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조폭 출신 디자이너의 '새삶살기'
(대구=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평생을 조직폭력배로 살아온 남자가 과거를 청산하고 청바지 디자이너로서의 새 삶을 꾸려나가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대구 서구 신평리시장에서 패션청바지 전문점 '백구'를 운영하고 있는 곽충완(48)씨.
'백구'란 잦은 폭력 사건으로 교도소 드나들길 밥 먹듯이 해 머리가 길 틈이 없던 젊은 시절 다른 조직원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곽씨가 처음 조직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동생 춘근(45)씨와 함께 잦은 가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추위와 배고픔을 피해 불량배 소굴을 찾은 이래 어린 동생을 다른 불량배들의 주먹질로부터 지키려 악바리같이 싸움을 벌이다 보니 어느새 또래의 두목이 돼 있었고 결국에는 300명이 넘는 조직원을 거느린 '보스'가 됐다.
그런 곽씨를 조폭세계에서 구해낸 것은 곽씨의 막내동생 병수(36.패션디자이너)씨.
1996년 곽씨가 대구 앞산공원 앞에서 벌어진 조직간 폭력사태로 4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이래 병수씨는 "이제 손을 씻을 때가 됐다. 형은 어릴 때부터 예술에 재능이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나와 함께 디자인을 공부해 보자"며 꾸준히 설득했다.
곽씨는 "4년간 이어진 편지를 통해 결국 까만 양복에 예쁜여자, 돈, 흥청망청 노는 것이 부모와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이란 걸 깨닫고 동생에게 패션책과 피아노책을 보내달라고 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심경의 변화를 설명했다.
1999년 말 출소한 곽씨는 병수씨로부터 배운 정통 디자인에 나름의 감각을 가미, 청바지에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풀어내는 방법을 깨달았고 2000년부터 지금의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며 청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 때문에 '신바람 디자이너', '노래하는 디자이너'라는 별명과 함께 손님도 늘어나 지금은 성공한 의류 사업가로 자리잡았다.
장사가 잘 되는 지금도 수입은 조폭 생활을 할 때에 비해 크게 못 미치지만 땀흘려 번 돈에서 얻는 보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현재 곽씨의 최대 관심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
지난해 수성구 수성못 광장에서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을 위한 특별바자회를 열어 수익금 200만원 전액을 장애인협회에 전달한데 이어 11일에는 남구 봉덕동에서 열린 불우이웃돕기 자선바자회에 청바지 등 5천여점을 내놓아 수익금 1천만원 전액을 불우이웃에 전달했다.
곽씨는 "진짜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은 바자회에 와서 물건들을 사가시는 분들이고 나는 단지 그 분들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에 불과하다"며 "앞으로도 여력이 되는 대로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hwangch@yna.co.kr
주인공은 대구 서구 신평리시장에서 패션청바지 전문점 '백구'를 운영하고 있는 곽충완(48)씨.
'백구'란 잦은 폭력 사건으로 교도소 드나들길 밥 먹듯이 해 머리가 길 틈이 없던 젊은 시절 다른 조직원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곽씨가 처음 조직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동생 춘근(45)씨와 함께 잦은 가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추위와 배고픔을 피해 불량배 소굴을 찾은 이래 어린 동생을 다른 불량배들의 주먹질로부터 지키려 악바리같이 싸움을 벌이다 보니 어느새 또래의 두목이 돼 있었고 결국에는 300명이 넘는 조직원을 거느린 '보스'가 됐다.
그런 곽씨를 조폭세계에서 구해낸 것은 곽씨의 막내동생 병수(36.패션디자이너)씨.
1996년 곽씨가 대구 앞산공원 앞에서 벌어진 조직간 폭력사태로 4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이래 병수씨는 "이제 손을 씻을 때가 됐다. 형은 어릴 때부터 예술에 재능이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나와 함께 디자인을 공부해 보자"며 꾸준히 설득했다.
곽씨는 "4년간 이어진 편지를 통해 결국 까만 양복에 예쁜여자, 돈, 흥청망청 노는 것이 부모와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이란 걸 깨닫고 동생에게 패션책과 피아노책을 보내달라고 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심경의 변화를 설명했다.
1999년 말 출소한 곽씨는 병수씨로부터 배운 정통 디자인에 나름의 감각을 가미, 청바지에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풀어내는 방법을 깨달았고 2000년부터 지금의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며 청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 때문에 '신바람 디자이너', '노래하는 디자이너'라는 별명과 함께 손님도 늘어나 지금은 성공한 의류 사업가로 자리잡았다.
장사가 잘 되는 지금도 수입은 조폭 생활을 할 때에 비해 크게 못 미치지만 땀흘려 번 돈에서 얻는 보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현재 곽씨의 최대 관심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
지난해 수성구 수성못 광장에서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을 위한 특별바자회를 열어 수익금 200만원 전액을 장애인협회에 전달한데 이어 11일에는 남구 봉덕동에서 열린 불우이웃돕기 자선바자회에 청바지 등 5천여점을 내놓아 수익금 1천만원 전액을 불우이웃에 전달했다.
곽씨는 "진짜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은 바자회에 와서 물건들을 사가시는 분들이고 나는 단지 그 분들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에 불과하다"며 "앞으로도 여력이 되는 대로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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