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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

[스크랩] [ITALIA(13)] 피렌체Firenze(I)

아르노 강을 중심으로 한 피렌체 전경. 맨 앞에 폰테 베키오, 그리고 그 뒤로 폰테 산타 트리니타가 보입니다.

 

이번에 방문할 도시는 토스카나의 주도인 피렌체입니다. 이 도시는 특히 르네상스의 발생지로서, 아름다운 건축물과 이 도시 출신의 유명한 화가, 조각가들이 남긴 예술품으로 가득합니다.

 

CLUB

ACF Fiorentina

 

1926년에 창단된 이 팀은 리베르타스Libertas와 클럽 스포르티보 피렌체Club Sportivo Firenze라는 두 스포츠 클럽이 합쳐지면서 결성되었습니다. 컵 대회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 팀은 그들의 첫 트로피를 39-40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면서 획득했습니다. 55-56 시즌에는 드디어 첫 스쿠데토 달성에 성공합니다. 60년대에는 두번째 스쿠데토(68-69시즌)와 60-61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와 컵 위너스 컵 우승하는 등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74-75 시즌에 다시 코파 이탈리아 우승한 후 클럽은 침체된 시기를 맞이하는데 결국 93-94 시즌에는 세리에B로 강등되고 말죠. 하지만 세리에A로 돌아온 후 곧 95-96시즌과 2000-2001시즌에 다시 코파 이탈리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이 무렵이 루이 코스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프란체스코 톨도 등이 활약할 때였습니다). 96년에는 당시 스쿠데토를 가져간 밀란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까지 차지했죠.

하지만 이런 피오렌티나의 중흥기는 2001년에 팀의 재정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끝나게 됩니다. 팀의 주축선수들을 모두 팔았지만 파산을 막을 수는 없었죠. 결국 팀은 피오렌티나 비올라Fiorentina Viola라는 이름으로 세리에C2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2003시즌이 끝나고 다시 피오렌티나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게 된 팀은 그 시즌에 세리에B의 참가팀이 24팀으로 느는 바람에 C1을 건너 뛰고 세리에B에 참가했고 바로 다음 시즌에 세리에A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첫 시즌인 지난 시즌은 강등권 탈출에 힘들어했지만 이번 시즌은 현재까지 매우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세리에A의 최대 화제인 스트라이커 루카 토니Luca Toni의 12경기 15골의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앞세워 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칼리아리 전에서의 요르겐센과 토니.

 

팀은 보라색 저지를 입기 때문에 비올라Vioal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피오렌티나의 홈구장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란키Stadio Artemio Franchi. 원래 코무날레Comunale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구장은 이탈리아 축구협회(FIGC) 회장이자 피오렌티나 임원이었던 아르테미오 프란키를 기념하기 위해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47,000여 명을 수용하며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증축되었습니다.

 

FIRENZE

토스카나 도시가 세번째이기 때문에 피렌체의 지도는 생략합니다. 전의 리보르노나 시에나 편에 나와 있는 지도를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토스카나는 에트루리아인들의 땅이었지만 도시로서의 피렌체는 로마 시대가 된 이후에 생겨났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의 퇴역군인들에게 아르노 강변의 비옥한 땅을 나누어 준 것이 이 도시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와 이탈리아 북부를 잇는 가도인 비아 카시아Via Cassia 근처에 자리잡은 덕분에 3세기 무렵엔 중요한 무역 중심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황제는 이 시기에 피렌체(당시 이름은 플로렌티아Florentia)를 토스카나 지방의 수도로 격상시켰습니다.

로마가 멸망한 후 도시는 비잔틴, 오스트로고트의 지배를 받으며 피폐해졌습니다. 하지만 6세기에 롬바르드족의 지배와 함게 평화가 돌아왔고 774년에는 샤를마뉴에게 정복당해 프랑크령(토스카나 공국, 이때는 루카Lucca가 수도였습니다)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1000년에 우고Hugo 백작이 수도를 피렌체로 옮기면서 도시는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11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한 베네딕트회 교회인 산 미니아토 알 몬테San Miniato al Monte. 성 미니아토는 250년 카시우스 황제 시대에 순교한 피렌체의 성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미니아토는 처형된 후 자신의 머리를 들고 아르노 강 남쪽의 언덕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세례당과 비슷하게 흰색과 암록색 대리석이 조화를 이룬 파사드는 단정한 건물의 외관에 리듬감과 화려함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마틸다Matilda 백작부인(이른바 카노사Canossa의 굴욕사건에 등장하는 카노사 근처의 성이 그녀의 소유였습니다) 치하에서 피렌체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에게 등을 돌리고 교황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피렌체는 1115년 자치권을 얻어 피렌체 공화국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기벨린Ghibellines 파(황제파)와 겔프Guelphs 파(교황파)로 나뉘어 내분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피렌체는 은행업과 양모를 비롯한 직물업을 기반으로 부를 쌓아올리고 유럽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피렌체의 금화인 피오리노fiorino(플로린florin)는 유럽의 기준 화폐로 쓰였으며 많은 군주들이 피렌체의 은행에서 돈을 빌려 썼습니다.

