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여행 ] 퐁텐블로와 베르사이유 ( 프랑스 파리 ) 와우 |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베르사이유 궁전. 모두 '일 드 프랑스'라고 불리는 파리 근교 100km 안에 모여 있다. 프랑스적인 여유와 낭만이 있는 파리 근교의 명소를 함께 산책해 보자
그 가운데 퐁텐블로성과 숲에 대한 기대는 각별했기 때문에 먼저 찾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들러보게 되는 바르비종 마을도 목가적인 풍경의 화가 마을이라는 소문을 들어 꼭 들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 대청 마루나 싸구려 식당 벽 한쪽에 걸려 있던 밀레의 '만종(晩鐘)'을 보면서 느꼈던 경건함이나 목가적인 분위기를 다시 기억해 내 되새김질하고 싶었기 때문에 바르비종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파리에도 역시 러시아워는 존재했다. 경험이 없어 아침을 먹고 여유 있게 출발한 것이 화근. 출근 교통 체증에 걸려 파리 시내에서 아까운 시간을 1시간 정도 보낸 후 겨우 고속도로에 올라설 수 있었다. 별 체증 없이 시원스레 뚫린 길을 약 1시간 정도 달리면서도 눈은 가자미눈이 된다. 온통 불어로 된 도로 안내판에서 '바르비종'을 찾기 위해서다. 만종의 무대, 바르비종 간절한 마음으로 두리번거린 탓인지 바르비종으로 내려서는 출구를 지나치지 않고 발견했다. 전형적인 프랑스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갑자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한 것과도 같이 눈앞에 펼쳐진 밀밭은 밀레의 그림 그대로였다. 그러나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는 두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다만 '만종'이 그려진 배경임을 알리는 푯말이 그 사실을 확인이라도 해주려는 듯 밀밭 가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바르비종은 밀레를 비롯한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살았던 마을. 지금도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여 사는 조용한 곳이다. 찾은 시간이 아침 시간이기 때문인지 마을은 적막하다. 자동차 두 대가 스쳐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마을을 둘러보는데 불과 1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눈길 가는 곳에 자라잡고 있는 작은 화랑, 카페, 아틀리에들은 이방인의 신선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 마을에서 그림을 그렸던 바르비종파 화가들 가운데 가장 친숙한 이름은 밀레다. 1849년 이 곳으로 이주해와 살았다고 하는 밀레의 집은 담쟁이 덩쿨로 둘러 쌓여 있었다. 지금은 밀레 전시관으로 이용되는데 아직 10시가 되지 않아서인지 문이 닫혀 있었다.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이 없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입구에서 서성거리는데 버스 한 대가 도착해 관광객들을 내려놓는다. 반갑게도 같은 핏줄이다. 조용했던 집앞이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하자 조용한 마을이 갑자기 관광명소다운 분위기로 변한다. 말발굽 모양으로 나 있는 바르비종 마을길을 거닐면서 거리구경을 했다. 작은 소품 장식들이 걸려 있는 작은 집이나 기념품 상점도 기웃거리며 감상에 젖어 걷다가 막 문을 연 것 같은 카페을 만났다. 들어가 보니 탁자 서너개 정도. 그러나 유화들이 걸려 있는 벽은 마치 작은 전시회장 같았다. 실제로 그 그림들을 팔기도 한다. 카페를 나설 때쯤 마을이 서서히 깨어나는 것 같았다.
바르비종을 떠나며 시작되는 숲, 자동차로도 제법 달려가야 하는 그 숲의 끝부분에서 우회전하자 성으로 들어가는 것 같지 않은 성문이 문득 나타난다. 퐁텐블로 숲은 오래 전부터 왕실의 수렵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 아름다운 숲 속에 오랜 세월에 걸쳐 세워진 성채가 장중한 퐁텐블로 성이다. 퐁텐블로 성의 첫인상은 상당히 소박해 보인다. 화려한 프랑스 궁의 이미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궁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역사의 흔적이 느껴진다. 바르비종파 화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초기 퐁텐블로파 화가들의 그림과 12,3세기부터 파리 왕가와 귀족들이 스쳐 지나가며 남긴 것들이 마치 역사의 주마등처럼 늘어서 있다. 봉건 왕조시대부터 나폴레옹 3세까지의 흔적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성에 대한 관심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는 황녀의 금빛 침실이나 황제에 올랐었던 나폴레옹의 유품 같은 전시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궁 뒤편의 자연에 가까운 조경으로 이뤄진 정원과 퐁텐블로 숲에 있었다. 원래 프랑스 정원은 잘 꾸며진 조경을 특징으로 한 세련된 아름다움에 있다. 나중에 찾아간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에서도 그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퐁텐블로 성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곳은 백마 광장이다. 나폴레옹이 폐위 조치되어 엘바섬으로 유배되며 근위병들에게 이별을 고했다하여 흔히 이별 광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평민의 신분으로 황제에 올랐고, 역대 왕들이 고급 위락 시설로 이용한 이 성에서 머무르며 영광과 오욕의 절정을 체험했을 나폴레옹을 떠올리게 된다. 성채 뒤쪽에는 인공으로 만든 커다란 연못이 있다. 호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커다란 연못을 일깨우고 있는 분수대가 한가롭게 보인다. 생각에 잠겨 산책하는 사람들, 편안히 앉아서 호수의 물고기를 바라보며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 오솔길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위에 담겨 있다. 이 곳을 찾는 이들은 관광객 보다 프랑스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사람들 가운데 이방인인 내가 섞여 한가로운 한 때를 보냈다. 화려하지 않은 친근한 정원과 자연스러운 숲이 모든 것을 감싸주는 느낌이다.
