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포구를 찾아서 - 강화도 선두포구
바람이 불고 있다. 희미하지만 야릇한 내음은 이미 봄이 왔음을 알리듯이 서늘한 바람에서 살랑살랑한 바람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차 창문을 열었다. 길은 어느새 중앙선이 없는 외곬길로 접어들고, 봄바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꿰뚫고 지나간다.
그사이 왼쪽으로 보이는 갯벌은 점점 더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듯 하더니 갑자기 갯벌 가운데에 휙 하니 삐죽한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차는 없어진 중앙선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 구비구비 너울을 치며 그 표시의 근원을 찾으려는 듯이 돌아 들어갔다.
초입에는 '선뒤마을'이라는 이색 간판이 예쁘게, 다른 음식점 간판들과 함께 걸려 있다. 이곳은 행정 구역상 길상면 선두 5리로, 선두 4리와 함께 선두 포구라 불리는 곳 중의 한 곳이다. 작은 길을 따라 아담하게 쌓인 돌담길 구비를 돌아서면 오른편으로 올올이 올라간 잎사귀들이 나를 먼저 맞는다.
▲ 허름한 창고 벽면에 펼쳐진 잎들의 세상
ⓒ2005 염종호
따스한 햇살이 대지를 누르고, 갈매기들의 울음소리에 날이 갈수록 봄이 느껴지는 어느 날의 끝 무렵. 나는 비릿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의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대지에서 바다로 못을 박은 듯한 그렇게 가느다랗고 긴 선창이었다. 마침 포구 옆으로 길게 드러누워 어미젖을 빨듯, 머리를 맞대고 있는 대 여섯 척의 배들이 보였다.
▲ 듬직하면서도 날렵해 보이는 동력선
ⓒ2005 염종호
3월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켠 고기잡이, 4월을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출어를 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배들은 잘 정돈돼 있었고, 마치 새색시가 외출할 때 새 단장을 한듯 깨끗하고 정갈해 보였다.
그때 베이지색 바바리에 양 갈래로 앙증맞게 머리를 딴,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한 여자 아이가 비켜갔다. 그 아이는 바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그냥 따라가 보기로 했다. 거친 바다 바람을 가르며 자그마한 두 발 자전거에 의지한 채 저 넓은 바다로 향해가는 그 아이는 여덟 살이라 했다.
▲ 어린 소녀는 홀로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다.
ⓒ2005 염종호
부모님의 일터는 여기이며 그래서 자기도 잠시 놀러 나온 것이라는, 그 아이는 그렇게 혼자 놀았다. 배를 쳐다보고 얘기라도 하듯 어루만지기도 하고, 마치 배가 자기의 유일한 친구인 양 그 앞에서 마냥 즐거워했다.
동생이 없다고 해서인지 혼자 노는 것에 더 익숙해 보이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며 여린 여덟 살 소녀와 그 거칠고 비릿한 고기잡이 배는 오랜 전부터 무언의 친구였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다시 선착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콘크리트로 바다에 못을 박은 길은 단단했다. 그 옆으로 포근한 갯벌 진흙에 안겨 누워 있는 배들이 보인다. 그들도 저마다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있다.
▲ 경비초소 뒤에 나앉은 전봇대 꼭대기는 지친 갈매기들의 휴식처이다.
ⓒ2005 염종호
거기에는 소망, 순종, 복음이라는 은혜 입은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언뜻 이 곳 뱃사람들의 바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들과 벗하고 있는 자연에 순종하고, 자기의 작은 소망들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명명한 것은 아닐까.
