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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출문화재 지켜낸 숨은 주인공들

반출문화재 지켜낸 숨은 주인공들

유창종 변호사, 일본인에게 1301점 기와 기증 받아..최영도 변호사 '토기 수집광'
국내 박물관 찾은 기증자 문전박대?..적극적으로 기증 받아야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유물 개인 수집가들에게 소장품은 애인과 다름없다. 실물이 아닌 사진으로만 봐도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 해외에 반출된 귀중한 유물들을 보면 꼭 납치당했다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애지중지하던 소장품들을 박물관에 기증할 때의 기분은 잘 키운 자식들을 시집 장가보내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 사연들을 들어본다.

유창종 변호사, 1800여 점 중앙박물관에 기증 후 2500여 점 추가 수집
‘와당박물관’ 설립이 소망..희귀 고구려·낙랑시대 기와 기증도 고려 중



‘기와 수집광’으로 유명한 유창종(61) 국립중앙박물관회장(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그의 기와 2500여 점이 몸을 누일 곳을 찾고 있다. 그는 이미 한 차례, 20년 이상 수집한 기와 1873점 전부를 지난 2002년 말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유창종 변호사가 2002년 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기와 중 일부. 충주 탑평리에서 출토된 연꽃무늬수막새(사진 왼쪽)가 바로 유 변호사를 기와 수집에 빠져들게 한 장본인. 오른쪽 사진은 용얼굴무늬 기와 수막새. 고구려의 옛 영토인 중국 지린성 지안에서 출토됐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기와 2500여 점은 기증 후 새로 수집한 것들이다. 이 중에는 지난해 11월 일본인 이우치 기요시(64)에게서 1301점을 기증받았다. 이 기와들은 1907년부터 여러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100년 동안 모은 수집품들로 국내에 없었던 고구려, 낙랑시대 희귀 기와들 다수가 포함돼 있다. 서울시가 지원해준다면 ‘와당박물관’을 북촌에 짓고 이들을 전시하는 것이 유 회장의 꿈이다.

유 회장은 대검중수부장과 서울지검장 등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친 검사 출신이다. 그런데도 “화려했던 30년 남짓 검사 생활 보다 30여 년 기와 수집 인생이 더 명예롭고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기와에 대한 그의 사랑은 법 보다 진하다.

그는 1978년 충주지청 검사로 부임 직후, 우연히 접하게 된 한 향토문화가의 책에 실린 수막새 파편 하나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때부터 시작된 와당에 대한 관심은 관련 논문 탐독과 수집으로 이어졌다. 기와의 형태와 문양은 볼수록 매력이 넘쳤다. 한중일 삼국의 동아시아 문화교류 역사는 기와의 시대별 변천사에 투영돼 있었다.

기와 수집은 생각보다 쉬웠다. 당시는 기와가 유물, 문화재 취급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유 회장은 “골동상점에 가면 기와는 덤으로 주는, 말만 잘하면 공짜로 받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무렵 백제 와당을 가게에서 공짜로 얻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수집한 기와 전부를 그는 흔쾌히 중앙박물관에 무상 기증했다. 중국에서 한국, 다시 일본으로 퍼져 나간 기와 문화 연구가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일본인 이우치가 1987년 중앙박물관에 기증했던 기와 가운데 일부. 막새면에 전서(篆書)체로 ‘낙랑예관(樂浪禮官)’(사진 왼쪽) 네 글자가 돋을새김돼 있는 이 수막새는 평양 부근의 낙랑토성에서 출토됐다. 오른쪽은 서까래기 종류 중 하나. 뿔 사이에 못을 박아 사래에 고정하기 위한 원형 구멍이 뚫려 있다. 사래 기와는 삼국시대 후기부터 고려시대까지 계속 사용됐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그가 일본인 이우치 기요시를 수소문하고 어렵사리 설득해 기증받은 이유도 간단하다. “꿈에 그리던 기와, 정말 갖고 싶었던 기와”였기 때문이었다. 이우치 기요시는 2300점에 이르는 한국전통기와를 소장하다 지난 1987년 중앙박물관에 1087점을 기증했던 고 이우치 이사오의 아들이다. 이우치 이사오가 기증 당시 알짜배기 명품 몇몇을 제외했다는 사실을 안 유 회장의 가슴은 그저 먹먹하기만 했다. 결국 이사오의 아들 기요시를 끈질기게 설득해 명품 기와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기와 전문가로 꼽히는 김성구(56) 국립경주박물관장도 "유 회장이 이번에 기증받은 기와 중에는 중앙박물관에 있는 고구려, 낙랑 기와보다 격이 높고 뛰어난 것들이 많다"며 "마루 끝에 쓰였던 대형 고구려 귀면 기와와 낙랑시대 낙랑예관(관직)수막새, 구름무늬수막새 등은 소중한 연구 자료들이다"고 말했다.

