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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스크랩] 루브르 박물관 소개 (여행정보)

루브르 박물관전경

 

 



페르시아 예술 :  페르시아 왕의 사수대 (루브르박물관)

 이 유명한 연화에 칠보를 덮는 사수대의 못급은(메소포타미아는 돌이 귀해, 연화를 태양열에 구워낸 뒤 칠보를 입힌다.) 불사신이라 불리는 왕의 특별호위대였다. 각각의 사수는 1.47m이고, 다리우스, 시저의 호사스런 궁전벽을 그렇지 않은 열로 채우고 있다. 이것은 세부에 걸쳐 각각 다르지만, 완전히 이것들의 반복은 단조로움조차 보이고 하나의 모습을 무한한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는 듯 하고, 또 이 연속함에 중지하는 것이 없는 듯 함 조차 보인다. 각각의 엄숙한 포즈, 눈부시게 아름다운 의상은 패르시아 제왕의 권력의 위대함을 소리 높혀 연주하고 있는 듯 하다. 기원전 5세기 아크메니드 통치기는  중동의 광대한 범위에 걸쳐 거의 2세기 동안 영토를 지배하고 있다.

헬레니즘 예술  : 미로의 비너스 (루브르박물관)

 이 상은 티크로스제섬의 미로섬에서 1820년에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그리이스 여성미의 전형성이 되었다.
  길이는 2미터 남짓, 팔은 부러지고 분쇄되어 여하한 모습이어서 추측할 여지도 없지만, 필시 기원전 2세기경 헬리니즘 시대에 속한 형태라 생각된다.
 화실성에 있어서는 조각가 플락시 텔레스 원형에서 파생된 포즈일 것이다.
 이 위대한 예술가 외의 작품과 같은 모양으로, 모습은 발랄하고 경쾌하고 균형을 유지하고 무엇인가를 지탱하려고 하듯이 몸을 유연하게 휘여서 곡선을 이루고 있다.
 비평가의 눈, 모든 심미가들을 여신의 무거운 의복의 주름이 미끄러 떨어질 듯 한 속에 불쑥 드러내는 나체에 오랜 시간 못이 박혔다.
 같은 조형상 소재, 하얀 대리석이 아름답고 발랄하고 경쾌한 여신의 몸에서 전통적이고 고전적 가치를 인정한다.

헬레니즘 예술 : 사모트라차의 니케 (루브르박물관)

  1863년 머리와 양팔이 없는 니케가 사모트라차에서 발견되었다(1950년에 한쪽 팔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190년 경 로드스섬의 사람들이 그 안티오키아 3세에 대항해서 싸웠을 때 배에 달려있던 심볼의 하나이다. 승리의 니케는 배의 축끝에 있었다.
 격심한 조풍은 배를 격타하고 의복의 주름은 과도의 물보 라로 몸에 착 점착한다. 모습은 거의 바로크에 가깝게(이것은 작품을 어디 쪽이냐 하면 년대가 내려간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 니케는 흔들려 움직이는 배와 함께 바람에 향해 뒤로 휘어지며 거칠게 전진한다. 2.75미터 하얀 대리석에 조각된 혼동되지 않은 중요한 헬레니즘 조소미술의 감동적인 작품이다.

아비뇽파-아비뇽 근처의 빌누브의 피에타 (루브르박물관)

  이 아름다운 타브로는 고딕 주식의 정말 걸작이다.
 1793년의 화재 때에 재난을 피해 1801년에 아비뇽 근처 빌누브교회에서 발견되었다. 오랜동안 그것은 의문시되고 불확실하였지만, 그 밖의 신중한 고찰에서 겨우 분명해졌다.  어느 비평가는 앙게랑 칼들의 사인을 분명히 특별한 초상화로 취급하고 그것에 대해 다른 비평가는 스페인 화가인가 그렇지 않으면 반델 바이든에서 파생한 화가라 했다.
 이 한 세트의 모습은 다른 금색과 대상적으로 유리해서 이미 최후의 고딕양식의 유산이다 갑자기 하늘은 치밀한 청색으로 바뀐다.
 대부분의 피에타상은 상아, 나무, 돌로 조각 되었다. 아름다운 모습의 색채 그리스도는 마리아 무릎 위에 몸을 맡기고 성 죠반니는 표정이 풍부하게 몸을 굽히고, 그리스도 머리 위에서 가시관을 빼려 하고 있다.  어느 비평가에 의하면 그림 왼쪽 인물은 시주를 소개한 모습으 로 사도좌 성당 참사회원의 장 드 몽타 냐크이다. 높은 감각의 배수는 깊이 감동적이고, 평안한 그리스도 몸의 선은 비극에 빠진 치밀한 군상들속에 정지되 어 있다.  견고한 무되는 특히 인물 용모에 고뇌를 표현하고,품격높게 완성된 프랑스 회화의 걸작이다.

