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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후예들

[스크랩] 박수근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박수근-

 

수근(朴壽根, 1914~1965) 선생은 이름없고 가난한 서민의 삶을 소재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고자 일생을 바친 화가이다.
그는 단순한 형태와 선묘를 이용하여 대상의 본질을 부각시키고,
서양화 기법을 통해 우리의 민족적 정서를 거친 화강암과 같은 재질감으로 표현해냄으로써
한국적인 미의 전형을 이루어냈다.


이 같이 우리 민족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선생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서민화가로 20세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생은 국토의 정 중앙(中央)인 강원도 양구(楊口)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다.
선생이 보통학교에 다니던 12세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낀 나머지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양구는 선생이 평생을 받쳤던, 그림에 대한 열정과 꿈이 시작되었던 곳으로
그가 자주 그렸던 느릅나무도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다.


2002년 10월 25일에는 그가 태어나 자랐던 생가 터에
200여평 규모의 현대식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이 개관되었다.
첫 인상부터 독특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미술관에는
선생의 손때가 묻어나는 안경과 연적 그리고 편지를 비롯한 유품들과 기록사진,
유화, 수채화, 스케치, 판화, 삽화 등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또한 박수근 선생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근현대 우리 화단의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자녀들을 위해 선생이 직접 그린 낡은 동화책을 보고 있노라면
선생의 인간적인,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아버지의 모습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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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식의 박수근의 평

 

박수근의 그림을 보면 정지용의 시 “향수”가 생각난다. 유난히 뒷모습이 많은 그의 그림엔 예쁠 것도
없는 그의 아내가 있다.  농가의 여인으로, 아이에게 등을 내어 주는 어머니로, 보따리를 짊어지고 장
으로 가는 여인으로, 밥상을 차리기 위해 나물을 뜯는 어머니로, 나물을 캐고, 절구질을 하고, 맷돌질
은 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화가로서 무엇인가를 그려야 하는 박수근에게는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모델이 없었으리라. 어찌 꿈엔들 잊혀질 수 있겠는가? 장터에 나뭇닢을 다 떨군 가난한 나무 그리고
그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군상의 뒷모습 또한 어떻게 잊혀질 일이겠는가?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오르내리는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사진 에세이 <뒷모습>에서 그는 “뒤쪽이 진실이다.”라고 했
다.  굳이 그의 말을 빌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박수근의 그림에서 돌아서 사람의 모습은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는 듯하다.

 박수근의 아내는 금성에 살고 있었고 남편인 박수근은 평양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박수근의 아
내 사랑은 지극하였던 것 같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어머니 같기도 하고 오빠 같기도 하다고 했다.
남편을 어찌나 극진히 사모하였던지 한번은 남편이 닷새간의 휴가를 내어 집에 왔다가 돌아가는 전
철역에서 그에게 올린 인사 례가 사람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전철역에서 남편이 타고 갈 전
철이 떠날 때 안녕을 빌려 극진히 절을 하였는데 전철은 이미 상거가 멀도록 가버리고 말아 얼굴이 붉
어져서 혼이 났다고 한다. 후일에 남편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남편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때 일이
웃음꺼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남편이라면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고 줄 수 있었던 아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싶다.

 

지금도 양구 어디쯤에 가면 바툼한 곳에 앉아 주머니에서 노트를 꺼내 나무를 그리고 있는 박수근
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이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느니 빛의 굴절이 이렇고 저렇고 그런 것은 알
필요도 없이 삶을 그려내면 금방이라도 박수근을 닮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종이 한 장을 꺼
내 따라서 그려 보라면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림이 쉽다고 어찌 그의 마음도 쉽겠는
가? 수도 없이 아내의 그림을 그려낸 그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랑이다. 연필로 사랑을 그릴 수 있다
면 얼마든지 따라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따라 그릴 수 없는 것처럼 그의 그림엔 그런 것들이 있다.
장터에 둘러 앉아 담소하는 군상의 모습이 뭐 그리 어려울까 하지만 그가 그런 그림을 그리고 또 그
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동감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어떻게 따라 그릴 수
있겠는가? 진정 쉽지 않은 일이다. 화가는 원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서 얼마든지 현실로부터 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등짐을 지고 가다가 잠시 지개를 내려놓고 어느 시골의 작은
돌 위에 앉아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박수근 화백을 생각하노라면 나는 방금 새 스케
치북을 사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방금 들로 나온 풋내기 화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보통 마티에르 혹은 텍스추어라고 일컬어지는 질감(質感)을 어느 누구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기법과 형식으로 나타내었다.  그 화면감각은 마치 화강암의 표면을 정으로 두들겨 낸 듯하고 혹은 비바람에 저리고 풍화된 암벽 같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마티에르를 그가 어디에서 힌트를 얻어 발전시켰는가는 다음 말이 하나의 시사를 제공한다.

그가 이룩한 독특한 마티에르에 대해서 박 형은 늘 우리 선조들이 다듬었던 석조물(石造物)에서 느끼는 촉감에 한없는 애착을 느낀다는 말을 했었다.  우리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박 형의 그런 애착을 역력히 느낄 수 있다.

어떻든 그러한 표현에다 단순화된, 굵고 확실한 검은 선으로 형체를 나타내었는데 그 형체는 까끌까끌한 표면 뒤에 가라앉아 은은한 모습을 드러낸다.  때문에 그것은 마치 신라시대의 마애불(磨崖佛)과도 같고 이조의 석상(石像)과도 같은, 혹은 또 아무렇게 던져진 화강암의 형태 같은 견고하고 영속적인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우리나라 민중의 삶의 모습을 더없이 잘 형상화하고 있다.  즉 그 삶이란 온갖 학대와 고난의 겪으면서도 역사의 표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거나 사라짐 없이 살아온 확실한 삶과 다름없다.  그러한 삶의 실체를 우리는 박수근의 그림에서 그 마티에르와 선의 조형(造形)에서 누구나 쉽사리 그리고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더욱이 그는 그러한 민중의 삶을 미적 요소에 맞추어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삶의 리얼리티와 미적 요소의 놀라운 조형적 종합이 아닐 수 없으며 우리의 공감도 그만큼 크고 절실한 것이다

출처 : 학원원장
글쓴이 : 원장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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