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다비드'의 머리 부분. 자신들의 공화국과 자유를 무척 소중히 여겼던
피렌체인들은 모든 억압에 대항하는 인물로서의 이 다비드를 자신들과
동일시했습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들로 유명합니다. 이 유서깊은 도시의 중심가는 매우 작아서 걸어서 구경하기 아주 알맞은 크기죠.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100년 남짓한 동안에 그렇게나 많은 미술가들, 학자들, 탐험가들이 살았던 걸 생각하면 아주 놀랍다는 느낌이 듭니다.
팔라초 우피치의 회랑
그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은 현재 이 도시의 박물관들을 아주 풍요롭게 해주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에 관심을 두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도 여기에 있죠. 영어의 ‘office’와 같은 어원의 이름을 가진 이 건물은 코시모 1세의 사무실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시뇨리아 광장 남쪽, 아르노 강에 면한 파사드를 가진 이 거대한 건물은 ‘ㄷ 자’ 형으로 기다란 복도를 가진 두 개의 건물이 남쪽 복도로 연결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콜렉션들이 주축이 되어 있는데 질적인 면에서도 최고 수준입니다. 워낙 유명한 미술관이다 보니 아침 일찍 가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갤러리는 건물 상층부에 있기 때문에 계단을 올라가 긴 복도를 따라 감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태피스트리, 조각품들, 천장화로 장식된 복도 또한 매우 멋지죠.
작품의 양이 매우 많기 때문에 일일이 얘기하기는 어렵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몇 작품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서 처음 보게 되는 작품들은 고딕 미술들입니다. 두치오, 치마부에Cimabue,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고딕 회화에 별 관심이 없어서 빠른 속도로 봤습니다. 사실 금빛 바탕에 비슷비슷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어서 좀 지루하죠. 그 다음으로 초기 르네상스 작품들이 있는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ro della Francesca, 파올로 우첼로Paolo Ucello 같은 화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보티첼리의 스승이었던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o Lippi를 거쳐 보티첼리의 걸작들이 있는 방에 이르게 되는데 아마 우피치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방에선 보티첼리의 너무나 유명한 두 작품, ‘봄(La Primavera, 1478)’과 ‘비너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 1485)’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 역시 정말 아름답지만 많이들 보셨을 테니 이번엔 다른 작품을 볼까 합니다.
보티첼리는 많은 성모를 그렸는데 여기 보이는 이 톤도 형식의 성모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섯 명의 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1481)라는 제목이지만 성모가 쓰고 있는 책의 첫 단어가 ‘마그니피캇’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마그니피캇의 성모(Madonna del Magnificat)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구도라는 면에서 보면 이 그림은 천사들이 톤도의 테두리에 끼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어색한 면이 있지만 이 그림 앞에 서면 성모의 아름다운 얼굴에 매혹되어 그런 단점들은 눈에 들어 오지도 않습니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에 이례적으로 많은 양의 금을 사용했는데 복사본으로 보면 천사들의 머리카락에 칠해진 금선이 도드라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치 진짜 금발 같은 효과를 줍니다.
미켈란젤로의 ‘도니 톤도(성가족)’, 레오나르도의 ‘수태고지’, 미완성작인 ‘동방박사의 경배’등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입니다. 팔각형에 붉은 실내장식으로 인상적인 트리부네Tribune에는 메디치가 구성원들의 초상화와 그들이 특히 아꼈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 매너리즘 화가인 아뇰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가 그린 ‘엘레오노라 다 톨레도와 그녀의 아들 지오반니의 초상화’(1545)를 볼까요?
코시모 1세의 첫번째 부인이자 나폴리 부왕의 딸인 톨레도의 엘레오노라가 그녀의 아들과 함게 있습니다. 엄숙하지만 부드러워 보이는 엘레오노라와 어린 소년의 귀여운 모습이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인물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공작부인이 입고 있는 화려한 드레스입니다. 흰 비단에 자수와 벨벳, 그리고 진주로 장식된 값비싼 드레스는 후에 메디치가의 무덤을 열었을 때 시신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이 미술관에는 피렌체 출신 미술가들 뿐 아니라 베네치아의 티치아노Tiziano, 베로네제Veronese, 틴토레토Tintoretto, 플랑드르 등 북유럽 화가들인 반 데르 후스Van der Goes, 반 데르 바이덴Van der Weyden, 루벤스 등 정말 이름만 열거하기도 바쁠 만큼 많은 걸작들이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카라바조 Caravaggio의 작품들을 전시한 방이 복원중이라 볼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안뜰에서 바라본 팔라초 피티. 수평 띠로 장식된 벽기둥들이 매우 복잡한 느낌을 주는데, 매너리즘 건축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우피치는 ‘바사리의 복도(Corridoio Vasariano)’라 불리는 긴 복도로 아르노 강 건너의 팔라초 피티Palazzo Pitti와 연결됩니다. 상인인 루카 피티Luca Pitti가 지은 이 건물은 그가 파산한 후에 톨레도의 엘레오노라가 구입해 역시 메디치 궁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건물은 현재 여러 박물관으로 쓰이는데 회화 컬렉션인 갈레리아 팔라티나Galleria Palatina, 은 박물관(Museo degli Argenti), 현대 미술 갤러리(Galleria d’Arte Moderna) 등이 있습니다.
