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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피플

[스크랩] 배고픈 지하철 안의 상인, ‘기아바이’

 

                                                                                                

                                                                                      조지현 명예기자 sadnun@nate.com

 

 

                                               ▲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지하철 상인

 

우리는 흔히 지하철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들은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다.‘기아바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의 이름은 배고픈 상인이라는 뜻이다. 예전 칙칙폭폭 대던 기차에서부터 시작된 이들의 삶은 이제는 현대인의 필수 교통수단인 지하철 속에 자리를 잡았다.

지하철만 타면 한번쯤은 볼 수 있는 이들은 단돈 천 원만 받고 파는 물건들을 선보인다. 천 원짜리의 물건들이 네모박스 속에 잔뜩 담겨있다. 박스 수레와 함께 옆칸 문을 열고 들어와 먼저 정중히 인사한다. “손님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가 좋은 물건을 단 천 원에 드리고자 이렇게 찾아뵙습니다.”무관심한 눈빛들 속에서 하나라도 더 팔아보고자 목청을 높인다. 때론, 빽빽이 발 디딜 틈도 없는 곳에 끼어서 외친다.

 

                             ▲ 빽빽한 전동차 안에서 힘들게 상품 설명을 하는 기아바이

 

기아바이들이 파는 상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종류에 따라 물건을 파는 그들의 모습, 그들의 멘트 또한 각각 이색적이다. CD를 파는 상인들은 예전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왔던 감미로운 노래를 틀어 피곤에 지친 승객들에게 잠시나마 귓가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야채를 깎는 칼을 파는 상인은 얼굴에 오이를 덕지덕지 붙여서 웃음을 자아낸다. 어린이들의 눈을 돌아가게 하는 불빛 반짝이는 팽이, 어르신들이 매우 좋아하는 등산 겸용 지팡이, 대일밴드 종합세트, 칫솔세트, 구석구석 시원해지는 안마기, 이모든 것이 다 그들이 즐겨 파는 상품들이다.

 

그러나 가방 하나 가득 담겨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잔뜩 남겨서 다시 다음 칸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재수 없는 날에는 불법단속에 걸려 쓴 소리도 듣고 하루종일 벌었던 주머니까지 털리게 된다. “그럴 땐 우리도 세금 낸다고 생각 하는 거지, 뭐. 어쩌면 단속이 있으니깐 지금 나도 기아바이 노릇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안 그러면 지하철이 시장바닥 되게….” 그들은 기운 빠질 여유도 없이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 각기 다른 물건을 선보이는 기아바이들의 모습

 

또 다시 외치는 소리 “단 돈 천원에 드립니다”

 

1, 4호선이 교차하는 금정역. 이곳에는 많은 기아바이들이 몰려있다. 자칫 보면 무질서해 보이는 이들의 상행위에도 규칙이 있고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 이들은 전동차의 맨 끝 또는 맨 앞 일정한 장소에서 먼저 온 순서대로 줄을 슨다. 전동차가 오면 기다린 순서대로 투입이 되는 것이다. 또한 한 전동차에는 2명 이상의 상인이 투입되지 않는다.

 

그들을 관리하는 유통회사에서 정해준 구역만큼 가면 열차에서 내려 다시 반대편 열차를 타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침 10시쯤에 나와서 이렇게 몇 번을 왕복하면 하루 해가 스믈스믈 기어들어가고 전동차는 사람들의 퇴근으로 꽉꽉 채워진다. 회사원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기아바이도 함께 오늘 하루의 장사를 닫는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때로는 불쾌한 시선을 받으며 목이 터져라 상품을 팔고 그렇게 끊임없이 혼자의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 바로 기아바이의 인생이다. 그들은 다음 전동차를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 동료들과 인생사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은 돈벌이가 잘 안된다면서 몇 개 팔았는지,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지 등의 정보 공유부터 집안사까지 담소를 나누면서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들 중엔 과거에 누구나 선망했던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사업에 실패를 했거나 인생이 꼬여서 이 길로 뛰어들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더러 현재 자신의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난 기아바이들은 대부분 그들의 삶에 만족하고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지키고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이제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그들 스스로의 생각도 많이 변모한 것이다. 예전에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직업으로 소위 말해 보따리 장사라고 일컬었지만 지금은 현대의 새로운 비즈니스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담배 한 개피에 한숨을 날려버리고 오늘도 기아바이, 그들은 지하철과 함께 인생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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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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