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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피플

프랑스 대선에 울고웃는 한국 언론

프랑스 대선에 울고웃는 한국 언론

[오마이뉴스 백병규 기자]

조금은 의외였다. 프랑스 대선 결과를 전하는 신문들의 보도태도가. 언제부터 프랑스 대선에 신문들이 이처럼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가 싶을 정도다.

<조선일보>는 아예 1면 머리기사로 그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다른 신문들도 두세 면씩을 털어 '프랑스의 선택'을 집중 분석했다.

그 이유로는 몇 가지 요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선거가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 프랑스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흥행 요소가 풍부했다. 좌·우파의 이념적 대결 전선이 분명했고,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 후보가 여성이었다는 점도 흥미를 더한 요소임에 분명했다. 또 박빙의 승부여서 그 결과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흥행 요소만으로는 한국 신문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두 설명하는 데는 미흡하다. 아마도 프랑스 대선 결과가 한국의 대선 국면에 시사하는 '함의'가 그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선> '승리한 우파', <한겨레> '위기의 좌파'에 주목

<조선일보>가 프랑스 대선 결과를 전하는 8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을 "프랑스 '성장과 친미' 선택했다"고 뽑은 데에서 그 같은 경향을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가 "신자유주의에 꺾인 '프랑스적 가치'"라고 뽑은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가 "더 벌려면 더 일하라"는 사르코지의 메시지에 주목한 것이나, <한겨레>가 '좌파의 위기'에 주목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프랑스 대선' 보도는 이제 시작이다. 한국의 대선 과정에서, 또 한국의 정치상황과 관련해 시사할 점이 앞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먼저 주목할 점은 6월에 예정돼 있는 프랑스 총선 결과다. 프랑스는 2000년 개헌을 통해 7년 이던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단축했다. 국회의원과 임기를 맞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초에 제안했던 원포인트 개헌(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일치)과 같은 맥락이다.

다당제인 프랑스와는 정치 환경에 차이가 있지만, 원포인트 개헌의 타당성 여부를 프랑스 대선과 총선을 통해, 또 그 이후 펼쳐지는 정치과정을 통해 간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비슷한 프랑스 정치상황... 2000년 원포인트 개헌

▲ 사르코지가 당선이 확정된 후 짧은 연설을 하고 있다.
ⓒ2007 박영신
또 하나는 프랑스 우파 진영에서도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저돌적인 니콜라 사르코지의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개혁 드라이브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관심거리다. 사르코지는 선거 과정에서 취임 100일 안에 경제개혁에 '승부'를 걸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주35시간제를 손보는 것이다. 그것은 추가 근무 수당의 삭감과 소득세 감세 정책으로 구체화될 예정이다.

두 번째로는 대학 자율화 정책이다. 사르코지는 대학의 경쟁력 확보를 명분으로 현행 국영체제인 대학의 자율화를 과감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 번째로는 공공 운송 분야 파업 때 최소한의 필요 서비스를 명령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하는 작업이다. 일종의 긴급명령권이다.

사르코지는 이들 '개혁법안'들을 8월말까지 끝내겠다는 일정을 잡고 있다. 여름까지 노동계나 대학 측과 협의를 통해서 합의점을 찾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를 볼 수 없을 때에는 이를 강행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노동계나 대학 측과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강경한 치안대책과 이민 규제 정책 등 그의 저돌적인 개혁드라이브는 곳곳에서 마찰음을 낼 소지가 다분하다. 사르코지의 이같은 신자유주의적인 개혁 드라이브는 올해 대선의 결과에 따라서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충분히 예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신자유주의 드라이브 몰아칠 '사르코지의 프랑스'... 우리는?

▲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사르코지의 당선을 축하하는 공연이 열리고 있다.
ⓒ2007 박영신
특히 주목되는 점은 '거리의 정치적 영향력'이다. 혁명의 기운이 남아 있는 프랑스에서는 '거리의 투쟁'이 의회 못지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2003년 연금개혁안에 대한 전국적인 반대 시위나 지난해 법까지 제정했지만 결국 무산된 '최초고용법'에 대한 반대 시위가 대표적이다(시라크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르코지는 수차례에 걸쳐 이런 문제를 다룰 때 '과거의 정부'와 다를 것임을 분명하게 천명해왔다. 확실하게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에 그가 대권을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했다. 그만큼 프랑스 '거리의 반응' 역시 치열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중도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사르코지의 승리를 전하면서 뽑은 기사 제목은 단 한자였다고 한다. '괴로운(Dur)…'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괴롭고 힘든 '거리의 투쟁'이 예고돼 있다는 전망일 것이다. 프랑스의 한 작가는 <르 피가로>지에 "좌석 벨트를 꽉 매라"고 썼다고 한다. 아주 심하게 흔들릴 게 분명하니까.

사르코지가 이끌 프랑스 정국 향방은 올 12월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이 답습하게 될 정국의 프랑스판 버전일 수 있다. 좌우 대립전선의 선명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의 이념적 정치 지형이나 판세도 프랑스와 유사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한국의 '거리' 또한 프랑스만큼이나 뜨겁다.

사르코지의 승리에 환호했든 혹은 좌파의 위기에 주목했든, 한국 언론이 앞으로 전개될 프랑스의 향방에 관심을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백병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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