갈레리아 팔라티나의 회화 작품들은 우피치보다 양은 적지만 질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데, 티치아노, 라파엘로, 지오르지오네, 카라바조, 루벤스 등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바로크 화가인 크리스토파노 알로리Cristofano Allori(1577~1621)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1615)’ 입니다. 황금색과 붉은색, 푸른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유디트는 희생자인 적장의 머리를 왼손에, 칼을 오른손에 들고 승리자처럼 서 있습니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표정의 유디트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부드럽고 우아한 색채와 형태로 라파엘로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의자의 성모(Madonna della Seggiola)’. 붉은 벨벳이 씌워진 의자에 앉아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옆에서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있는 또 하나의 아기는 세례 요한일 것입니다. 성모를 아주 많이 그린 라파엘로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매력적인 그림인데, 아마도 그것은 우리를 바라보는 성모의 시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각된 금빛 액자도 아주 화려하죠? 화면을 꽉 채우는 인물들이 무리 없이 톤도 형식에 들어가 있는 것이, 역시 대가다운 솜씨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갤러리를 구경한 후에는 아파르타멘티 레알리Apartamenti Reali라고 불리는 방들을 구경할 수 있는데 토스카나 대공의 알현실, 그리고 그 가족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방들이라 아주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각 방마다 붉은색, 하늘색, 녹색 등으로, 색깔을 달리해서 벽지와 가구 등이 맞춰져 있는게 기억에 남습니다. 팔라초 뒤쪽으로는 보볼리 정원(Giardino di Boboli)이라고 불리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습니다. 조각상과 분수, 동굴, 산책로와 나무 터널, 울타리, 화단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이 정원은 경사진 대지에 위치해 이탈리아의 테라스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한눈에 확 펼쳐지는 프랑스식 정원과 달리(베르사이유의 양탄자 같은 화단과 넓은 조망을 떠올려 보세요) 경사면을 따라 다른 분위기의 경치가 나타납니다.
다시 아르노 강 북쪽으로 와서, 갈레리아 델라카데미아Galleria dell’Academia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미완성작들과 다른 여러 작가들의 작품도 볼 수 있지만, 역시 이곳에는 입구 홀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David’가 압권입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서 별로 말이 필요 없겠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컸고(434cm 높이입니다) 역시 상상 이상으로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어떤 각도로 보아도 멋지더군요.
바르젤로의 안뜰. 안뜰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피렌체 시장을 지낸 인물들의 문장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다른 유명한 조각품들을 보고 싶다면 바르젤로 국립 박물관(Museo Nazionale del Bargello)으로 가야 합니다. 팔라초 베키오와 비슷한 분위기의, 요새같이 생긴 이 건물은 한때 시청, 감옥과 재판소, 경찰청 등으로 쓰였지만 19세기에 우피치의 넘쳐 나는 작품들을 정리하기 위해 조각과 공예품들을 옮겨 오면서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 도나텔로Donatello, 베로키오Verocchio, 기베르티 같은 조각가들의 작품과 로비아의 테라코타 작품들, 그리고 도자기류나 피에트레 두레(대리석 및 준보석 상감) 작품 등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몇 개의 르네상스 궁전들을 보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메디치가를 비롯하여 피렌체의 부유한 가문들은 훌륭한 르네상스 궁전들을 남겼습니다. 팔라초 스트로치Palazzo Strozzi, 팔라초 루첼라이Palazzo Lucellai, 팔라초 메디치-리카르디Palazzo Medici-Ricardi, 팔라초 안티노리Palazzo Antinori등이 그것인데 보통 3층으로 이루어지고 회랑으로 둘러싸인 안뜰을 갖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은 팔라초 루첼라이인데 양모 상인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지오반니 루첼라이Giovanni Lucellai가 알베르티의 설계로 지은 것입니다. 르네상스 건축의 비례원칙에 따라 아주 절제된 외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건물들은 다소 위압적이며 답답해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보통 분수와 조각상들로 꾸며지고 1층이 회랑으로 되어 있는 안뜰은 오히려 개방된 느낌이며 아름답고 쾌적하죠.
현재 피렌체 주정부청사로 사용되는 팔라초 메디치-리카르디는 건물의 완성도 면에서는 팔라초 루첼라이만 못하다는 평가를 갖지만 베노초 고촐리Benozzo Gozzoli(1420~1497)가 그린 화려한 프레스코로 꾸며진 작은 예배당, 카펠라 데이 마지Capella dei Magi 때문에 유명합니다. 이 상당히 작은 방은 메디치가의 개인 예배당으로 쓰인 곳인데 사방의 벽이 모두 경배를 드리러 가는 동방박사들의 행렬 그림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밝고 선명한 색채로 매우 장식적인 고촐리의 화풍은 이 작지만 화려한 방에 매우 잘 어울립니다.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축제 행렬과도 같은 이 그림에 고촐리는 자신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사람들 뿐 아니라 동시대의 학자와 예술가들, 그리고 고촐리 자신까지 등장시켰습니다.
조각된 몰딩과 벽기둥, 상감 바닥과 고촐리의 프레스코로 화려하게 꾸며진 카펠라 데이 마지.
다음엔 아직 순서가 아니지만 곧 열리는 겨울 올림픽에 맞춰서, 토리노로 가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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