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29일 (수) 14:58 오마이뉴스
90년대 학번, 그 어정쩡한 시대를 말하다
[오마이뉴스 안은정 기자] 1996년 3월. 대학생이 된 나는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낭만을 꿈꾸며
대학신문사에 들어갔다. 수습기자 신분으로 처음 선배들을 따라 집회에 나간 날은 1996년 3월 29일이었다. '등록금 인상 반대와 김영삼 정권 대선자금 공개'가 그날 집회의 구호였던가.
난생 처음 보는 많은 학생들의 무리는 나를 놀라게 했고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 구도는 살벌하게 느껴졌다.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난 동기들과 선배들보다 먼저 집회에서 빠져 일찍 귀가했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난리가 나 있었다. 누구는 많이 놀라고 누구는 다치고, 누구는 잡혀갔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한 사람이 죽었다. 노수석. 연세대 법학과 95학번이던,
나보다 한 살이 많던 그는 최루탄과 곤봉으로 과잉진압하던 경찰에 쫓기다 죽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했다. 80년대처럼 대학생들이
더 이상 데모할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1996년 봄, 내가 겪은 세상은 80년대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1996년 일어났던 연세대
사태와 한총련 출범식 같이 적어도 내가 겪은 시위 현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투쟁'이 전부가 될 수는 없었다. 해야 하는 일 말고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같이 영화나 연극도 보고 싶었다. 배낭여행도 가고 싶었고 나의 미래도 계획해야 했다. 조국과 민족도 중요했지만 '나' 역시 중요했다. 그런 고민을 하던 나는 4학년이 되자 더 이상 시위에 나가지 않았다.
2006년, 오늘의 책이 돌아왔다
서울 신촌에 있던 사회과학서점 '오늘의 책'은 내가 1학년이던 1996년
재정난을 이유로 장소가 바뀌었고 조합 형태로 운영되다가 결국 2000년 11월 폐점했다. 오늘의 책이나 풀무질, 논장, 장백서원 같은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의 폐점은 대학의 위기, 학생운동의 위기로 대변됐다.
그 '오늘의 책'이 연극으로 돌아왔다. 바로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김재엽 작·연출, 극단 드림플레이). 제목에서부터 90년대 학생운동의 후일담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이 연극을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와 같은 시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이제는 30대가 된 그들은 어떻게 대학 시절을 회고할까,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연극의 등장인물은 이제는 삼십대 중반이 된 91학번들. 교수와의 불화로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냉소적으로 변한 소설가 현식, 허무했던 대학 생활을 마치고 독립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재하, 이혼을 앞두고 여전히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광석, 그리고 대학 시절 이들 모두가 사랑했던 여자 동기 유정.
대학 선배였던 지원과 결혼했던 유정은 남편이 죽은 후 혼자 사회과학서점을 열고 개업식 날 대학 동기들은 하나 둘씩 서점으로 모여든다. 사람들은 김소진, 브레히트, 기형도 등 대학 시절 읽었던 책들을 꺼내들고 책 속의 메모를 보며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과거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성보다 가슴이 앞섰던 시절, 무모하게 화염병을 다루었던 이야기, 결코 순수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유로 시위대에 참가했던 일, 선배들과의 술자리와 갈등, '어설펐던' 시절의 섣부른 행동과 비겁함에까지 이야기가 다다르자 사람들의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런 그들에게 유정은 지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90년대에 사람들은 시위대 선봉에서 쇠파이프를 들었고, 또 몇몇은 사회과학 서적에 밑줄 쳐가며 세미나를 하기도 했다. 또 누구는 술을 퍼마시고 주먹질을 했고, 가끔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심각하지 않았고 그리 단단하지도 않았다. 서른 중반의 그들은 이젠 신념만으로는 살 수 없는 '생활인'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학번, 초라해져간 '낀 세대'
분명 80년대와 90년대는 달랐다. 넥타이부대와 일반 시민들이 함께했던 87년 항쟁은 감동적이고 뜨거웠지만, 90년대에 벌이는 싸움은 '시대와 괴리된' '80년대를 따라하는' '철지난' '어설픈' 학생운동으로 평가될 뿐이었다. "우린 87, 88학번 선배들이 보기엔 어설프게 학생운동 흉내 내는 것들처럼 보이고, 후배들이 보기엔 낡은 정신에 매달려 폭력이나 일삼는 선배들처럼 보였으니까"라는 극중 대사처럼 말이다.
