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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세계의 비경]<9>백두산 천지-남쪽코스

분야 : 문화/생활   2004.7.8(목) 16:33 편집

[원더풀! 세계의 비경]<9>백두산 천지-남쪽코스



백두산 천지 남쪽 분화구 외벽기슭을 하얀 꽃으로 뒤덮은 담자리꽃나무 군락. 뒤쪽 산악은 모두 북한 것이다. (작은 사진) 남쪽루트로 올라 바라본 천지. 정면 오목한 부분이 천지물 출구인 달문이다. 달문 앞 수면만 거울처럼 반사된 것은 이 부분만 얼어 있기 때문.


《장마철 찌푸린 하늘 걷히면 한여름 무더위 기승을 부릴 터. 그러나 백두산 고산대지는 지금 백화난만의 초봄이다. 노랑만병초와 하얀 담자리꽃나무가 곱게도 깔린 분화구 외벽 기슭, 노란 금매화로 뒤덮인 사스래나무 숲의 풀밭…. 그 멋진 들꽃천지 백두산을 ‘들꽃박사’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과 한국야생화연구회원 5명과 함께 답사했다. 이번 여행길에서는 중국 쪽 백두산을 남과 서, 북쪽에서 차례로 올라 천지를 세 차례나 섭렵하는 새 기록을 세웠다. 그곳에서 본 백두산의 서로 다른 멋진 풍경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백두산 ‘난파(南坡)’. 난파란 중국말로 ‘남쪽언덕’이다. 보통 백두산이라면 사륜구동 차량으로 오르는 베이파(北坡), ‘걸어서 천지까지’라는 이름의 들꽃 트레킹으로 각광받는 시파(西坡) 코스로 오르기 마련. 난파로 백두산 고산지대를 답사하며 천지에 오른 이는 거의 없다. 아니 그런 길을 아는 이조차 거의 없는 전인미답의 오지다.

그런 난파로 백두산을 찾았다. 옌지공항에서 무려 10시간을 달려 찾아간 해발고도 1000m 지점. ‘천지 50km’라는 이정표가 붙은 백두산 순환도로의 천지 남쪽 진입도로 입구다.

일행을 태운 중형버스가 비포장도로로 15분쯤 올라가자 숲 속에서 건물이 보였다. ‘지린장백 국가급 자연보호구 여유국 삼림여유공사’의 난파관리소다. 우리의 국립공원관리공단이다. 조금 더 오르니 차단기가 길을 막고 있다. 중국 군인의 검문소다. 이들은 국경경비대원들. 국경이 멀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하니 폭 5∼6m의 개울이 보인다. 압록강이다. 물 건너가 북한 땅임은 물론이다. 길은 압록강을 오른편에 두고 천지를 향한다. 압록의 물길 건너 북한 땅을 응시했다. 북한군인이 나타날지 모르니 북한 쪽은 촬영하지 말라던 국경경비대의 경고가 자꾸 생각났다.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자 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대신 거대한 협곡이 나타난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특이한 형상의 이 협곡. 미국 유타 주에 있는 브라이스캐니언의 바늘 침 바위보다 더 뾰족하게 다듬어진 바위들이 커튼처럼 주름진 형상의 협곡 양쪽 벽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이 초콜릿 빛깔의 바위협곡을 취재팀은 ‘압록 대협곡’이라 부르기로 했다.

압록의 물길이 오랜 세월 조각한 이 특이한 지형. 그 기특한 강물을 보려 했지만 협곡이 어찌나 깊은지 거의 볼 수가 없다. 건너편 협곡을 보니 난간 달린 조그만 전망대가 있다.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62)이 2001년 북측 초청으로 입북해 34일간의 생태탐사 도중에 들렀던 곳이란다. 이 협곡은 서쪽 백두산에 있는 금강대협곡과 닮았지만 규모는 그 두 배 정도다.

계곡을 벗어나니 넓은 구릉의 거대한 초원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푸른 초원 너머로 하얀 부석으로 늘 하얗게 보이는 천지 분화구 외벽이 보인다. 이제 천지도 멀지 않음이라. 그 즈음에 사스래나무 숲이 초원을 뒤덮은 모습을 보게 된다.

하얀 줄기가 여인의 목덜미처럼 사랑스러운 사스래나무. 그 숲이 보임은 수목생장한계선에 도달했음을 말하고 이것은 해발고도가 2000m에 육박했음을 알려준다. 이후 더 높이 오르면 나무는 강풍과 눈비의 혹독한 기후에 견디느라 땅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살아가는 끈질긴 생명력의 키 작은 관목뿐이다.

들꽃천지는 바로 여기, 관목으로 뒤덮인 천지 분화구 아래 구릉지대에서 또 다시 펼쳐진다. 아니나 다를까. 모퉁이를 돌자 길옆 숲가 초원을 노랗게 뒤덮은 금매화 군락이 보였다. 이날 백두산 초원은 금매화 세상이었다. 천지에 오르는 동안 광대한 백두산 고산지대는 온통 금매화로 뒤덮여 푸른 초원이 노르스름하게 보일 정도였다.

1단과 2단 기어를 반복하며 천천히 산길을 오르는 버스. 도로 옆에는 군데군데 채 녹지 않은 잔설이 3∼4m씩 쌓여 있었다. 해발 2300m 지점. 뒤를 돌아보니 감탄의 말조차 잃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너울처럼 부드러운 파형의 구릉지대 아래로 지평선까지 수백 km나 이어진 거대한 초록빛의 백두임해(林海), 장대한 숲의 바다다.

천지에 가까울수록 경사는 급해진다. 그래도 버스는 근근이 오른다. 몇 분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펼쳐진다.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분화구 마루까지 오른 것. 동쪽(북한)은 물론 서쪽과 북쪽(중국) 어느 방향에서도 차량의 등판을 허용치 않는 천지지만 남쪽은 달랐다.

난파에서 바라다 본 천지.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이다. 정면으로 달문과 천문봉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장군봉(북한)이 보인다. 시파의 청석봉 역시 잘 보인다. 달문과 천문봉은 백두산 베이파에 있다. 그 봉 아래 천지를 보니 남쪽과 달리 호수면이 얼어붙은 상태다. 그 수면 위로 날랜 제비가 날아다닌다. 그 천지를 내려다보며 들게 된 오후 세시반의 늦은 점심식사. 그 밥맛이 생애 최고였음은 시장기 때문만이 아니리라.

그리고 또 하나. 백두산 난파 여행길에 들를 창바이(長白)조선족자치현에서 하룻밤도 잊지 말자.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혜산시와 마주한 이 도시. 발해의 5층 전탑이 늠름하게 서 있는 높은 언덕의 탑산공원에 오르자 강 건너 북한의 큰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군사도시 혜산이다.

창바이현 시내에 나가면 활기찬 모습에 감동한다. 깊은 산과 강, 국경에 둘러싸여 고립되다시피 한 오지인지라 전혀 기대하지 못했었기에 그렇다. 조선족의 타고난 억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두리번거리던 중 이런 간판을 발견했다. ‘몸까기 미용실’. 다이어트를 말하는 북한말(몸까기)이 간판에 등장할 만큼 이곳은 북한과 친밀한 국경도시다.

강변에서 물가의 북한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들도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출근길 북한사람의 발걸음도 한결 가볍고 활기차 보였다. 글쎄.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든 걸까.

지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백두산 남쪽코스는 아직은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있다. 북한과 협의 후 개방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시작된 난파 산문∼천지 도로공사는 올해 완공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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