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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TV방송

[스크랩] [데일리 서프라이즈]시민을 위한 지역 민방…자랑스런 언론운동사의 일부

시민을 위한 지역 민방…자랑스런 언론운동사의 일부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11-13 14:41]    
지난 10월 27일 있었던 창준위 지지 기자회견 장면 ⓒ 경인지역 새방송 창사준비위원회


방송위원회가 iTV에 대해 재허가 추천거부 결정을 내린지 1년여의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방송위의 발표가 있던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미증유의 사태에 놀랐다. 그러나 이해당사자격인 경인지역 주민들을 포함, 대부분의 이들이 이 사태를 개별 언론사의 문제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10개월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학계·언론계·시민사회가 한 목소리로 ‘iTV 재허가 추천거부 사태는 사영화 된 민영방송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경인지역에 건강한 자본, 지역성을 담보할 수 있는 언론노동자, 그리고 시민사회가 조화된 참된 민영방송을 설립해 여타 지역민방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변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iTV노조(현 iTV 희망조합)다. 이들은 생계수단 상실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지역민방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해왔다. 그 결과 이번 사태의 종착점이 보이고 있다. 방송위가 올해 안에 경인지역 새 방송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하고, 그에 따른 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 수많은 저명인사들과 시민들이 건강한 경인민방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업권을 노리는 각 주체의 경쟁, 방송위의 석연치 않은 행보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이에 본보는 iTV노조의 활동을 중심으로 경인방송 사태를 정리, 과연 어떤 성격을 가진 주체가 경인민방을 운영해야 하는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총 3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iTV 재허가 추천거부 사태 통해 본 민영방송의 그늘

②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일구는 'iTV 희망조합' 사람들

③ 또 하나의 한겨레, 다시 쓰는 언론개혁의 역사지난 11월 7일 저녁 6시15분 서울 목동에 위치한 방송노조협의회 사무실.

열린 공간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날 경인지역 새 방송 창사준비위원회(이하 창준위) 집행회의를 끝낸 뒤, 곧바로 노조총회를 열기로 했던 것이다.

다소 북적대는 분위기에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iTV 희망조합원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한결같이 검게 그을린 얼굴에 초췌함이 역력하게 묻어났다. 특히, 기자와 안면이 있는 한 전직PD가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인사를 해왔을 때, 말할 수 없이 까칠해진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을 정도였다.

기자의 놀란 표정을 읽었는지 옆 자리에 앉아있던 노중일 창준위 홍보국장이 “백수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모여드는 것은 처음 보시죠”라며 농담을 건넸다. 이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없이 웃었고, 이에 안도한 기자는 훨씬 더 편해진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사방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많은 ‘백수들’이 일제히 안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의자에 몸을 파묻고 앉아있는 사람, 동료들과 한담을 나누는 사람, 그리고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 등 모습은 가지가지였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매한가지였다. iTV가 무너진 후부터 받아온, 차마 말로 다하지 못한 고통은 잊은 듯했다.

iTV 희망조합의 진정성, 폭넓은 지지의 이유

이날 창준위를 찾은 이유는 집행위원들의 입을 통해 ‘왜 창준위의 활동에 참여해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느냐’고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귀가 닳도록 들어왔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취재현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다소 식상한 질문에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우려를 했다.

하지만 이 기초적이면서도 단순한 물음을 제외하고는 어떻게 창준위가 학계·언론계·시민사회 등의 광범위한 지지와 성원을 얻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창준위에 결합해 iTV 희망조합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단체는 모두 400여개.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질문이 주어질지 모르는 이대수 창준위 집행위원장 등 집행위 멤버들은 다소 굳은 얼굴로 기자를 쳐다봤다. 아마 진작에 기자의 속내를 알았더라면 이들의 표정은 한결 편안했을지 모른다.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줄기차게 밝혀왔던 소신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으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아든 이들의 얼굴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iTV 희망조합의 요청에 의해 창준위 활동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경기·인천지역 시민들을 위해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아마 동참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iTV 희망조합이 갖고 있는 열정과 애정 그리고 새 방송에 대한 의지를 보면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이대수 창준위 집행위원장)

이에 대해 자리에 함께했던 4명의 집행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특히 가장 나중에 창준위와 결합한 강상렬 위원도 “창준위가 지향하는 4대이념, 즉 △지역성, △개방성, △참여성, △개혁성 동감해 발을 담그게 됐다”며 앞선 주장에 힘을 실었다.

