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너무 어려운
주제(WiBro 서비스에 대한 전체적인 개요와 실태에 대한 것)를 맡았더니 머리가 깨질 지경. 관련 서적이라고는 국내에 달랑 2권, 해외 서적이
1권, 웹에는 쓸만한 정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직접 책을 뒤지고 보도자료 뒤져서 써야 하는 상황인지라 힘들군요. 그나마
인터뷰라던가 실태 취재를 안 해도 되니까(필자에게 이런 것까지 시키면 안 되겠죠^^) 조금 나은 편이긴 합니다. 지금 기분은 딱 방학 레포트
쓰는 기분. 해외 잡지와 국내 잡지, 해외 신문과 국내 신문을 보면 전문적인 분야의 기사가 상당히 퀄리티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중에 원고료를 주는 시스템의 문제도 굉장히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국내 매체들의 원고료 책정 방식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1. 게재 된 페이지를 기준으로 원고료를 주는
방식 2. 기사의 텍스트 양으로 주는 방식(여기서 다시 글자수로 주는 방식, 원고지 매수로 주는 방식 등으로 나뉨) 3. 기사 꼭지
당 고정 고료를 주는 방식(1P를 썼건 100P를 썼건 하나의 기사에는 똑같은 고료를 주는 방식. 짧은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을 경우
유리함)
대부분의 매체가 1번 방식을 채택하는데 아시다시피 이 1번 방식의 경우 고료가 매우 쌉니다. '형편 없다'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적게 줍니다. 2번 방식을 채택하는 곳들은 원고료를 상당히 두둑하게 주는 곳입니다. 아무리 못줘도 원고지 1장에 1만원 정도는 주는
곳들이 대게 2번 방식을 채택합니다. 문제는 3번인데, 이 3번 방식은 주로 신문사나 웹진이 취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뭐냐면 똑같은
분량의 기사라도 그것을 쓰는데 들어가는 노동력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원고지 10매 분량의 원고를 쓰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여기서 아무런 조사 없이 30분 만에 쓸 수 있는 주제와 일주일 이상의 자료 조사와 정리 및 분석이 필요한 주제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주제는 결국 결과물은 10매의 원고인데 결과물이 같기 때문에 받는 고료는 동일합니다. 후자의 경우 원고를 써도 본전이 안 남게 되는
셈이죠. 이런 경우 자료를 구매했다면 구입비 정도는 청구를 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물론 이것도 안 주는 곳이 태반입니다.) 그런데 원고를 쓰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은 원고로는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이 10매 분량의 원고료가 두둑할 경우에는 어쩌다 힘들게 쓰는 원고도 있을 수
있다고 한 두 번은 감수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귀찮은 주제를 맡는 필자는 늘 그런 귀찮은 주제만 맡게 된다는 것이죠. 이러면 늘 수지
안 맞는 장사를 해야 하고, 이 때 선택은 2가지밖에 없습니다. 그만 두던가 아니면 적당히 조사해서 적당히 원고료를 받는 만큼만 성의를 보이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만 두는 경우는 많지 않죠. 대게 후자를 선택하기 때문에 기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주제가
확실한 기획성 기사는 작성자가 미디어에 판매를 하는 방식인데 <스파이더맨>을 보시면 잘 나오죠.^_^(사진을 팔 듯 기사도
팔더군요.) 유럽은 어떤 형식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편집자의 기획이 잡히면 필자 혹은 리포터에게 기획에 대한 취재 방향을 설정한 다음
보수를 결정한 뒤에 쓰는 형식이죠. 물론 이건 일본이 인쇄 매체 중심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일 듯 합니다. 제가 국내 잡지에서 직접
일해보고 잡지나 웹진, 신문 등에 직접 글을 쓰면서 너무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바로 이겁니다. 기사를 만드는데 있어 투자를 해야 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다는 것. 그리고 보수는 반드시 완성된 결과물의 분량(퀄리티는 상관 없음)으로 결정한다는 것이었죠. 이건 영세한 곳이나 돈이 많은 곳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전문적인 주제는 전문가가 쓰는 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 전문가 분들은 글을
너무 너무 못 써요. 어디 공대 교수 님한테 원고 부탁하면 돌아오는 원고 직접 보면 정말 미칩니다. 다시 말해 연구는 그 분들의 몫이지만 이걸
보다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건 저널리스트의 몫입니다. 각자의 역할이 따로 있는 거죠.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 저널리스트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요?
언론 개혁, 언론 개혁 부르짓는데 말이죠. 사실 어느 회사의 광고 장부 공개하고, 주식 보유 제한하고, 어디
편집장 사상 검증하는 걸로 언론의 질은 향상되지 않습니다. 그냥 정치적인 입장만 바뀌겠죠. 미디어 컨텐츠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결국 기사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질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축구팀을 강하게 만들려면 전략도 중요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향상시켜야 하고,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결국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언론의 질 향상, 이거 정말 쉽습니다. 돈만 많이 받으면서 제대로 된 원고 하나 못
뱉어내는 어디 어디 교수님 직함 달고 계신 객원 필자들 다 자르고 능력 있는 자유기고가들에게 투자만 하면 됩니다. 아마 일주일 만에 신문의 질이
확 바뀔 걸요.
이 귀찮은 원고를 맡긴 분도 이런 걸 모르는 분이 아니고, 저와 항상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 하던 분인데
시스템이 원래 저렇게 짜여져 있는 걸 어쩌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