베르사이유는 퐁텐블로에 비하면 훨씬 역사가 짧은 지역이다. 17세기경 루이 13세가 사냥을 하다가 세운 오두막이 그만 루이 14세에 이르러 엄청난 대 역사(力使)의 현장이 되어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베르사이유궁 입구 주변은 의외로 복잡했다. 많은 사람들의 조언대로 정문 앞까지 오는 고속 지하철 C5 라인의 리브 고쉬역에서 내려 걷는 것이 탁월한 선택일 것 같다. 퐁텐블로에서 다시 파리 시내를 거쳐야 베르사이유에 갈 수 있고 주차하기도 매우 어려웠으니 말이다. 정문에 들어서면서부터 베르사이유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나올 때까지 내내 느낀 점은 모든 것이 '절대 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이었다. 정문에 들어서면서 무심코 밟는 돌판들은 지하 1미터 이상 거대한 돌들을 층층이 깔아 단단히 다진 것이었다. 말과 마차에 의해 바닥이 패이지 않도록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말 탄 루이 14세의 동상은 군림하듯 버티고 서 있어 절대 군주 태양왕의 위용을 느끼게 한다. 궁전과 정원은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표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선 관람객의 행렬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화려하다고 하면 말이 될까? 화려하고 커다란 샹들리에와 조각, 부조들로 장식된 복도와 복도 좌우에 배치된 각 각의 방들이 지니고 있는 화려한 아름다움이 말문을 닫게 한다. 마리 앙뚜아네트 조차 이 궁전보다 프티 트리아농이란 작은 별궁을 좋아하였다 하니 그 당시에도 베르사이유궁은 아름답고 쾌적한 궁이 아니라 화려하고 번잡한 곳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왕비조차 불편하게 만드는 베르사이유는 사람을 위한 궁이 아니라 권력을 자랑하기 위한 건축물 자체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궁전 안에는 헤라클레스방, 예배당, 그리고 풍요의 방, 비너스방 등등 다양한 이름의 방들이 있는데 거울의 방은 그 중 인상 깊다. 거울의 방에는 루이 14세의 통치 기간을 나타내는 17개의 창문과 거울, 그 위에 400개의 거울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창밖으로는 대운하까지 보이는 전망도 좋은 방이다. 대관식의 방과 프랑스사 박물관까지 보고 나오자 가벼운 편두통이 올 정도로 정신이 없다. 역사의 뒤편에 있는 이야기까지 새겨가며 천천히 구경하기 전에는 베르사이유 궁전에 대한 많은 느낌을 휘발성인 내 기억력으로는 담아 둘 재주가 없다. 궁에서 빠져 나와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의 물을 대기 위해 만든 거대한 인공의 운하와 언덕, 그리고 기아학적 아름다움인 프랑스식 정원이 감탄을 자아낸다. 화단과 분수의 조경이 가공할만한 권력과 미의 극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거울의 방아래 있는 물의 화단,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담은 조각 분수 라톤 분수, 아폴로 분수, 좌우 화단과 분수가 베르사이유 궁전 건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세느강까지 연결한 대운하 소운하가 모두 10 km이상이고 왕의 수렵지이기도 한 베르사이유 정원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 걸어서 구경하는 것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무궤도 미니열차 신세를 졌다. 1시간 정도 열차를 타고 돌아보는 베르사이유의 이곳 저곳은 무척 인상 깊었지만 지나치게 인공적인 느낌이 들어 호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베르사이유에 담겨 있는 권력의 위세는 아름다운 정원에 여전히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권력은 무상한 것. 하지만 그 자취는 지금까지 남아 베르사이유의 정원에서 아름다움으로 꽃피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구경하러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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