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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히말라야의 별과 만년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계의 높고 낮은 산/히말라야의 별과 만년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글·사진 이태훈 혜초여행사 상품개발팀


 ◇ 용처럼 꿈틀대는 길 위로 위대한 히말라야가 솟았다. 산들의 모신(母神)으로 불리는 초모룽마(에베레스트·8848m)는 순수한 티베트 사람들의 영혼을 대변한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편안한 영혼들이 하늘과 산 그리고 호숫가에 맴도는 티베트. 사원마다 진한 야크버터의 향이 기둥과 돌바닥에서 배어나고 코라를 도는 티베탄의 옷깃에서 싱싱한 삶이 느껴지는 곳, 제한된 시간 안에서 제한된 상상력을 꿈꾸게 하고 육체적 한계 상황 속에서도 끈질긴 불심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곳이 바로 티베트다.
동서남북 어딜 가든 신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를 만날 수 있는 티베트는 이방인들에게 인생이 어떤 것이고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잠시나마 돌아보게 한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삶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흐르는 여유와 풍요로움이 사람을 보람되고 즐겁게 해준다는 것을 이들에게서 배운다. 광활한 티베트는 여행이라는 가벼운 즐거움보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을 좀더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725㎞의 대장정, 우정공로

언제나 그랬듯이 내 속에 신선한 바람과 삶의 동력을 조금 불어넣기 위해 배낭 하나 어깨에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 언저리에 내 자신의 그림자를 묻고 싶어 티베트의 라사에서 네팔의 카트만두까지 달려가는 우정공로(友情公路·Friendship Highway)에 몸을 실었다. 내 속에 살아 숨쉬는 또 다른 자아를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신의 사귐을 넓히기 위해 다시 찾은 티베트는 역시 오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함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가 좁은 차창 틈으로 파고들 때마다 티베탄들의 추억들이 머릿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기분을 느꼈다.
3500m가 넘는 라사 공항에 내려 고소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지프를 타고 그리움이 가득한 히말라야 우정공로로 달려갔다.
여름철은 우기라서 하늘에서 짙은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한 기세로 머리 위를 짓누르고, 높은 고도로 인해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눈부신 설산 밑으로 노랗게 핀 유채꽃을 보는 순간 마음만은 천하를 얻은 듯이 상쾌했다. 폭풍한설이 매서운 히말라야의 겨울은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파란 하늘이 여행하는 내내 사람들의 머리 위에 놓여진다. 시간이 겨울을 꿰뚫고 지나면 험준한 설산고역에도 봄이 찾아온다.
따뜻한 봄이 히말라야 언저리와 마을에 찾아오면 사원과 민가의 하얀 담장 위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청초한 벚꽃이 인상적이다. 물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여름철에는 노란 유채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들판에는 티베탄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 보리가 고개를 숙이며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이처럼 사계절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티베트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하는 오지이다.
라사에서 출발해 짧은 포장길과 험준한 히말라야 고개를 넘어 네팔 국경지대인 장무까지 725㎞ 대장정 길이 바로 우정공로다.
5000m 고갯길을 넘을 때마다 사람과 자동차는 숨이 가쁘다. 특히 겨울에 우정공로를 넘을 때에는 외로움, 추위, 두려움, 배고픔 등 아주 다양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정공로를 따라가는 7일간의 짧은 여행이 좋은 것은 바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 초모룽마(에베레스트), 시샤팡마, 초오유 등 8000m급 봉우리 다섯 개와 이름 모를 수많은 히말라야의 설산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정공로는 티베트와 네팔 국경을 따라 흐르는 히말라야 산맥을 잠시나마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유일한 길이다.

 ◇ 어린 학승이 조캉 사원 바닥에 누워 부처님의 염화미소처럼 밝게 웃고 있다.


