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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창간특집/작지만 강한 대학]<3>美 노던콜로라도 대학

[창간특집/작지만 강한 대학]<3>美 노던콜로라도 대학



노던콜로라도대 먼포트경영대의 컴퓨터 강의실에서 회계학 및 금융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하이테크 룸’으로 불리는 이 교실에는 컴퓨터, 빔 프로젝터 등 첨단 장비가 잘 갖춰져 있다.
입학할 땐 凡材… 졸업할 땐 美상위 5% 人材

바람이 새는 열기구(熱氣球)의 추락을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던져버린다는 뜻의 제티슨(jettison). 이 말보다 이 학교의 어제와 오늘을 명징하게 설명해 주는 말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 로키산맥이 지나가는 콜로라도 주의 최대 도시인 덴버. 국도를 따라 동북쪽으로 1시간을 달려가면 노던콜로라도대(UNC)가 나온다.

학교 건물 말고는 3층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래서 경제적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 소도시 그릴리에 있는 이 주립대는 인근의 명문 주립대 2곳과 비교할 때 못 미치는 영역이 많다. 그러나 경영대만큼은 ‘규모를 줄여서 힘을 키운다’는 원칙 아래 20년간 몸부림치며 개혁을 해 왔다.

먼포트경영대는 2004년 가을 미 상무부가 경영품질 혁신기업과 단체에 주는 ‘맬컴 볼드리지 혁신상’의 교육 분야 수상 대학이 됐다. 연방정부가 엄선하고, ‘분야별 수상 대상이 없으면 건너뛴다’는 원칙이 지켜지는 상이다. 2000년 교육 분야가 포함된 뒤 대학으로는 2001년 위스콘신 스타우트대 이후 두 번째다.

실제로 1980년대 “우리는 평균”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그저 그랬던’ 경영대로서 이 수상은 ‘일대 사건’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1984년 어느 날 당시 경영대학장이 “부끄럽지만, 의미를 잃은 박사과정과 경영대학원(MBA)을 없애자. 학부 교육에 전념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대학별로 MBA 하나쯤은 갖추려고 너도나도 확장을 하던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샤론 클라인벨 교수·마케팅 담당)

졸업생과 재학생은 물론 일부 교수도 반대했다. 그러나 스스로 부족함을 고백하는 승부수를 둔 학장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예산의 대부분이 박사과정과 MBA에 투입됐고 학부 강의는 박사과정 조교가 맡았다. 그러나 이젠 학교 예산은 몽땅 학부에 집중되고 전임교수가 학부생을 가르친다. 학교의 목표가 분명해지자 학생들의 동기 부여는 저절로 됐다.

미국에는 경영학과가 우후죽순처럼 개설돼 있어 품질을 확인하려면 국가의 공인인증서를 봐야 한다. 이 경영대는 1992년에 이르러서야 인증서를 땄다. 전국 경영학과의 15%만이 수혜자인 이 인증서를 ‘평균 학교’가 딴 것이다.

그러나 경영대가 1급 학교로 바로 올라선 것은 아니다. 아직도 신입생 입학 성적은 전국 평균을 웃돌지 못한다(36점 만점인 ACT는 23.1점, 1600점 만점인 SAT는 1057점).

그러나 졸업반인 4학년생 247명이 올해 초 치른 경영학 졸업시험 성적은 전국 상위 5%를 차지했다. 토플을 주관하는 ETS가 실시하는 이 시험에 올해 전국 469개 학교에서 8만 명이 응시했다.

마이크 레너드(광고홍보전략 담당) 교수는 “2000년 상위 27%, 2003년 상위 11%였다”며 “수직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0, 31일 이틀간 둘러본 경영대 건물에서 대형 강의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0명 단위 수업이 흔한 MBA 과정이나 주변 학부 경영대와는 큰 차이다. 또 모든 강의실의 책상은 원활한 토론을 위해 U자 형태로 배열돼 있었다.

레너드 교수는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들을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가며 인사했다. 컴퓨터 랩에서 마주친 학생들은 그를 세워 놓고 프로젝트 진행 방법을 물었다.

