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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식코(Sicko)'를 봐야하는 이유-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Sicko)>

이명박 대통령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민영보험 활성화도 패키지로 묶였다.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나면, 18대 국회 출범과 함께 의료보험 ‘개혁’을 밀어붙일 것이 분명하다.

그럼 예측을 해보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의료보험이 민영화되면 어떻게 될까.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실현될까.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대한민국 1%’는 확실히 혜택을 누리게 될 테니까. 그러나 나머지 99%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제공할 혜택과 무관하다. 말도 안 된다고? 믿지 못하겠다면 마이클 무어의 새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를 볼 것을 권한다.

한 손가락 접합에 6000만원이 든다?

〈식코〉는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롤 모델’로 삼는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작품이다. 미국은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고자 하는 의료보험 민영화를 수십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민영이니 보험료가 천정부지로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병원비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 등의 마이클 무어가 내놓은 새 다큐멘터리 <식코>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5000만의 미국인들은 거액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다리에 상처가 나면 직접 바늘로 꿰매야 하고, 톱니바퀴에 두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완전한 접합은 기대할 수도 없다. 중지 하나에 우리 돈으로 약 6000만원, 약지는 1200만원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두 손가락 중 하나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만다.

2억 5000만의 보험 가입자들도 크게 나을 것은 없다. 보험사가 갖가지 이유를 들어 보험료 청구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앰뷸런스를 부르기 전에 보험사의 승인을 받지 않아서, 보험 가입 전에 아주 사소한 질환을 앓아서, 혹은 소수인종이기 때문에 그들은 보험에 들고도 자식이나 남편이 죽는 것을 손 놓고 지켜봐야 한다. 물론 미국의 상류층 백인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나라’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마이클 무어는 1971년으로 거슬러 갔다. 〈식코〉가 공개한 당시 비밀녹취록에 따르면 닉슨 대통령은 “의료정책에 관심이 별로 없다”면서도 “사기업이 건강유지기구(HMO)를 운영하면 더 적은 지출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바로 의료보험 민영화 선언으로 이어졌다.

수년 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어머니’들 앞에서 미국인의 건강을 민간 보험사에게 완전히 넘긴다. 이 자리에 있던 부시 대통령과 미국의 공화당 의원들 머리 위로 가격표가 떠오른다. 제약회사와 보험사로부터 받은 후원금 액수다. 적게는 수천만 원부터 많게는 수억, 수십억에 이른다. 입으로만 ‘최고의 의료서비스’ 운운하는 위정자들의 위선이다.

국민이 두려운 정부, 정부가 두려운 국민

미국에서 해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무어는 의료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캐나다와 영국, 프랑스, 쿠바로 향했다. 무어가 만난 캐나다의 한 노인은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밝히면서도 지극히 ‘사회주의적’인 이야기를 떳떳이 했다. “의료는 마땅히 세금을 내서 국가가 공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도입한 좌파 정치가 토미 더글라스를 캐나다 출신 가수 셀린 디온보다 더 존경한다고도 말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NHS(국민건강보험)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프랑스에서도 무상 의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영국의 병원엔 원무과란 개념 자체가 없고, 겨우 찾아낸 계산대에선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교통비를 지급해 준다.

   
▲ <식코>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의료 대재앙'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또 프랑스의 한 청년은 미국에서 생활하던 중 크게 다쳐 고국으로 돌아갔다. 프랑스에서 그는 모든 치료를 무료로 받았고, 정부와 회사의 지원으로 3개월간 유급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었다. 우리로선 꿈만 같은 이야기다. 마이클 무어도 “그럴 리가!”를 연발했다.

말도 안 될법한 일들이 가능한 이유, 프랑스에 사는 미국인의 말에 해답이 있다. “프랑스에선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미국에선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한다.” 우리는 어느 쪽일까.

다시, 우리의 경우

〈식코〉는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인을 화자로 하고 있지만, 결코 ‘미국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국의 현재는 우리에게 펼쳐질 가까운 미래이기도 하다. 〈식코〉를 보는 동안 속이 답답하고 탄식이 절로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일 의료보험 민영화가 실현되면, 우리도 쿠바에서 50원에 살 약을 20만원이나 주고 사야 할지도 모른다. 보험사의 사리사욕 때문에 살 수 있는 환자가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식코〉를 추천한다. 〈식코〉는 우리 앞에 벌어질 ‘의료 대재앙’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고다. 위트와 폭소 사이에 숨은 무서운 경고를 절대 외면해선 안 된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식코〉 관람을 강하게 권하고 싶다. 정말 실용적인 정부라면 〈식코〉를 본 뒤 국민에게 어떤 실용도 없을 의료보험 민영화 방안은 폐기하는 것이 옳다. 만일 〈식코〉를 본 뒤에라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수밖에 없다. 9일, 총선 투표에서 그 힘을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