또 80년대에는 운동권이 주류였다면, 90년대는 운동권이 점차 비주류가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그 소외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로움과 자괴감에 시달렸고 '낡았다'는 비난에 익숙해져야 했다. 80년대 조국과 민족 사이에서 고민하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그 경계를 뛰어 넘어 개인과 자아만 파고 들었고 그 중간은 말하려 들지 않았다.
연극은 그런 갈등과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중가요를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다가도 이내 불편해져서 테이프를 꺼버리고, "나이 이제 서른 지난 애가 낡고 철지난 책들에 갇혀 지내는 것이 잘하는 짓이냐"고
유정을 힐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헌책이 다 헌책일까?"라며 헌책이 됐다고 그 내용까지 헌 것이 된 건 아니라고 반박한다.
상처를 내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된다고 했던가.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과의 공감과 교류는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게 과거와 조우하게 만들었다. 이 연극을 보는 순간에는 누구도 우리를 비난할 수 없었고, 그때를 감상적으로 회상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다.
다소 무거운 내용이지만 연극은 유쾌하고 즐겁게 흘러갔다. 현식의 까칠한 말투와 냉소적인 유머, 그때의 불법도서들과 민중가요, 운동권식 언어와 농담에 나도 맘 편히 웃을 수 있다.
가장 오랫동안 대학 시절의 이상을 붙들고 있던, 단단할 것만 같았던 유정도 "나도 밤에는 몰래 서태지 들었어. 너희들과 똑같았다고"라고 하고, 재하와 현식과 광석이 사실 유정을 좋아해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고백은 묘한 동질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 때 함께 했던 동기들을 만나면 저러겠구나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일상적인, 과장되지 않은 자리였다. 명쾌하지 않았던 건 나만이 아니었고,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그런 고민은 어쩜 당연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90년대, 그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지난 겨울, 인터넷 카페에서 문학기행을 갔다. 오랜만에 신선한 바람을
쐬고 엠티 분위기 내며 술 한 잔 기울였다. 술자리에 노래가 빠질 수는 없는 일, 사람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편한 분위기 탓이었을까.
몇몇 입에서 민중가요 '바위처럼' 몇 소절이 터져 나왔고, 우리는 처음 만났음에도 어느새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민중가요 메들리는 이어졌고 우리는 오랜만에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조금씩은 몸담았던 학생운동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 대해….
그리고 다음날 아침, 말은 안했지만 다들 조금은 쑥스럽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제 와 다시 그런 얘기를 꺼냈다는 게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는지 몰랐다. 그런데 한 선배가 말했다. 우리는 어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노래한 거라고. 이제 그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와 담담하게 대면할 수 있을까?
/안은정 기자
난생 처음 보는 많은 학생들의 무리는 나를 놀라게 했고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 구도는 살벌하게 느껴졌다.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난 동기들과 선배들보다 먼저 집회에서 빠져 일찍 귀가했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난리가 나 있었다. 누구는 많이 놀라고 누구는 다치고, 누구는 잡혀갔다고 했다.
▲ 10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난 노수석 열사. 그는 나보다 한 살이 많은 대학생이었다. |
ⓒ2006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
하지만 나에게는 '투쟁'이 전부가 될 수는 없었다. 해야 하는 일 말고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같이 영화나 연극도 보고 싶었다. 배낭여행도 가고 싶었고 나의 미래도 계획해야 했다. 조국과 민족도 중요했지만 '나' 역시 중요했다. 그런 고민을 하던 나는 4학년이 되자 더 이상 시위에 나가지 않았다.
2006년, 오늘의 책이 돌아왔다
▲ 사회과학서점 개업식날 모인 91학번 동기들. 술잔을 기울이던 그들은 대학 시절을 추억하기 시작한다. |
ⓒ2006 드림플레이 |
그 '오늘의 책'이 연극으로 돌아왔다. 바로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김재엽 작·연출, 극단 드림플레이). 제목에서부터 90년대 학생운동의 후일담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이 연극을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와 같은 시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이제는 30대가 된 그들은 어떻게 대학 시절을 회고할까,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연극의 등장인물은 이제는 삼십대 중반이 된 91학번들. 교수와의 불화로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냉소적으로 변한 소설가 현식, 허무했던 대학 생활을 마치고 독립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재하, 이혼을 앞두고 여전히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광석, 그리고 대학 시절 이들 모두가 사랑했던 여자 동기 유정.
