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저어새, 날자꾸나! 재두루미 |
습지보호지역 한강하구 ‘생태계 보고’ … 야금야금 개발 탓 서식 환경 소리 없이 훼손 |
글=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
지난달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됨으로써 새만금의 드넓은 갯벌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이제 우리 땅에 남은 대규모 자연하구는 강화도, 김포, 파주, 고양 등에 걸쳐진 한강하구가 유일하다. 4월16일 환경부는 한강하구 1835만 평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저어새, 재두루미 등 멸종위기종이 다수 서식하는 한강하구를 보전하자는 취지에서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수십 년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미지의 땅, 한강습지에는 어떤 동식물들이 살고 있을까. 5월11일 PGA습지생태연구소 한동욱(38) 소장과 함께 김포시 월곶면과 경기 고양의 장항습지를 찾았다. <편집자> |
화창한 5월 하늘 위로 저어새 세 마리가 훨훨 난다. 강물에 발을 담근 수컷 저어새는 주걱 모양의 부리를 재빠르게 물에 담그며 물고기 낚아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어미 저어새들은 명아주 대를 엮어 만든 둥지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알을 품고 있다. 이쪽은 한강, 저쪽은 서해 바다인 여기는 김포시 월곶면 유도. 천연기념물(제205호)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저어새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란하는 곳이다. 유도를 가장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곳은 김포 월곶면 해병2사단 유도소대. 5월11일 오전 군의 허가를 받아 소대 안으로 들어갔다. 북한 개풍군과 지척으로 마주 보고 있는 유도는 군사보호구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무인도. 1999년 장마철에 북한에서 떠내려온 일명 ‘평화의 소’를 구출하러 들어갔던 때를 제외하고는 군인들도 이 섬에 들어가지 않는다. 인적 끊긴 이 섬의 주인은 저어새다. 저어새는 4월에 유도로 날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른 뒤 8월이 되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난다. 중국 산둥반도를 거쳐 베트남까지, 우리나라 해안을 거쳐 일본 오키나와까지 날아간다고 한다. “하나, 둘, 셋… 마흔! 시야에 잡히는 둥지만 해도 모두 마흔 개예요. 60~70마리 정도가 서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3년부터 저어새 개체 수를 파악해왔는데, 매년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예요.” 유도에서 번식 후 남쪽 나라로
마침 한강습지 생태교육차 이곳에 온 조류학자인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이기섭(45) 박사의 말이다. 이날 경기 고양, 파주 등지의 시민단체 관계자와 지역민 30여 명이 유도를 관찰하러 왔다. 올해 들어 한강하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새만금방조제 공사 재개로 마지막 자연하구로 남은 한강하구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한동욱 소장은 “유도는 저어새들이 서식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저어새는 나무가 아닌 땅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기 때문에 사람, 쥐, 개, 고양이, 뱀 등 위협요소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저어새에게 무인도는 최적의 ‘안전지대’다. 그리고 저어새는 매화마름이라는 역시 멸종위기종인 식물을 좋아하는데, 강화 일대의 늪지와 논에 매화마름이 많이 자란다. |
이번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유도를 비롯해 시암리습지(김포), 산남습지(파주-김포), 장항습지(고양) 등이다. 시암리습지는 큰기러기, 산남습지는 개리, 장항습지는 재두루미 서식지다. 이 새들은 모두 멸종위기종 2급. 이밖에도 한강습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야생 동식물들이 많다. 검독수리·흰꼬리수리·매(이상 1급), 말똥가리·흑두루미·알락꼬리마도요(이상 2급) 등 모두 1급 4종, 2급 22종이 한강습지에 사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유도소대에서 나와 김포대교를 건너 장항습지로 향했다. 역시 육군 제9보병사단의 허가를 얻어 장항습지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울창한 버드나무 숲이 손님을 반긴다. 썰물 때라 물이 빠져나간 갯벌은 매트리스처럼 푹신하게 밟힌다. 야생동물들이 남겨놓은 발자국과 배설물, 두더지가 파놓은 땅굴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한강 준설 흔적도 남아 있다. 트럭과 배 두어 척, 폐타이어 등이 버려져 있다. “아, 저기 고라니가 보이네요. 조금만 기다리면 새끼 고라니도 나타날 거예요.”
