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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스크랩] 파리 여행

2005.5.26 (목) 18:38   세계일보   세계일보 기사보기
[테마가 있는 배낭여행]''파리코뮌''을 찾아 떠난 페르 라셰즈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하면 에펠탑, 센강, 명품 거리를 떠올리거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을 추억거리로 삼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색다른 파리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른 새벽, 파리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푸는 둥 마는 둥 하고 무엇인가에 홀린듯이 지하철을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파리의 동쪽 끝에 위치한 페르 라셰즈로…. 왜 나는 그곳에 가게 되었을까?



“나는 5월의 햇살을 받으며, 그리고 말없는 묘석들을 바라보며 묘지의 담길을 따라 ‘코뮌 전사들의 벽’ 앞에 닿았다. 허름한 벽에 ‘코뮌의 죽은 이들에게’라고 쓰여 있는 비석이 붙어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초라한 비석이었다. 벽 앞에는 순례자가 없었다. 그래도 벽 밑에는 빨간 장미꽃 다발이 많이 쌓여 있었고, 벽 틈에도 장미꽃이 꽂혀 있었다. ‘코뮌 전사들의 벽’. 지금으로부터 백년도 더 전인 1871년 5월 28일 페르 라셰즈에서 최후까지 항전을 했던 147명의 ‘코뮌 전사’들이 바로 그 벽 앞에서 총살당했다. 이로써 ‘역사적 대희망’이었다고들 하는 ‘파리 코뮌’은 막을 내렸다.”(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중에서)

너무나 파랗던 19살 5월의 어느 날,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다. 기억 저 너머에 있던 한반도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광주에 대한 기억과 코뮌의 역사가 묘하게 겹치면서 울컥거리는 마음을 한참이나 다독여야만 했다. 그저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언젠가 유럽을 가게 된다면, 그리고 파리를 가게 된다면 꼭 가야만 하는 곳’이라고 스스로 페르 라셰즈 행을 다짐했었다. 그러고 나서 십년의 세월이 지나 배낭 하나 훌쩍 메고 유럽을 향했다. 런던에서 시작된 첫 배낭 여행은 처음부터 그 마지막이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파리 코뮌을 찾아 떠난 여행은 런던 웨스트 엔드의 뮤지컬 ‘레미제라블’로 시작해서 베를린 티르가르텐의 품에 있는 보불전쟁 승전탑을 지나서 파리의 페르 라셰즈에서 그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이다. 중세의 순례자들이 성지를 찾아 헤맸던 것처럼….



◇코뮌 전사들의 벽. 파리코뮌 당시 페르 라셰즈에서 최후까지 항전했던 147명의 ‘코뮌 전사’들이 이 벽 앞에서 총살당했다.

지하철 페르 라셰즈 역 입구에서는 유명인들의 묘지 위치를 표시해 놓은 지도와 헌화할 장미를 팔고 있었다. 성배를 찾아 헤매는 순례자처럼 나 역시 한 손에는 지도를 다른 한 손에는 장미 한 송이를 사서 그곳에 들어섰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피아노의 시인’으로 칭송받았던 쇼팽, 이탈리아 출신이면서 ‘에콜 드 파리’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명작을 남겼던 화가 모딜리아니, 동성애적 성벽으로 2년의 실형을 치른 뒤 영국에서 도망쳐 파리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 파리 밑바닥에서 물랭루주 스타로 발돋움한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샹송가수이자 영화배우인 이브 몽탕, 그리고 그룹 ‘도어스’ 의 짐 모리슨. 그들도 그곳에 있었지만 나에게는 1871년의 그 병사들의 벽이 더 의미가 있었다. 그 벽을 보기 위해 긴 여행을 했던 셈이니까.

그 벽을 찾기 위해 ‘익스큐즈 미’라고 말을 건네는 내게 적잖이 당황한 프랑스 청소부에게 다시 ‘코뮌’이라고 묻자 언덕을 넘어가라고 손짓해주었다. 그 순간 아무 감흥이 없던 그곳에서 페르 라셰즈의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코뮌을 느낄 수 있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언덕을 넘어 아우슈비츠 희생자를 위한 부조물을 지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코뮌 병사들의 벽’을 찾은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상상 속에 있었던 그 벽에는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는데 묘지의 한구석에 있는 초라한 모습뿐이었다. 그 앞에 있는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들의 무덤을 확인하고서야 그곳이 내가 찾던 곳이라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을 정도였다.

우리가 아는 멋진 이야기들이 사실 비참함 그 자체일 경우가 많다. 또 처절함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한참이나 그 벽을 더듬으며 그때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그 묘한 떨림. 동쪽의 끝에서 온 순례자는 지난 10년간 꾸었던 꿈을 그제서야 이루었다. 그리고 그 꿈의 끝을 위해서, 또 나에게 꿈을 주었던 그 병사들을 위해서 붉은 장미 한 송이만을 남긴 채 그곳을 떠나야 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날의 기억과 그 느낌은 나를 꿈꾸게 한다. 문세진·배낭여행 커뮤니티 ‘떠나볼까’(www.prettynim.com) 회원.



◇파리 밑바닥에서 스타로 발돋움한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 묘.





■여행정보


페르 라셰즈는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 일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장한다. 메트로 31번 또는 지하철 2호선 페르 라셰즈 역에 하차하면 바로 묘지와 연결되며, 파리 중심에서 지하철로 20분정도 소요된다. 홈페이지(www.paris.org/Expos/PereLachaise)에 주요 인사의 묘를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출력해가면 도움이 된다. 페르 라셰즈 홈페이지(www.pere-lachaise.com) 참조.


페르 라셰즈가 있는 파리는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들르는 도시로 전체가 관광지이다. 그래서 언제나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기도 하다. “미라보 다리 밑으로 센강은 흐르고…” 로 시작되는 아폴리네르 시의 배경인 미라보 다리, 최근 오르셰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권씩 들고 있다는 밀리언셀러 ‘다빈치 코드’, 영화 ‘아멜리에’ ‘퐁네프의 연인’ ‘프렌치 키스’ ‘비포선셋’ 그리고 많은 연인들을 설레게 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까지. 파리 시내 곳곳은 영화와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영국 왕세자빈 다이애나가 슬픈 삶을 마감했던 알마(Alma) 지하도 역시 센강변 옆에 위치한 바토무슈 유람선 선착장 근처에 있다. 이런 문학과 예술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파리 시내를 헤매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된다.

파리는 서울의 6분의 1 크기다. 특히 파리의 허파로 불리는 뱅센 숲과 볼로뉴 숲을 제외한다면 실제 면적은 그리 크지 않다.

파리 시내 여행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좋다. 지하철 일회권 10장짜리 묶음인 카르네를 10.5유로(약 1만4000원)에 판매하니 일일권(8.35유로)을 구입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파리의 숙소는 최고급 호텔에서 저렴한 민박 또는 유스호스텔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옥토퍼스(www.octopustravel.com)나 호스텔타임스(www.hosteltimes.com) 등을 이용하면 한국어가 지원되기 때문에 편리하고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
출처 : 닥터상떼
글쓴이 : 상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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