하늘 반 별 반의 히말라야

덜컹거리는 산길을 따라 라사, 장체, 시카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팅그리, 니얄람, 장무 등의 도시를 거쳐 따뜻한 설산의 도시 카트만두에 이르게 된다. 우정공로에 들어서면 우선 티베트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작은 수정체 안으로 마구 쏟아져 자연의 신비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렇지만 항상 낭만과 아름다움만이 우정공로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기를 벗어난 겨울철에는 땅이 너무 건조해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심한 흙먼지가 일어 눈을 뜰 수 없게 하고, 여름철에는 산사태로 인해 가끔씩 길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정공로를 달리는 동안 하늘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밤에는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처럼 까만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가득 차 나그네를 감동시킨다.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은 도시에서 보는 것처럼 저 멀리 높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바로 이런 매력이 우정공로의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흙먼지를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자동차가 라사를 떠나 5000m나 되는 캄바라 고개에 이르자 발아래로 푸른빛을 가득 품은 암드록쵸 호수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호수 속에 잠긴 하얀 설산 노진강상이 여행자나 순례자의 발길을 환영해 준다. 이 높은 곳에 어떻게 해서 이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호수가 생겼을까 의문이 저절로 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도저히 눈과 발을 다른 데로 옮길 수 없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탄성을 마구 토해냈다.
천천히 호숫가로 고도를 낮추면 순진한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목동은 저만치 떨어져 티베트의 아름다움을 노래로 대신한다. 뱀처럼 길게 늘어진 호수를 끼고 몇 시간을 달리면 제3의 도시 장체와 티베트에서 라사 다음으로 큰 시가체가 턱까지 숨이 찬 여행자들에게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조그마한 터전을 내어준다.
화려함과 문명화로 인해 변해가는 라사와 달리 이 도시들은 티베트의 옛 모습과 풋풋한 시골의 내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장체는 인도와 티베트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 요충지로 성장한 도시인데, 티베트 불교의 각 종파가 혼합된 사원인 펠코르 체데가 있다. 또한 20세기 초에는 남쪽에서 침략해온 영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펠코르 체데와 사원 뒤의 높은 언덕에는 사원을 보호하려는 높은 벽이 요새처럼 둘러싸고 있다.
스투파와 비슷한 모습을 한 펠코르 체데는 1418년에 지어졌으며, 34m 높이의 불탑으로 내부의 불상과 벽화를 볼 수 있다. 해가 남서쪽 가운데를 지나기 시작하면 사원 안으로 티베탄들의 검은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사람들은 사원 주위를 돌기 시작하거나 대법당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서서히 하루를 마감한다. 특히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Shicatse·3900m)는 11대 판첸라마가 머물고 있는 타쉴훈포 사원이 있어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라사에서 서쪽으로 28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가체는 알룽창포 강과 그 지류인 남체 강의 합류 지점으로, 티베트어로 ‘토지가 풍부한 정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가체 주변에서는 고원의 땅을 거닐며 열심히 먹이를 찾는 양과 야크들을 많이 보게 된다.
현재 티베트 서남부 농축산물의 집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가 바로 시가체이다. 시가체의 중앙로인 상하이로드(上海路)를 조금만 벗어나면 티베탄들의 전통 재래시장과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철이면 시가체, 장체 주변에서 키운 양과 야크 고기가 바로 이곳에서 장을 이룬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고기 시장이라 이른 아침부터 발 디딜 틈도 없이 티베탄들로 가득 찬다.
또한 라사의 드레풍 사원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타쉴훈포 사원 앞은 오체투지와 코라를 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타쉴훈포 사원에는 중국이 내세운 판첸라마가 산다. 원래 이 사원은 1447년 1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게룩파 6대 사원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한때는 4000여 명에 이르는 많은 승려들이 수행을 했지만 지금은 700여 명만이 이곳에 남아 있다.

 ◇ 우정공로에서 볼 수 있는 호수는 아니지만 티베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불리는 남쵸는 ‘하늘호수’라는 뜻이다.


