1300만평, 도로 및 잡종지가 400만평에 달한다.
천수만에 겨울철새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다. 지역이 워낙 넓은데다 인적이 드물고 새로 형성된 담수호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하는가 하면 모래톱과 갈대밭이 철새들에게 천혜의 쉼터를 만들어 줬다. 게다가 풍부한 낙곡이 먹잇감을 제공해 철새들에게는 낙원인 셈.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국제 습지보호단체인 웨트랜드 인터내셔널로부터 ‘동아시아 오리·기러기 네트워크’로 공인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예년에 비해 1주일 정도 늦게 이곳을 찾은 가창오리는 30여만마리. 여기에 기러기, 청둥오리, 저어새 등을 합쳐 40여만마리가 매년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아 찾아드는 맹금류도 10여종. 이중 황조롱이는 논둑이나 길섶 등 설치류가 서식하기 좋은 곳에서 정지비행하며 먹잇감을 노려보는 모습이 장관이다.
천수만철새기행전 맹정호 사무국장은 “올해는 예년에 비해 개체수가 늘어난 것이 특징”이라며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노랑부리저어새 100여마리도 둥지를 틀었다”고 말했다.
철새 탐조여행의 백미는 군무. 동틀 무렵과 일몰을 전후해 하루 두차례 수면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는 가창오리의 ‘공중 공연’은 감동 그 자체다. 꽈배기, 용틀임, 도넛, 하트 등 모양도 가지각색. 한껏 재주를 부리고 나서는 간척지 논으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시베리아의 바이칼호가 고향인 가창오리는 야행성이다. 겁도 많은 편. 때문에 낮에는 호수 한가운데서 쉬다가 해질녘에 먹이를 찾아 나선 후 이튿날 새벽에 돌아온다.
전세계적으로 800마리밖에 없다는 노랑부리저어새는 올해 100여마리가 이곳을 찾았다. 주로 천수만 해미천에서 겨울을 난다. 노랑부리저어새는 끝에 노란색을 띤 부리가 밥주걱을 닮았다. 그 부리로 하루 종일 개흙을 훑는다. 먹이를 잡는 방법이 효율적이지 못해 그 수가 점차 줄고 있는 희귀종이다. 와룡천을 가로지르는 일명 ‘콧구멍다리’ 인근에서는 백로와 논병아리, 쇠백로, 황새, 쇠오리, 청둥오리, 흑꼬리도요 등을 만날 수 있다.
새떼와 함께 천수만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갈대밭이다. 갈대는 이맘때 흰 솜 같은 꽃을 피운다. 가을볕에 몸을 맡긴 천수만의 은빛 갈대꽃은 무척이나 유혹적이다.
서산시는 오는 12월4일까지 부석면 간월도 일원에서 ‘서산 천수만 세계 철새 기행전’을 연다. 이번 기행전의 주제는 ‘천수만 드넓은 대지를 날아라, 황조롱이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평일 하루 7회, 주말과 휴일은 14회씩 전용버스(5000원)를 타고 간월호와 간척지를 돌며 전문가이드의 설명을 곁들여 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가이드는 천수만의 철새를 아끼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천수만과 철새에 관한 이들의 세세한 설명에 탐조객들은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갈대로 위장한 탐조대에서는 망원경으로 철새를 코앞에서 보듯 관찰할 수 있다.
탐조여행에 나서면 새와 관련된 상식도 덤으로 얻는다. 청둥오리는 한번 짝을 맺으면 헤어지지 않고 시베리아에서부터 한국까지 날아온다. 기러기도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하는 의리의 새다. 먹이를 먹고 있을 때면 항상 동료가 다 먹을 때까지 보초를 서준다. 하지만 금실이 좋기로 알려진 원앙은 1년마다 짝을 바꾼다.
철새는 휴식처가 편안하고 먹잇감이 충분하면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게 습관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간척지 논에는 볍씨가 많고, 수심이 얕은 호수에는 작은 물고기가 많이 서식한다. 올해는 특히 생물다양성협약에 의해 벼 미수확, 볏짚 남기기, 무논조성 등으로 철새들의 먹잇감을 충분히 확보해 뒤늦은 탐조여행도 가볼 만하다.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사라져가는 우리 초가와 초분 (0) | 2008.01.11 |
---|---|
[스크랩] 서울에 이런 곳이 다 있었네? (0) | 2007.11.06 |
[스크랩] 계곡 트레킹 (0) | 2007.07.26 |
[스크랩] 긴장과 평화의 섬,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가다 (0) | 2007.05.15 |
[스크랩] 관광공사 추천 `5월의 가볼만한 곳` (0) | 2007.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