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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고구려2) 우리곁의 고구려

 

임기환의 '고구려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2>

 

  우리 곁의 고구려
  2004-06-18 오후 6:04:02

 

 

 

  고구려는 신라나 백제와는 달리 우리와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실 신라와 백제는 수학 여행길이나 문화유적 답사 등을 통해 자주 그리고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역사 그 자체는 아니지만 곳곳의 유적이나 유물을 통해 백제인과 신라인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고구려는 그 중심 무대가 지금의 북한이나 중국 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우리가 그리 쉽사리 다가갈 수는 없지요. 그래서 그런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거대한 역사가 깊이 잠들어 있으며, 아직 그 실체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은 신비감마저 느낄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주변의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의외로 아주 쉽게 그리고 자주 고구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혀 믿기지 않으신다구요?
  
  그러면 먼저 서울 아차산 보루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를 만나 볼까요.
  
고구려 토기 ⓒ프레시안

  어딘가 낯이 익지 않습니까?
  
  글쎄 어딘가에서 본 듯하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구요?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 쉬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햇살 바른 장독대에 옹기종기 모여져 있는 정감있는 옹기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 둥글고 소박한 모습은 항상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럼 이 옹기와 고구려 토기를 비교해 볼까요?
  
옹기 ⓒ프레시안

  자 어떠십니까? 정말 똑 닮았죠.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님 옹기에 고구려 토기의 모습이 전승되어 남아있게 된 것일까요?
  
  굳이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왜 오늘날의 옹기가 1500년전 고구려 토기랑 그 생김새가 그리도 빼닮게 되었는지는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구려는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조용하게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어디 옹기 뿐이겠습니까. 좀더 구체적인 것은 앞으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고, 내친 김에 여러분들이 답사할 수 있도록 남한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적 한 두군데를 더 소개하지요.
  
  먼저 좀 전에 보여드렸던 고구려 토기가 무더기로 발굴된 아차산 고구려 보루 유적을 소개합니다. 통칭 ‘아차산 4보루성’이라고 부르는 이 한 곳에서만 무려 1천여 점의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그 양과 질이 북한에서 나온 토기에 못지 않다고 합니다.
  
  4보루성은 발굴 조사 결과 그 원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는데, 대략 군인 1백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던 군사 시설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근처 광장동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 줄기와 이어지는 용마산 줄기에서는, 한강에서 임진강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15개 정도의 고구려 보루성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 발굴 조사된 곳은 2곳에 불과합니다만, 많은 유물만이 나온 4보루성 하나만으로도 고구려는 한걸음 우리 가까이 다가오게 된 셈입니다.
  
아차산 4보루성 전경 ⓒ프레시안

  이 아차산 보루성 유적에서 멀리 한강변을 바라보면 강북쪽에 동서울터미널이 보이는데 그 근처에는 구의동 군사유적이 있습니다. 이 유적은 1977년에 택지개발 조사를 하던 중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다들 백제 무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백제 무녕왕릉을 발굴하여 백제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었고, 또 바로 한강 너머 가까운 거리에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라는 백제 도성 유적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 곳도 백제유적으로 판단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외형상으로 보아 고분처럼 생겼기 때문에 처음 조사하면서는 다들 백제 고분일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다만 도저히 백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상한 토기들이 나와서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몽촌토성에서 고구려 토기인 나팔입토기가 나오고, 또 아차산 보루성이 발굴조사되면서, 이 구의동 유적도 고구려 군사 유적임이 밝혀지게 된 것이지요. 즉 이 구의동 유적은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아차산 보루성의 전방 초소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처럼 눈앞에 고구려 유적을 놓고도 이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이것만 보아도 그동안 고구려가 얼마나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었나 짐작할 수 있지요.
  
  자 이제 발길을 좀더 북쪽으로 돌려볼까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임진강 북쪽의 현무암 수직단애 위에는 삼각형 모양의 평지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유명한 ‘고구려 호로고루성’이지요. 이 호로고루성은 임진강 북안의 넓은 벌판 위에 우뚝 솟아 있어 마을 주민들은 '재미산' 또는 '재미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부분의 성벽이 훼손되어 있지만, 고구려의 축성술을 잘 보여주는 거대한 성벽입니다.
  
고구려 호로고루성 원경 ⓒ프레시안

  이 호로고루성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왜냐면 이곳은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물의 깊이가 무릎 정도밖에 되지 않아 말을 타거나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은 '호로탄' 이라 하여 장단을 통해 개성으로 들어가는 주요 길목이었습니다. 아마도 호로고루성은 고구려가 남진하면서 구축한 전략적 거점이었던 듯합니다. 특히 이 곳에서는 수많은 고구려 기와편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역시 그동안 우리 남한에서는 그동안 매우 귀했던 유물들이라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호로고루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기와편 ⓒ프레시안

  임진강 일대에는 호로고루성과 비슷하게 생긴 고구려 성이 몇 개 더 발견되었는데 나중에 다시 소개하도록 하지요.
  
  이렇게 아차산 보루성과 호로고루성은 멀리 떨어져 있던 고구려사를 우리 곁으로 한결 다가오게 하였습니다. 역사란 선인들의 발자취와 손길과 숨결이 어려있는 곳에서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되는 법이니까요.
   
 
  임기환/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