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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

[스크랩] [피렌체] 단테의 추억이 어려있는 베키오다리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오래된 다리’라는 뜻) 는 피렌체 아르노 강에 걸려 있는 다리다

 

폰테 베키오는 단테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이다. 단테는 이곳에서 어린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후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 베아트리체는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절명하고

말았지만.

             이태리는 금세공 역시 발달되있다. 다리 양쪽에는 많은 금은방들이 있다.

 
폰테 베키오는 건축적으로 매우 특이하다. 단순히 강의 양안을 연결하는 것만 아니라, 양쪽 쇼핑거리를 잇는 금은보석 상가도 갖추고 있다. 지금 모습은 1565년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바자리가 설계해 개축한 것이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본산 우피치 궁(Palazzo Uffizi)에서 강 건너 피티 궁(Palazzo Pitti)까지 직접 갈 수 있도록 기존의 동쪽 상가 위에 긴 실내 통로를 만들고 통로 양쪽 벽에
미술품을 전시하도록 했다.
 
 석조의 견고한 2층 다리로 옛날에는 위층은 귀족과 부자만이, 아래층은 서민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 이 다리는 아케이드가 들어서 귀금속과 보석가게들이 있다.
폰테베키오 다리에 있는 첼리니 동상에 젊은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히 이뤄 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물쇠를 걸어 놓고 있다.
 
 
다리 한 가운데에는 이곳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이자 금세공 예술가로 이름을 크게 떨친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이 서 있다.    이 다리에는  금은방 들이 많이 줄지어 있는데 첼리니의 

동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첼리니 '소금그릇'(오스트리아 빈 미술박물관의최고 자랑 전시품이었으나 작년 도난당했다.)
 

특히 이태리의 금속공예는 발달 되어 있으며  삼색금을 최초로 개발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피렌체’라는 이름은 기원전 1세기

 로마군의 병영이 있던 아르노 강변에 꽃이 만발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꽃피는 곳’이란 뜻으로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피렌체는 12세기 초반 도시국가로서 세력을 크게 확장했지만 교황 지지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지파로 분열됐고, 주도권을 잡은 교황파는 다시 내분에 휩싸였다. 황제파였던 단테는 추방돼 오랜 유랑 생활 끝에 라벤나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베아트리체를 추억하면서 쓴 서사시는 후세에 ‘신곡’이라고 불려지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쉽도록 라틴어 대신 피렌체 방언으로 쓴 덕분에 피렌체 말이 이탈리아 표준어로 굳어지는 계기가 됐다.

 

 


첼리니의 작품으로 '메두사의 목을 자른 페르세우스'
피렌체 시뇨라 광장에 전시되 있다.

피렌체 에 있는 작은 로마네스크 양식교회
출처 : ♡스위스쮜리히대학원♡
글쓴이 : 친절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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