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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 지금도 잔설이… 진동리와 방동리 (서울신문)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 지금도 잔설이… 진동리와 방동리

첨단시대에도 느림의 철학을 유지하는 곳이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가 미치지 않아 옛 아름다움과 인간애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오지(奧地)마을.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외되어 있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서울신문은 획일적이고 급속도로 변해 가는 우리의 일상을 떠나 소박한 오지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산길, 강길, 뱃길로 닿는 우리의 고향에서 다양한 삶의 소중함과 그 속에 흐르는 따뜻한 정,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렌즈에 담아낼 것입니다.

▲ 진동마을 이경준 할아버지가 날이 저물자 소 여물을 쑤기 위해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쇠죽을 끓일 때 옆 솥단지에 할머니와 함께 먹을 저녁밥도 같이 짓는다. 부엌 한편에 딸린 소 외양간에서 저녁밥을 기다리는 소 두 마리는 그야말로 한솥밥 식구다.

5월 초순이지만 계곡에는 잔설이 남아 있는 동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방동리. 이곳은 대표적인 산골 오지마을이다.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려 고립되기 일쑤고 허리까지 쌓인 눈 위를 걸어 다니기 위해서는 나무줄기로 둥글게 만든 설피라는 신발을 신고 다녀야만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설피마을로 불린다. 기온도 낮아 여름에 반소매를 입고 지내는 기간은 고작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진동리 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집이 첫눈에 들어온다. 이경준(91) 할아버지와 박옥희(75) 할머니 단둘이 사는 집이다. “여기 산 지 한 50년 됐나. 양양에서 태어나 이리로 왔는데, 바로 일본으로 징용을 끌려갔어. 무슨 비행장이었는데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나.”

▲ 기린면 방동분교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꽃이 활짝 핀 언덕에서 뛰어 놀고 있다.

이씨의 낡은 집 기둥에는 ‘6·25 참전용사’라는 색바랜 문패가 초라하게 걸려 있다. 광복이 되고 얼마 안가 6·25전쟁이 나는 바람에 군대를 갔단다.“이 동네에서 싸웠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 91년에 진동리 설피마을로 이주해 온 외지인 1호 홍순경씨가 학교를 마치고 온 아들 지민이와 한가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민이가 하굣길에 꺾어 온 겨우살이를 전리품마냥 자랑한다.

60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정한 노부부에게는 환갑이 넘은 자식이 있다. 집 떠난 자식보다 같이 사는 소 두 마리가 한가족 같단다.3000평 정도 되는 밭은 소 두 마리가 갈아주고 옥수수며 콩이며 벌꿀도 치면서 욕심없이 살고 있다. “여물죽을 쑤면서 우리 저녁도 같이 지어. 식구나 한가지지 뭐. 허허허.” 아궁이에 땔 장작이 쌓여 있는 재래식 부엌 한쪽은 놀랍게도 외양간이다.

▲ 가끔 걸려오는 자식들의 안부전화가 큰 기쁨인 진동마을 박옥희 할머니. 꽃단장을 하고 장나들이 나서려는 참이었지만 자식들과의 수다에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옆동네인 방동에서 5대째 산다는 전병용(84) 할아버지도 젊은 시절 징용을 다녀왔다.

“탄광에서 일했어. 그때는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우.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는 게 유일한 목표였으니까.”

전씨는 건넛마을 사는 손옥순(75)씨와 늦은 결혼을 해 딸 넷을 낳았다. 환갑에 얻은 막내 아들도 손수 농사를 지어가며 다 키워냈다. 작년부터는 일본 경찰에 맞아 생긴 허리지병이 합병증으로 커져 그나마 일도 못하고 있단다.“인천에 사는 큰사위가 억지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도 몰라….” 할아버지 대신 지게를 지고 산에서 땔감 나무를 해오는 할머니를 안쓰러운 듯 쳐다보며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빤다.

진동리와 방동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인적이 드문 산골마을이 산악 트레킹 같은 레저활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관광지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원주민들 중에서도 돈 안 되는 농사를 걷고 민박이나 식당을 운영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등지에서 삭막한 도시 삶을 버리고 이주하는 집이 느는 것도 한 단면이다.

▲ 시골집에 가면 으레 딱히 무슨 종이랄 수 없는 토종 견공들이 제일 먼저 손님을 맞는다.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낯선 손님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다.
91년에 이곳 진동리 설피마을로 이주한 ‘꽃님이네 집’ 홍순경(55)씨는 외지인 1호다. 도시생활을 접고 이곳으로 와 딸 꽃님(16)이와 아들 지민(13)이를 낳고 가족단위 민박이며 트레킹 안내를 하고 있다. 집도 통나무와 황토로 몇 년에 걸쳐 손수 지었다. 지민이에게 여기서 사는 것이 심심하지 않느냐고 묻자 “낮엔 학교 가고, 오후엔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느라 심심하지 않아요. 저녁땐 인터넷도 좀 하고….” 밤늦게까지 학원가를 돌아야 하는 도회지 아이들에 비하면 이곳 울창한 원시림과 야생동물들이 친구가 되어 주는 지민이의 생활이 훨씬 풍요로워 보인다.

자연에 묻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진동과 방동 사람들. 형편은 넉넉지 않아도 도시인들보다 훨씬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진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