 

중세 유럽의 공용 화폐, 피오리노 도로fiorino doro

 

이러한 번영은 1348년의 흑사병 창궐로 위기를 맞습니다. 보카치오Boccaccio의 데카메론Decameron의 배경이 된 이 대재앙은 8만에 이르던 피렌체 이구를 2만 5천으로 감소시켰고, 이로 인한 불황은 소모공(치옴피Ciompi)들을 분격시켜 치옴피의 난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이 하층민의 정권은 1382년 상류 계급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알비치Albizzi가가 정권을 잡았지만 권력의 추는 15세기 중반에 메디치Medici가로 기울게 됩니다. 국부(Pater Patriae)라고 불린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그의 아들 피에로Piero, 손자 로렌초 일 마니피코Lorenzo il Magnifico까지의 3대 동안, 메디치 가는 겉으로는 공화정을 유지했지만 사실상 피렌체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군주와 같은 지위를 유지하면서 이 꽃의 도시에서 일어난 문예 부흥(르네상스Renaissance, Rinascimento)을 후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문의 독재적 권력을 불안하게 생각한 피렌체 시민들은 로렌초의 사망 후에 메디치가를 추방하기에 이릅니다. 시장(곤팔로니에레Gonfaloniere)을 중심으로 한 공화정으로 돌아갔다가 도미니코회 수도사인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의 신권 정치와 몰락 등을 경험하면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낸 끝에 코시모1세Cosimo I의 복귀와 함께 피렌체는 공작령이 되었고 1569년 토스카나 대공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사보나롤라의 처형(작자 미상). 이 그림은 1498년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에서의 사보나롤라의 화형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설교로 피렌체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수도사는 교황청을 비난하다가 결국 이 같은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메디치 가계가 끊긴 후에는 오스트리아계 공작들의 지배를 받았고 1859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이탈리아 왕국의 통일 후 1865년부터 1870년까지는 이탈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중세 이후 라틴어에서 벗어나 토스카나어로 훌륭한 작품을 남긴 작가들(특히 단테)은 결국 토스카나어를 이탈리아어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르네상스의 발상지로서 수많은 천재들을 배출한 것은 현재까지도 이 도시의 자부심이죠.

 

폰테 베키오의 귀금속 가게

 

제조업, 공업이 발달했으며 예로부터 가죽제품과 귀금속 세공품이 유명합니다. 아르노 강의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위에는 귀금속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는 걸 볼 수 있죠. 또한 피렌체는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d(1826~1890, 본명은 카를로 로렌치니Carlo Lorenzini)의 유명한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Le Avventure di Pinocchio)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이 나무 인형들은 피렌체 상점들에서 자주 볼 수 있죠. 코가 길고 빨간 옷을 입은 모습으로 말입니다.

 

피렌체에서도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파스타를 주로 먹으면서 여행했습니다. 파스타를 좋아하기 때문에 별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많이 걷다 보니 체력보충이 필요할 것 같아 고기를 먹기로 하고 호텔 근처의 작은 식당에 들어갔었죠. 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그 식당 주인 아저씨는 주문받고 요리하고 서빙하고, 1인 3역을 하고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아무튼 우리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를 시켰습니다. 이건 피렌체식의 티본 스테이크인데 로즈마리, 올리브유, 레몬으로 양념한 고기를 숯불에 직화 방식으로 굽는 것입니다. 나온 고기를 보니 핏물이 살짝 비치는 게 좀 너무 덜 구운 게 아닌가 싶었죠. 더 구워 달랄까 하다가 배도 고프고 커뮤니케이션에 자신도 없어서(이탈리아에선 영어가 잘 안 통합니다) 그냥 먹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습니다.  몇 분 안 되어 우리는 T자 모양의 뼈까지 빨고 있었죠. 지금도 피렌체 하면 그때의 그 비스테카가 생각납니다.

돌로 포장된 좁은 길들을 사이에 두고 역사적인 건물들과 조각품들이 가득한 피렌체의 중심가는 아주 작은데도 볼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다음 번에 피렌체 관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도록 하죠.

출처 : L'Archivio
글쓴이 : SooYo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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