본인이 수집한 기와를 기증하고도 모자라 온갖 노력 끝에 해외 반출 기와를 대거 기증받은 유 회장. 아마 그의 기와 수집과 기증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최영도 변호사, 토기 1천5백여점 국가에 기증
프랑스 외교관에 팔릴 뻔한 백제토기 지켜낸 일화도


해외로 나갈 뻔한 우리 문화재를 수집, 박물관에 기증한 개인 수집가들도 있다.

'토기 수집광' 최영도 변호사(67, 전 국가인권위원장)는 토기 1578점을 수집, 2001년 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그가 1980년대 초부터 서울 인사동과 장안동 일대에서 발품을 팔아 가며 모은 것들이었다. 기증 토기들은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소중한 유물들로 평가됐다.

그가 토기 수집을 시작할 무렵, 토기는 국내에서 수집 인기 목록에 올라 있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값어치 있는 토기를 찾기 위해 인사동 등 골동상 거리를 뒤졌다고 한다. 이런 시절이었는데도 그는 토기 특유의 질박함과 토속적인 아름다움에 흠씬 매료됐다. 이윽고 토기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토기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동시에 토기 박물관을 꾸리겠다는 꿈도 키웠다.


최영도 변호사가 지난 200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토기 가운데 일부. 쇠뿔모양의 손잡이기 대칭으로 붙은 이 단지(사진 왼쪽)는 주로 영남지방의 무덤에서 출토된다. 색깔과 질감이 기와와 비슷해 와질토기라고 부른다. 오른쪽의 조롱박모양 주전자는 고려청자 주전자의 형태와 제작방법 등에서 상호 보완하는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한번은 해외로 반출되기 일보직전이었던 백제토기를 사수해 낸 적도 있다. 1983년 그는 인사동에서 백제토기 ‘쇠뿔잡이항아리’를 보고 한 눈에 반했지만 200만원이라는 ‘호가’에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 뒤 프랑스 외교관이 그 토기를 사갈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야 한달음에 달려가 그 백제토기를 지켜 냈다. 그 무렵 그는 골프 한 번 치러 나갈 돈이면 웬만한 토기 2~3점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골프도 끊었을 정도다.

이 같은 그의 토기 사랑은 중앙박물관 '최영도실'에 둥지를 틀었다. 애초부터 토기들이 개인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에 지난해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휘말려 국가인권위원장에서 물러나는 그를 지켜본 지인들의 안타까움은 그래서 더욱 남달랐다. 자신의 돈으로 해외로 나갈 뻔한 문화재들을 사모아 국가에 기증했던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최 변호사는 “그리 자랑할 만한 사실이 못 된다”고 외려 자신을 낮추었을 뿐이다.

최근에는 남궁련씨 유족, 100억 상당 국보급 유물 기증
잊혀지지 않는 간송 전형필 선생의 국보 지키기


최근에는 대한조선공사 회장을 지낸 고 남궁련 선생 유족들이 중앙박물관에 귀면청동풍로(국보 145호) 등 국내외에서 수집한 문화재 256점을 기증했다. 고려청자 110점 등 우리나라 도자기가 210점으로 주종을 이루고 그림 12점도 포함돼 있다. 시가로 100억원은 족히 넘는다.

유족들은 서울대 박물관에도 100여 점의 유물을 따로 기증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생전에 고인은 그가 소중히 모은 유물이 가장 유익하게 보존되는 방법으로 박물관 기증을 원했다고 한다.


간송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남대문 대신 대한민국 국보 1호 후보로 거론되는 국보 70호 훈민정흠 해례본. [사진=연합뉴스]
해외로 반출된 국보·보물급 문화재들을 되찾아오는데 일생을 바친 이들 중에서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부터 물려받은 10만석 지기 전답을 팔아가며 국보급 문화재를 사 모았다. '청자강삼운학문매병'(국보 68호)을 사기 위해 구의 땅 5천석 지기를 팔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온다.

