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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TV방송

[스크랩] [한겨레21]시민주방송, 컨소시엄을 넘어라

시민주방송, 컨소시엄을 넘어라


‘지역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인지역 민방은 탄생할 수 있을까
iTV에서 퇴사한 187명의 방송인과 시민, 외부전문가들은 ‘오늘도 기획중’

 

▣ 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동향 보고하겠습니다.” 빠르게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는 이대수 ‘경인지역 새방송 창사 준비위원회’(창준위) 집행위원장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방송위원회가 10월19일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 사업자 선정방안을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종교 관련 법인 또는 단체,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법인 또는 단체는 지분율 5% 이상의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것을 지양하도록 했습니다. 방송위가 특정 사업자를 배제하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지난 10월24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9층 방송노조협의회 사무실에서 열린 창준위 집행위 회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중요 정책이 결정되는 탓이다.


발기인 1만5천여명… 10만 시민주가 목표


이날 창준위를 찾은 것은 경인지역 새 방송 설립에 대한 희망을 듣고자 해서였다. 방송위에서 사업자 선정 기준을 발표하고 난 직후 창준위는 어느 때보다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바로 지역성과 공공성 등 방송위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항들이 적지 않게 반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새 상황은 달라 보였다. 특히, 기독교방송(CBS)과 중소기업협동중앙회는 사업자 선정방안이 확정되자마자 불이익을 받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창준위는 사업자 선정이 애초 기대와 달리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까 우려했다. 이날 만난 민진영 경기민언련 사무국장(목사), 이훈기 희망조합 위원장, 이상훈 변호사 등 창준위 집행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경인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전 iTV 노동자와 외부 전문가들이 일궈낸 창준위에서 새 방송을 꿈꾸며 활동하는 세 축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상훈 변호사, 이훈기 희망조합 위원장, 민진영 경기 민언련 사무국장(왼쪽부터)은 창준위 활동의 세 축이다.

 

 


“기존 중앙 방송들이나 iTV에서는 경인지역 시청자 1300만에 대한 뉴스 보도가 없었다. 단순한 사건 사고 중심이었지, 시청자의 삶의 문제를 이슈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경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는 민진영씨는 창준위에 뛰어들었다. 방송이 ‘지역성’을 구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03년부터 민언련에서 텔레비전 모니터링을 해온 그는 “iTV가 정파(전파 중단)된 뒤 시민들의 무관심과 외면을 받았다. 시청자들이 ‘우리 방송’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바로 지역성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창준위가 제시한 4대 방송 이념 가운데, 지역성은 첫 번째로 꼽힌다. 창준위는 인천지역 TV주파수지키기 시민대책협의회(인주협) 소속 74개 단체와 경기 북부 및 고양지역 28개 단체 등이 10월27일 결합하면서, 모두 400여 개 시민사회 단체의 폭넓은 참여와 지지를 받게 됐다. 민진영 사무국장은 “여러 곳에서 컨소시엄 제안을 받고 있는데, 이는 시민사회의 지지가 사업자 선정 과정에 절대 변수로 돼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역성은 지역주민이 방송의 주인이 되는 것을 포함한다. 창준위는 1만5천여 명의 발기인과 25억원의 출연금을 모금했다. 더 나아가 앞으로 10만 명의 시민주 참여를 목표로 한다. 이는 지역성을 넘어서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방송의 소유구조에 시민주가 결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시민주 모금은 복잡한 법적 절차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이 일은 고스란히 이상훈 변호사(법무법인 이안)의 몫이다. 이 변호사는 “50인 이상에게 20억원 이상을 모을 때 금융감독원의 절차에 따라야 한다. 저희는 확정된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금액을 15억과 10억원으로 둘로 쪼갰지만 절차적인 문제로 금감원과 부딪히면서 추가 모금은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방송위에 대한 강한 불신


그가 창준위에 몸을 실은 것은 처음부터 영근 방송철학이나 신념 때문이 아니었다. iTV 정파 뒤 희망조합 방송 노동자들의 해고 등 법적 문제를 도와주다가 여기까지 왔다. “방송사 지배구조에 지역주민이나 근로자가 참여하거나, 소유와 편성이 독립돼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다”던 그는, 이제 “과거 iTV가 정치적 이해를 간접광고 하거나 편파방송 하면서 시청자들이 왜곡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방송사 기업구조의 변수를 잘못 짰을 때 시청자가 곧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 방송위가 주최한 사업자 대상 설명회는 편파성 시비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회의장에서 방송위를 비판하는 피켓시위를 벌이는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

 

 


이 변호사에겐 앞으로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컨소시엄 구성시 창준위가 대자본을 중심으로 한 소유구조나 경영에 어떻게 참여할지 기획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시민주를 계획대로 더 끌어모은다 하더라도 1500억원 안팎에 이를 설립 자본 규모에서 창준위의 비중이 너무 작다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어떤 자본과 컨소시엄을 구성할지가 창준위의 최대 관심사항이자 고민이다. 시청자가 중심이 되는 공익적 민영방송을 구현해야 한다는 꿈이 현실과 부딪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훈기 희망조합 위원장은 “방송위에서 공적인 성격이 있는 CBS나 중소기업협동조합을 배제하려는 것처럼 모양새가 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사업자가 몇 개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희망조합 조합원들이 언론노조와 함께 10월25일 방송위가 주최한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사업자 허가 추천 신청 요령 설명회의장에서 “특정자본 염두에 둔 선정기준 철회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묵언 시위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새 방송 사업자 선정을 주관하는 방송위에 대한 이들의 불신은 의외로 컸다. 이 위원장은 “방송위가 어떤 새 방송을 만들지 가장 고민하고,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가장 공익적인 방송을 만들 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하는데 고민이 별로 없었다. 그런 부분이 우리의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밝혔다.

 

희망조합은 바빴다. 사업계획서는 사업자 선정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방송 PD, 기자, 엔지니어 등 20여 명의 희망조합원이 7~8년 동안 현장에서 발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계획서 초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현업 전문가 출신인 우리가 학자들보다 지역성 구현이나 시청자 접근성 등에서 훨씬 구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는 올 1월1일 iTV에서 퇴사한 187명의 방송 노동자들이 생업을 찾아 떠나 흩어지지 않고 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컨소시엄 구성, 물밑 짝짓기 한창

 

 

△ 창준위는 매주 월요일 집행위원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한다. 방송회관 방송노조협의회 사무실에서 희의 중인 모습.

 


바깥 방송위원회 주변에선 11월24일 새 방송 사업계획서 제출 시한을 앞두고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사업자들끼의 물밑 짝짓기와 눈치보기가 한창이다. 국회에선 11월2일 문화관광위원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CBS와 중기협을 주요 주주에서 배제한 방송위의 새 방송 사업자 선정기준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이효성 방송위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5% 지양 선정방안에 대해선 아무런 차별 없이 발표된 심사 기준에 의해서 공정하게 선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년 1월쯤에 결정될 최종 사업자 선정은 그리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노중일 창준위 홍보팀장은 “지난 1년 동안은 롤러코스터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창준위 집행위원들은 하나같이 “시청자가 주인 되는 지역방송”의 꿈을 롤러코스터에서도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출처 : 희망의 새 방송을 준비하는 사람들
글쓴이 : 와이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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