히말라야의 바람에 실려 온 희망

티베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장체와 시가체를 지나면 우정공로 최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거대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시가체에서 왼쪽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약 300㎞를 달리다가 팅그리 못 미쳐 롱북 마을 방향으로 좌회전을 한 다음 구절양장으로 휘어진 비포장길을 쉼 없이 꼬박 5시간을 올라가면 초모룽마(에베레스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롱북에 도착한다. 여기서 400m만 올라가면 베이스캠프이다.
흙먼지로 인해 눈과 코가 아주 어려움을 겪지만 롱북 마을에 올라서서 용 한 마리가 꿈틀대는 듯한 길 위로 가장 위대한 초모룽마의 모습을 보는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든다. 찬란하게 빛나는 초모룽마의 정상 주변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인데도 구름바람이 흩어지면서 묘한 신비감을 내뿜는다. 초모룽마밖에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서 지새는 밤은 꿈결 같은 추억을 남긴다.
초모룽마 베이스캠프에서 100㎞ 정도 나와 우정공로에 다시 접어들면 해발 4200m의 ‘올드 팅그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8000m급의 히말라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초모룽마(8850m), 마칼루(8463m), 초오유(8201m) 등 진정한 히말라야 산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석양이 질 무렵이면 8000m급 산의 정상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구름이 흩어졌다 모였다 정신이 없다.
감히 인간으로서 다가설 수 없는 위대한 히말라야. 1986년 라인홀드 메스너가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를 완등한 이래 지금까지 11명의 산악인들이 거대한 히말라야 정상을 밟았다. 한국인으로는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등 3명의 산악인이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그런 기록을 생각하며 히말라야를 보니 이방인에게는 그 신기하고 엄청난 웅장함이 눈을 감을 때마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올드 팅그리에서는 잠시 히말라야를 느끼지만 네팔로 넘어가는 마지막 5000m 고갯길인 라룽라(Lalung La)에 오르면 이름 모를 6000~7000m급의 많은 산봉우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눈앞에는 8046m의 시샤팡마가 나타난다.
8000m급 고봉 중 유일하게 티베트에 속한 시샤팡마는 오랫동안 산스크리트어로 ‘신의 거주지’를 의미하는 고사인탄(Gosainthan)이라 불러왔다. 하지만 현재는 티베트어로 ‘일기변화가 극심한 산’을 의미하는 시샤팡마(Shisha Pangma)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아름답고 만년설이 가득한 히말라야를 보며 네팔로 빠지는 우정공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황홀감에 빠져들게 하며, 그 느낌이 가슴과 눈 속을 떠나지 않는다. 비포장길의 울렁거림으로 뱃속은 불편하고 높은 고도로 인해 머리는 빙빙 돌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를 작은 두 눈으로 담아내는 순간순간만큼은 눈물겹도록 행복했다.
히말라야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오색의 룽다를 흩날리며 부처님의 진리를 온 누리에 퍼뜨리고 있다. 내 속에 찌든 삶의 찌꺼기들도 저 멀리서 불어오는 히말라야 바람에 실어 보내며 그 자리에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채웠다. 여행을 하는 동안 불편 했던 모든 것이 아련한 추억으로 사라질 때면 어느 새 사람들은 복잡한 도시 빌딩 숲에서 새로운 아침을 열기 시작한다.

INFORMATION
티베트 우정공로 길잡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공로를 달리는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다.
하지만 해발 5000m의 척박한 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산악인들만이 우정공로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주말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티베트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고산병으로 인해 고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어린 아이도 여행을 할 정도로 쉬운 곳이 바로 티베트다.
우정공로 여행은 티베트의 수도인 라사에서 네팔의 카트만두까지 가는 코스다. 대략 지프를 이용하면 8일 정도로 손쉽게 여행할 수 있다. 지프를 타고 우정공로를 달리면 쉬고 싶은데서 쉴 수 있고, 멋진 풍광이 있는 곳에서는 마음껏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