쟝푸케(1420∼1480) 프랑스왕 샤를 7세의 초상 (루브르박물관)

 이 그림은 나폴레옹 1세와 마리아 루이자 결흔식이 1810년에 거행된 카레의 방에 있다.  쟝 푸게의 이 유명한 작품은 그의 이탈리아 여행 직후 1444년 경 그렸다.  왕에 의해 이 그림은 파리 남부에 있는 브루쥬의 생트 샤펠에 기증되어 1757년 교회가 파괴될 때 까지 이곳에 보관되었다. 루브르의 콜렉센에는 1839년 들어갔다.  왕의 호화로운 의상과 바탕색과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곳은 분명히 푸케는 이탈리아에서 피사네로부터 그리고 이탈리아 14세기 말기 화가들로부터 습득한 것이라 생각된다. 액자에는 "3개의 승리"라 기록 되 있다.

 

죠르쥬드래트르(1593∼1652):마다레나와 등유램프(루브르)

 죠르쥬 드 래트르는 빅 슬 세일에서 태어나 르네빌에서 죽었다. 기교있는  구성의 그의 그림은 매우 복잡하다. 그 의 취향은 치밀하고 게다가 방대하다.
 기하학적으로 닫혀져 있고, 한줄기의 빛에 의해 신비적이다.
 카라바죠 연구를 했음에 명료하다. 어떤 비평가는 1612∼13년에 걸쳐 로마여행한 후 이 작품이 완성된 것이라 하였고, 다른 의견으로는 게랄드 데래 노티와 교제가 있었을 때부터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라 한다.
 그는 또, 많은 의외성을 용해하는 빛과 그늘의 문제에 매료되어 있었다.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은 1635∼40년에 제작된 것이라 생각되고,실망과 고독 속에서 안고 있는 두개들을 마치 기계적으로 애무하고, 눈을 지그시 생명이 다하는 것을 상징하는 불과 같은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리콜라푸산(1594∼1665) : 사비니사람들의 약탈(루브르박물관)

  프랑스에서 태어난 주산은 몇 년씩이나 로마에서 살다 로마에서 죽었다.
서서히 생겨난 바로크 세계와 교섭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티칸의 라피엘 작품속에 아직 살아있던 후기 르네상스 미술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푸산은 특히 큰 구성의 신화나 역사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이 사비니 사람의 약탈 제재는 또 하나 그려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 그것은 거의 1637년이라 추정되는 것으로 루브르 작품 수년뒤에 그려진 것이라 생각된다. 주산의 그림은 인물의 격정이 군상으로서 생생히 그려져 있고, 배경의 엄격한 고전적 건축물이 정지되어 있어서 매우 독특하다.

크로드로랑(1600∼1682) : 로마의 바티노 광장(루브르박물관)

  크로드 로랑은 크로드 지레 그리고 푸산과 같이 긴시간 로마에 살고 있었다. 그의 그림 로마 지방의 풍경화는 따뜻한 빛이 가득차고 황금으로 빛나고 졸음을 가져오는 오후의 포로 로마노 지면에 그늘을 길에 뻗친다. 그의 눈은 늙은 농부가 살고 있는 모습인지, 쓰러진 원기등과 기둥머리, 부숴진 건물의 파풍인지 문위로 쏟아진 빛을 더없이 사랑했다. 그의 그림은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인 풍경이기 때문에 푸산과 전혀 다르다.

루이 루 난(1593?∼1648) : 농민의 가족(루브르박물관)

  난의 집에는 3명의 형제가 있고 앙트와누와 루이와 마튜이고, 루이는 가장사려 깊었다. 그는 독특한 초상화를 그렸다. 호사스런 궁전보다도 하층 사회 사람들과 시골 풍경을 사랑했다. 어두운 화면 속에서 조그만 빛에서 카라 바죠풍으로 빛나서 반향한다. 그 카라 바죠는 빛을 추상적으로 또는 초 자연적으로 화로가 그을리고, 또는 선명하게 타는 듯이 변화 시킨다. 이 가난한 농가의 사람들은 마치 사진기 앞에 있듯이 각각의 일을 중지하고 있다. 그는 화가이기 이전에 시인이고, 방의 조그만 부분에서 원망을 진실을 드러내고, 순수하고, 장식없는 세계를 감동과 비통을 가시고 그려내고 있다.

출처 : 본머스 벼룩시장 & UKC 어학연수
글쓴이 : 귀족이되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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