나아가 그는 일제의 민족문화재 말살정책에 맞서 1938년 국내 최초의 개인 미술관인 보화각(지금의 간송미술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의 노력은 '훈민정음'(국보 70호), 혜원 신윤복의 '혜원 전신첩'(국보 135호) 등 국보 12점과 보물 10점을 포함한 5000~6000점의 문화재로 남았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간송미술관에 볼멘 소리를 내기도 한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품들을 매년 봄과 가을, 2주씩 정기 공개하는 것 이외에 철저히 문단속을 하기 때문이다. 연구 차원의 접근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간송학파'의 폐쇄성에 대한 불만이다.


지난 2004년 5월 간송미술관엑서 열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전 '대겸재전(大謙齋展)'에서 선보였던 작품 '독서여가'(사진 맨 왼쪽). 같은 기간에 열린 '단원 대전'에 출품된 김홍도의 '상원투도'(사진 가운데). 맨 오른쪽은 지난 2001년 5월에 열린 '추사와 그 학파전'에 출품된 작품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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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화백, 조선시대 민화 등 127점 외국 박물관에 기탁
국내 박물관 기증 문턱 높아..유물 기증 외면 당하기도


도쿄와 파리를 오가며 활동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 이우환(70) 화백. 그는 소장하고 있던 17~19세기 조선시대 민화 100점과 병풍 27점 등 127점의 우리 유물을 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에 장기 기탁했다. 프랑스 언론 '르 피가로'지는 이를 '기증'으로 해석했다. 그가 기증한 작품들은 최고 수준의 것들이었다.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산수화와 화훼도, 영수화, 초충도, 인물화, 풍속화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 화백이 기메박물관에 민화를 기증한 까닭에 대한 설은 분분하다. 유럽에서 동양 전문 미술관으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기메박물관에 기증,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이 화백은 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를 고집했고 중앙박물관은 '민화'이기에 국립민속박물관으로 기증하기를 유도한 것으로 안다"고 전하며 "문화재 기증을 유도하기 위해 박물관은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 현지에서 화랑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 황정수 갤러리 다다 대표는 “기증자가 기증 의사를 밝혀도 국내 박물관 대부분이 별로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로 알고 있다”며 “한 개인이 박물관을 지어 운영하기 힘든 현실에서 기증 문화 확산을 위해서라도 박물관의 기증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박물관 “기증자가 까다로운 조건 내걸 때 많아..기증 관련 규정 정비 중”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1개의 기증실이 있다. 이 가운데 3개가 일본인 명의다. 유창종 회장과 최영도 변호사의 개인 기증실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해외 유명 박물관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빈약한 규모다. 게다가 법인에 의한 기증기부는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다.

전문가들은 “해외 박물관은 개인이 한 개의 작품만 기증해도 그 의미를 높이사, 개인 기증을 명확히 밝혀준다”고 지적한다. 기증문화 확산에 국내 박물관의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2002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이 일본 가네코 카즈시게(金子量重) 선생이 기증한 아시아 각국의 고고·미술·민속관련 유물 251점 가운데 50점을 선정해 공개하는 특별전을 열었다. 기증자 가네코(사진 오른쪽 두번째) 선생이 기증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는 그를 비롯한 일본인 3명의 기증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앙박물관은 기증자가 기증 의사를 밝혀 오면 실사를 한다. 이후 심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기증 여부를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기증자가 다양한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난처할 때가 많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관계자는 "국립박물관 기증은 무상 기증이 원칙이다"며 "기증자들이 무조건 박물관 내에 개인실을 마련해 달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면 서로 협의가 잘 안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박물관측은 "감정 해주면 나중에 기증하겠다"는 얌체 같은 이들 때문에 곤혹스럽기도 하다고.

그는 "기증자가 평생 모아 온 소장품들이긴 하지만 경제적 가치와 학술적 가치는 분명히 다르다"며 "연구할 만한 소장품이 아니거나 박물관 특성과 맞지 않으면 기증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고도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박물관 기증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정의 개정도 검토 중이다”며 “법인의 기증이 전무한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도 아쉬운 부분이다”고 말했다.

한편 1945년부터 현재까지 중앙박물관에는 총 226명(260건)이 문화재를 기증했다. 기증 문화재들은 토기와 청동기, 도자기류, 목가구류, 금속공예류, 문방구류, 회화류 등 다양한 품목에 걸쳐 총 22503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국보는 6점, 보물은 32점이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