저 멀리 갯벌 위로 고라니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다. 2~3분 지나자 정말 한 소장 말대로 새끼 고라니가 나타났다. 어미 고라니는 새끼 고라니가 강물로 목을 축일 때까지 갯벌 위에 다소곳이 앉아 ‘경계근무’를 선다. 고라니는 습지에 나는 한해살이풀, 두해살이풀을 먹고 숲에서 은둔하기 때문에 장항습지는 유리한 서식 공간이다. 한 소장에 따르면 지난겨울 먹이를 뿌려놓자 서른대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한다. 재두루미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그런데 다리 모양이 조금 이상하다. 왼쪽 다리가 축 늘어져 있다. 이 수컷 재두루미의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다. 3주 전까지만 해도 암컷, 새끼와 함께 단란한 가족을 이루며 살았는데,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암컷과 새끼는 떠나버리고 홀로 이곳에 남았다는 것이다. 재두루미들은 장항습지에서 겨울을 나고 4월이 되면 시베리아 킨간스키나 중국 흑룡강성 자룽습지로 날아간다. 재두루미는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이 수컷 재두루미는 날씨가 더워지면 열병으로 죽게 될 것이다. “저 녀석이 왜 다쳤는지는 모르겠어요. 잡아서 다친 다리를 고쳐주면 좋겠지만 재두루미는 워낙 예민해서 잡기 어렵다고 하네요. 마취총을 쏘아 잡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하고요. 안타까워요.”(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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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들 ‘뜻하지 않은 피난처’
장항습지에는 특이한 생태계가 있다. 말똥게와 버드나무의 공생이 그것. 울창한 버드나무 숲 바닥 갯벌에는 말똥게가 파놓은 구멍으로 가득하다. 가히 말똥게 왕국이다. 말똥게는 썰물 때는 갯벌 속에 몸을 파묻고 있다가 밀물 때 갯벌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장항습지 버드나무는 다른 지역 버드나무보다 2배 정도 생장 속도가 빠르다. 한 소장은 그것이 말똥게 덕분으로 짐작한다. 말똥게가 버드나무 밑으로 구멍을 파 뿌리가 썩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강하구는 하구둑이 건설된 다른 하구들에 비해 보전이 잘된 편이지만 야금야금 이뤄진 개발 탓에 점차 환경이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장흥습지에서도 이러한 훼손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우선 고양에 있는 한국국제전시장(KINTEX) 진입로인 킨텍스IC가 장항습지 위로 건설되는 바람에 해오라기 번식지가 파괴됐다. 건설 당시의 소음 탓이다. 지금도 장항습지에는 자유로를 달리는 차량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3~4년 전만 해도 장항습지에 들어서면 사람 발걸음 소리가 새들에게 들릴까봐 잔뜩 긴장할 정도로 조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파주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차량이 늘었고 차량 소음 또한 커졌다고 한다.
한창 건설 중인 일산대교도 이곳의 걱정거리. 한강에 박혀 있는 다리 기둥 때문에 퇴적 속도가 빨라져 새들의 먹이를 없애기 때문이다. 재두루미는 새섬매작을 먹이로 삼는데, 퇴적량이 많아지면서 ‘줄’이라는 식물이 급증해 새섬매작을 쫓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먹이가 줄면 생물도 줄게 마련이다. ‘Accidental Sanctuary(뜻하지 않은 피난처)’. 1996년 미국의 ‘오드본’이라는 자연보전잡지는 우리나라 비무장지대(DMZ)의 야생동물 서식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북한과 가깝다는 지정학적 이유로 6·25전쟁 이후 사람의 접근이 제한돼온 한강하구 또한 야생동물들의 ‘뜻하지 않은 피난처’가 돼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 천혜의 보고가 개발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한창 건설 중인 김포신도시뿐만 아니라 통일부는 남북 공동사업 일환으로 한강하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5월31일 지방선거에 나선 경기도 후보들 또한 ‘철조망을 거둬내고 한강습지를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15년에 걸친 싸움 끝에 새만금 갯벌을 포기한 대한민국은 한강하구에 대해서는 어떠한 결정을 내릴까.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새들은 한강하구가 ‘제2의 새만금’이 되는 일만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듯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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