학생인 세라 베츠(여) 씨는 “대부분 프로젝트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명성이 더 높은)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전학 왔다”고 말했다.

경영대 건물 1층의 ‘트레이딩 룸’은 1992년 대학 당국이 투자론 과목의 실전 경험을 위해 내놓은 25만 달러를 학생들이 직접 굴리는 곳이다. 매일 팀 단위의 투자 결정에 따라 주식과 채권을 사고판다. 지방대 경영학과 투자교실치고는 적지 않은 규모다. 이 돈은 3월 31일 현재 116만 달러로 불어났다.

이 경영대는 ‘졸업 후 6개월 내 98.5% 취업 또는 대학원 진학’이란 통계를 내놓았다.

“대학을 변화시킬 돈이 없다고? 일을 벌이는 것보다 군살을 덜어 내면 해법이 눈에 들어온다. 선택하고 집중하라.”

조 알렉산더 경영대학장의 말을 듣는 순간 신입생 모집난과 졸업생 취업난에 시달리는 한국의 일부 지방대학이 떠올랐다.

‘대학혁신 전도사’ 알렉산더 회장 “군살빼라, 선택하고 집중하라”

노던콜로라도대의 먼포트경영대를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혁신 전도사를 자처하는 조 알렉산더(사진) 경영대학장의 적극성과 억척스러움이었다.

지난달 30일 들렀던 그의 집무실에서는 책상에 놓인 노란색 플라스틱 바나나가 눈에 띄었다. 알렉산더 학장은 기자에게 사무실 한쪽 귀퉁이의 가로세로 1m 정도의 원숭이 벽화를 가리켰다. 그 원숭이 역시 바나나를 쥐고 있었다.

그가 ‘1분 경영자가 되는 법(One Minute Manager)’이라는 경영학 시리즈를 틈날 때마다 학생과 교수들에게 설파하자 학생 1명이 직접 그림을 그려 준 것이다. 그림 밑에는 ‘관리자가 하급 직원의 업무(원숭이로 비유)가 반드시 실무선에서 해결될 것임을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어느 순간 직원의 등에 있던 원숭이가 관리자에게로 넘어와 관리 효율을 망가뜨린다’는 시리즈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는 보직교수들에게도 원숭이를 연상시키는 바나나 모형을 책상에 놓도록 했다.

알렉산더 학장은 “대학의 혁신을 위해 경영자가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되는 철칙이 선택과 집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주에도 대만을 방문해 대학 당국자를 상대로 ‘대학 경영 혁신’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가 설파한 메시지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이런 강연은 먼포트대가 맬컴 볼드리지상 수상 대학으로 발표된 뒤 60차례 이상 계속되고 있다. 이날은 덴버 주변 지역의 학부모와 고교생들이 경영대 설명회를 들으러 온 날이다. 설명회나 본보 인터뷰 때도 그는 넥타이 차림이 아니라 대학 로고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

노던콜로라도대의 먼포트경영대 조 알렉산더 경영대학장의 집무실 한 귀퉁이에 그려진 작은 벽화. 덴버=김승련 특파원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실시한 신문사와 경영대학생 연결 프로그램을 로키산맥 지역 대학 가운데 제일 먼저 따왔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는 경영대 학생은 그 학기 수강 과목에 따라 맞춤형 기사를 제공받는다. 연간 비용은 39달러. 주변 학교들이 연 5000∼1만 달러의 가입비 문제로 뜸을 들이는 동안 그는 예산 담당자를 찾아가 ‘연 5000달러만 쓰자. 프로그램이 좋다’고 설득했다.

2004년 맬컴 볼드리지상 수상 발표일의 상황도 그의 스타일대로였다. 연방 상무부가 위치한 워싱턴은 이곳보다 2시간이 빠르다. 그는 “오전 7시(워싱턴은 오전 9시) 이후 언제든지 장관의 축하 전화가 걸려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보직교수 7명은 오전 5시 반부터 커피 잔을 들고 학장 방으로 모였다.

덴버=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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