현재 iTV 희망조합을 포함, 창준위가 비빌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언덕은 이와 같은 각계의 지지와 성원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처음부터 녹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정반대였다. 마치 황무지를 다시 개척해야 하는 농부의 심정처럼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누군가 슬쩍 흘리는 말로 “처음 투쟁을 시작할 때부터 단 한 번도 희망적인 때가 없었다”고 얘기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을 꾀할 수 있었을까?

투쟁의 의지를 꺾으려는 장애물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노중일 국장은 “당초 경인지역에 새 민영방송을 설립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을 때 ‘경제적 능력상실’과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조합원 모두가 큰 고통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직업이 없어지면서 신용불량자가 속출한 것은 예삿일에 속한다. 한 조합원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을 미뤄야 했다. 또 다른 조합원의 경우 오랜 투쟁기간 중 암에 걸려 현재 투병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 187명에 달하는 iTV 희망조합원들 모두가 함께 가슴 아파해야 할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유난히 많은 조합원들의 부모가 이승과의 연을 다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iTV 희망조합원들은 이어지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으며, 혹시 못난 자식으로 인해 부모가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닌지, 먼길 떠나는 이들의 가슴에 한이 남지는 않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경제적인 문제 못지않게 iTV 희망조합원들을 괴롭힌 것이 바로 세인들의 편견이었다. iTV 내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멀쩡하던 회사를 무너뜨린 게 바로 ‘강성노조’인 iTV노조다”라며 사갈시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iTV 희망조합이 받은 고통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iTV 희망조합원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진실을 알려나갔다. 각계를 두루 방문해 자신들에 대한 오해를 하나씩 없애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왜 iTV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관련 사태가 언론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런 쉼없는 노력으로 인해 마침내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iTV 희망조합이조 중심역을 맡고 있는 창준위에 각계의 지지가 쇄도하게 된 것이다. 개인과 단체의 구분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창준위 출범 당시 모인 15000명의 발기인과 25억원의 경인지역 새 방송 설립기금은 iTV 희망조합의 숨은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저는 5월 21일 인천대공원에서 열린 ‘경인지역 새 방송 설립 발기인 대회’를 보면서 희망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본 순간 ‘바로 여기서 새 방송설립에 대한 힘을 얻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부터 막연한 기대가 지역성·공익성 등을 담은 새 방송에 대한 희망으로 바뀌었지요.”(이은주 창준위 집행위원)

“우리의 싸움은 자랑스러운 언론운동사의 일부”

창준위 집행위원들은 약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이날 대화의 말미에 “iTV 희망조합의 투쟁은 정파(전파가 중단되는 것)를 기점으로 11개월, 박상은 전 회장에 대한 퇴진투쟁을 기점으로 해선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31년 동안 자유언론을 위해 싸워온 동아투위를 제외하고, 언론부문에서 가장 긴 투쟁사를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 짧은 말 속에 결코 무시하지 못할 긍지와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사실을 내세워 자신을 부각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주어진 소명을 받아들여 끝까지 가겠다는 굳은 각오만 밝힐 뿐이었다.

“저는 방송국 개국 당시부터 정파가 되는 날까지 iTV에서 작가로 일했습니다. 노조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투쟁을 해왔는지 모두 봐왔습니다. 그런데 그 오랜 투쟁의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임금을 위해 싸우지 않더군요. 전적으로 보다 나은 방송을 위해서만 투쟁한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하루빨리 방송제작현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이정환 창준위 집행위원)

이어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는 창준위 식구들에 대한 이은주 집행위원의 격려가 뒤따랐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 iTV 희망조합원들의 고용이 100% 승계돼 지역과 시민을 위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덕담도 귓가에 들려왔다.

방송협 사무실이 한층 더 부산해졌다. 취재를 마감해야 할 때가 임박한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노중일 국장에게 ‘혹시 오늘 총회에서 중요한 안건을 다루는 게 아니냐. 사업파트너로 어디를 염두에 두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난 다음 날 ‘Good TV 컨소시엄’과 함께하기로 했다는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어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딛은 것이다.

최한성 (marunnamu01@dailyseop.com)기자

출처 : 희망의 새 방송을 준비하는 사람들
글쓴이 : 와이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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