대학 선배였던 지원과 결혼했던 유정은 남편이 죽은 후 혼자 사회과학서점을 열고 개업식 날 대학 동기들은 하나 둘씩 서점으로 모여든다. 사람들은 김소진, 브레히트, 기형도 등 대학 시절 읽었던 책들을 꺼내들고 책 속의 메모를 보며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과거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성보다 가슴이 앞섰던 시절, 무모하게 화염병을 다루었던 이야기, 결코 순수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유로 시위대에 참가했던 일, 선배들과의 술자리와 갈등, '어설펐던' 시절의 섣부른 행동과 비겁함에까지 이야기가 다다르자 사람들의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런 그들에게 유정은 지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90년대에 사람들은 시위대 선봉에서 쇠파이프를 들었고, 또 몇몇은 사회과학 서적에 밑줄 쳐가며 세미나를 하기도 했다. 또 누구는 술을 퍼마시고 주먹질을 했고, 가끔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심각하지 않았고 그리 단단하지도 않았다. 서른 중반의 그들은 이젠 신념만으로는 살 수 없는 '생활인'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학번, 초라해져간 '낀 세대'
분명 80년대와 90년대는 달랐다. 넥타이부대와 일반 시민들이 함께했던 87년 항쟁은 감동적이고 뜨거웠지만, 90년대에 벌이는 싸움은 '시대와 괴리된' '80년대를 따라하는' '철지난' '어설픈' 학생운동으로 평가될 뿐이었다. "우린 87, 88학번 선배들이 보기엔 어설프게 학생운동 흉내 내는 것들처럼 보이고, 후배들이 보기엔 낡은 정신에 매달려 폭력이나 일삼는 선배들처럼 보였으니까"라는 극중 대사처럼 말이다.
또 80년대에는 운동권이 주류였다면, 90년대는 운동권이 점차 비주류가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그 소외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로움과 자괴감에 시달렸고 '낡았다'는 비난에 익숙해져야 했다. 80년대 조국과 민족 사이에서 고민하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그 경계를 뛰어 넘어 개인과 자아만 파고 들었고 그 중간은 말하려 들지 않았다.
▲ 사회과학서점 오늘의 책. 젊은 날 우리에게 이 작은 서점은 어떤 의미였나. |
ⓒ2006 드림플레이 |
상처를 내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된다고 했던가.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과의 공감과 교류는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게 과거와 조우하게 만들었다. 이 연극을 보는 순간에는 누구도 우리를 비난할 수 없었고, 그때를 감상적으로 회상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다.
다소 무거운 내용이지만 연극은 유쾌하고 즐겁게 흘러갔다. 현식의 까칠한 말투와 냉소적인 유머, 그때의 불법도서들과 민중가요, 운동권식 언어와 농담에 나도 맘 편히 웃을 수 있다.
가장 오랫동안 대학 시절의 이상을 붙들고 있던, 단단할 것만 같았던 유정도 "나도 밤에는 몰래 서태지 들었어. 너희들과 똑같았다고"라고 하고, 재하와 현식과 광석이 사실 유정을 좋아해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고백은 묘한 동질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 때 함께 했던 동기들을 만나면 저러겠구나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일상적인, 과장되지 않은 자리였다. 명쾌하지 않았던 건 나만이 아니었고,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그런 고민은 어쩜 당연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90년대, 그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90년대 학생운동은 '시대와 괴리된' '80년대를 따라하는' '철지난' '어설픈' 운동으로 치부됐다. |
ⓒ2006 드림플레이 |
민중가요 메들리는 이어졌고 우리는 오랜만에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조금씩은 몸담았던 학생운동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 대해….
그리고 다음날 아침, 말은 안했지만 다들 조금은 쑥스럽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제 와 다시 그런 얘기를 꺼냈다는 게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는지 몰랐다. 그런데 한 선배가 말했다. 우리는 어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노래한 거라고. 이제 그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와 담담하게 대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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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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