배 옆으로는 낡은 초소 전망대가 그들을 지키듯 서 있고, 전봇대 위에는 어느 피곤한 갈매기가 지친 날개를 쉬고 있다. 그 뒤로 멀리, 아주 저 멀리 하얀 달이 이곳 모두를 품에 안듯 내려다본다. 이제 선창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좀더 힘을 내어 가슴의 옷깃을 여미며 나아갔다. 바다 바람은 점점 나를 바다 한 켠으로 내몰고 있었다. 결국 못의 끝까지 왔다. 그 끝에는 닻이 있었다. 거친 파도와 모진 비바람으로 얼룩진 긴 항해를 마치고, 이제 막 휴식에 들어간 듯한 닻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 선창에 부려져 버린 닻
ⓒ2005 염종호
떨어지는 햇발 아래로 보이는 그들은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바다로 나아가 푸른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아련한 미련들이 배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닻의 끝 자락에 섰다. 닻들은 여기에 그들의 삶의 짐을 풀었지만, 나는 아직 그러지를 못했다. 나는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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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두포구 사람들을 만나다
가려진 포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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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이 길게, 그리고 가늘게 나있었다.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선창은 삶의 여로처럼 끝으로 갈수록 여리고 가냘퍼 보였다. 그런 포구에는 긴 선창만큼이나 횟집들도 길게 늘어 서 있었다. 앞으로는 자잔한 횟감들이 좌판에 널려있고, 주인들은 저마다 들어오는 손님들을 불러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곳 횟집들은 거의가 배를 소유하고 있음을 알리려는 듯 순종호, 복음호 등의 배 이름을 상호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주꾸미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서천 마량 포구에서 올라 왔다는 주꾸미를 맛 보아 그 맛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그럼 이것들은 여기서 잡은 것입니까?” “그럼요. 여기서도 잡구요. 요즘에는 찾는 분들이 많아 다른 곳에서도 가져오지요.” 주꾸미 몇 마리를 보여달라는 말에 아주머니는 솥뚜껑 같은 거친 손으로 양손에 한 움큼씩을 집어올려 보란듯이 내밀었다. “요즘이 제 철이라서 지금 먹기가 제일 좋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지만, 문득 아내를 떠올리며 어떻게 손질할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참, 아주머니 여기가 선두포구 맞지요.” “예! 맞지요. 그런데 여기는 5리구요, 여기 말고 선두 4리에도 포구가 하나 더 있어요.”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해주는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평생을 사셨다 했다. 여기서 나고, 여기서 자라, 시집살이까지 한 이 지역 토박이라고.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 맨, 어찌보면 여장사 같아 보이기도 하고, 우악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얼굴에는 은근함과 순박함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분이었다. 주꾸미를 들고 가라는 말을 뒤로 하고 서둘러 선두 4리 포구로 향했다.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벌써부터 초여름 날씨를 닮아가려는 듯 따스한 햇살이 정적을 휘감고 있고, 포구에는 십여 척의 배들과 마파람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그리고 황새인지 백로인지 모를 다리가 유난히 긴 새 한 마리가, 물이 다 빠져 가녀린 물줄기만이 남아있는 곳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허우적대는 고기들을 마치 패잔병들을 수색하듯 하다가 보이는 대로 날름날름 먹어치우고 있다.
“지금 뭐 하세요?” “얘 좀 부려 먹으려구요. 그동안 이 놈을 놀켰더니 이렇게 딱지가 붙었지 뭐 유.” “예! 오래 두셨나 봐요?” “금년 7월이면 일년 돼가죠…. 이제 낚싯배라도 써먹어 보려구요.” 그러면서 낚싯배는 가을이나 되야 손님이 있다고 했다. 잡히는 어종은 주로 우럭이며 장봉도까지 나가서 잡는데 뱃길로 한 삼십여 분 가야한다고. 그것도 요즘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요즘, 실뱀장어도 끝났고…. 꽃게나 잡을 때지요.” 그러면서 그것도 한 철인데 실뱀장어 값이 너무 내렸단다. 예전에는 마리 당 천 원씩 가량 했는데, 요즘은 고작 일이 백원 가량 하니 무슨 이득이 남겠냐고. 가뜩이나 요즘은 환경도 바뀌어 양도 점점 더 적게 올라오고, 그래도 양어장에 넘기면 조금은 더 받을 텐데…. 말끝을 서서히 흐린다. 그래서 였을까. 따게비들을 긁는 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져만 갔다. “그래요? 그럼 어떻게…. 뱃일 하시면서 생활은….” “에휴…. 그냥 그렇지요 뭐. 내가 이 일을 30년 했는데, 어떤 때는 농사 일보다 못 할 때도 있어요. 일도 농사 일보다 훨 되구요. 뱃일은 또 매일 나가야 되니….” 그리고는 배 밑바닥으로 허리를 굽혀 얼굴을 그만 묻어버린다. 포구 전체가 다시 삽 자루 부딪치는 소리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뒤로하고 주섬주섬 나오는데 둑 방 옆으로 낡은 스쿠터 한 대가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는, 무심히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이 애잔하기만 하다.
아이들 뒤 쪽에 있는 누렁이까지 덩달아 발길질을 하며 짖어대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더한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어눌한 마음에 학교와 나이를 물으니 길상초등학교를 다닌다는 말과 함께 나란히 한 살씩 터울이 난단다. 주위의 풍광을 돌아보면서 넓은 바다와 풍만한 갯벌, 짜릿하면서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니 그것이 여간 부러워 보이지가 않았다. 이렇게 티없이 자라는 모습들을 보면서 문득 우리 아이들이 눈에 맺히는 것은 왜 일까. 같은 또래들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촘촘한 벌집 같은 아파트에, 철조망 같이 높다란 콘크리트 건물들에 둘러쳐진 학교에서, 학원버스를 벗삼아 자라는 것과 너무 대조돼 보여서 였을까. 돌아가는 길에 좀전에 만난 아주머니에게 주꾸미를 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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