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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피플

"PD, 멋져보입니까? 배고픕니다"

"PD, 멋져보입니까? 배고픕니다"

[기고] 우리는 왜 '독립PD협회'를 결성하나

[미디어오늘 이성규·프리랜스PD]

국내 프리랜스PD 300여명이 오는 2월7일 독립프로듀서협회를 발족한다. 방송계 대표적인 비정규직이면서 사실상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최일선에 있던 프리랜스PD들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적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성규 프리랜스PD가 미디어오늘에 관련 글을 보내와 싣는다. 이 PD는 수요기획> 을 연출해 온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올해 방송제작 경력 18년차이다. 대표작으로 <은둔의 땅, 무스탕> <어떤 귀향> <신과 재혼한 여인들> <후세인과 샬림의 캘커타스토리> 등이 있다.

"독립PD 협회가 결성된다는데, 선배도 가셔야죠."

여기서 '독립PD'란 방송사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스 또는 제작사 소속의 방송 연출자를 일컫는 통칭이다.

서울 아현동 작업실에 박히듯 지내다가, 1주일 만에 여의도로 외출을 했다. 몇몇 PD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사람들은 소속감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방송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독립PD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프리랜스들이다. 독립제작사 소속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지니고 제작하고 있는 PD들의 대다수는 소속이 없는 프리랜스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프리랜스들이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가슴이 좀 아픈데, 제작사 입장에서 돈이 안 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들의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데서 비롯된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들의 경우 대부분 30대 중반 이후의 나이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들에 비해 나이 든 PD, 그것도 별로 돈 안 되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들에게 주는 월급은 독립 제작사로선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그러다보니 다큐멘터리를 연출한다는 독립PD들의 대부분은 소속이 없는 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형식상의 제작사를 걸고 일한다. 여의도에서 40대의 나이에 현업에서 활동하는 독립PD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상당수는 제작사에서 팀장이란 형식으로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원로냐, 아니냐는 6mm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찍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은 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한 카메라 감독이 던진 말이다. 방송 생활 18년 가운데 8년 전부터는 기존의 방송사 카메라인 베타캠 ENG가 아닌 6mm 디지털 카메라로 1인제작 형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소형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인 바람이었다. 그러나 실제 방송 환경에서 소형 디지털 카메라는 제작비 절감이란 도구 이상은 아니었다. 보다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나오길 기대했지만, 그것은 그냥 기대로만 그쳤을 뿐이다.

"생각해봐요. 선배처럼 6mm 들고 직접 촬영하는 40대가 있는지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랬다. 같은 회사 이름을 걸고 작업을 하는 후배 PD역시 40대인데, 그는 카메라 감독과 함께 촬영을 한다. 그는 아직 소형 카메라를 직접 운용하지 못하며 소형 카메라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다.

"선배한테 미리 연락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선배 같은 원로가 와주셔야 협회가 활성화 되지 않을까요?"

슬펐다. 아직 한창 일할, 그래서 현장에서 목소리 높이며 작업을 해야 하는 40대 중반이 원로로 대접받는 현실이 슬펐다. 방송사 출신이 아닌 독립제작사 출신 PD로 필자는 1세대에 해당된다. 0세대에 해당하는 PD가 몇 사람 더 있는데, 이 분들은 40대 후반으로 대부분 데스크에 앉아 있다. 그리고 1세대라 할 40대 초반과 중반에 이르는 PD들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미 전혀 다른 직종으로 전직을 했거나 홍보영화 쪽과 같은 비슷한 분야로 발길을 돌렸거나 해서 소수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독립PD협회가 오는 7일 결성된다. 300여명의 독립PD가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꽤 오래 전부터 '독립PD협회를 결성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현업자들을 중심으로 오고 가긴 했다. 조직이란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기에 깊은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그저 내 일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적 또는 개인주의적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였다.

필자의 아내 또한 함께 다큐멘터리를 공동 제작 연출하는 PD다. 경제적인 개념보다는 만들고 싶은 다큐멘터리만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방송가 사람들과 뚝 떨어져 지냈다. 그런데 지난 해엔 독립PD협회가 이젠 결성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갖게끔 하는 일이 생겼다.

몇 년 전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제작론 강의를 할 당시, 필자에게 수업을 들었던 제자 한 명이 졸업 이후 조연출로 들어왔다. 그는 2년 정도 우리 부부와 함께 다큐멘터리 제작현장을 뛰어다녔다. 능력도 있었고 성실한 그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만 두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를 만류했다. 힘들긴 하겠지만 조금 만 더 참으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을 듣고는 우리는 망연자실해져 더 이상 그를 만류할 수 없었다.

"감독님. 제가 항상 프로그램 제작이 끝나면 정산을 하잖아요. 감독님이 지난 해 얼마를 버셨는지 아세요? 두 분이 공동 연출해서 일년 동안 번 돈이 2000만 원을 겨우 넘어서는 정도예요. 감독님은 저의 미래라고 믿어왔어요. 그런데 제 20년 뒤의 모습이 연간 2000만 원을 버는 감독님이라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요. 지금 힘든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요. 그런데 뻔하게 이미 승패가 난 미래를 보니까 그건 아니다 싶어요."

적은 수입이었지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얼마나 행복한가.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처럼 살고 있다고 우리 부부는 믿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중년의 삶을 후배들에게 강요할 순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독립PD의 새로운 후속인력 보강이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것은 노동시간과 노동량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저임금 구조 탓이다. 그동안 제자에게 방송의 의미와 사명에 대해 숱한 강조만 했을 뿐, 경제적인 보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독립PD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40% 이상을 제작 연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방송가에선 존재 가치를 규정받지 못하는 투명인간이었다.

독립 PD들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이른바 '3D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중요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상당수를 제작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독립 PD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소속감과 연대감은 지극히 미약했다. 독립PD는 어느덧 방송 제작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웃사이더인 독립 PD. 그들은 아웃사이더일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그럼에도 독립PD협회는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PD들에 대한 현황파악을 시작으로 지상파 방송사와 편집권 및 제작비와 저작권료 관련 협의를 포함해 자체 강령이나 계약 가이드라인 수립과 같은 협회의 역할을 차차 구성해나갈 예정이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외부에서 제작하면서 해당 프로그램을 제작자 본인이 책임지고 있는 미국이나, 외주 제작 시에 방송사에서 관련 분야의 전문 인력들을 검토, 수급하는 일본의 방식과는 달리 한국에서 독립PD의 역할은 방송시장의 소모품에 다름 없었다. 한국의 독립PD가 처한 환경이란, 말하자면 철저한 경제 논리와 사회적 편견에 둘러싸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슷하다. 이제 독립PD협회의 우선 과제는 독립PD의 올바른 주소 찾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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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프리랜스PD, media@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