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ave a feeling

[스크랩] 아시아 애국 주의

2005.6.17 (금) 18:12   한겨레21
아시아의 애국주의를 말한다
[한겨레] 전통적인 역사왜곡에서 비롯된 이웃나라에 대한 편견과 모독
티격태격 ‘교과서 논쟁’은 한·중·일만의 문제가 아니라네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버마 말에 ‘함락시킬 수 있는’이란 뜻의 요다야(Yodaya)란 게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함락시킬 수 없는’이란 뜻을 지닌 중세 타이 왕국 아유타야(Ayutthaya)를 비꼰 말인데, 심심찮게 타이라는 국호 대신 쓰여왔다.

타이의 공포심, 버마의 질투심
특히 두 나라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버마쪽에서는 타이 대신 ‘요다야’가 정부 문서나 교과서에 공식 용어처럼 등장했다. 실제로 좋은 본보기가 있다. 버마 군사정부의 입노릇을 해온 <뉴 라이트 오브 미얀마>(New Right of Myanmar)는 2002년 6월20일치 기사에서 “그들이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린 ‘요다야’를 좋은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타이를 요다야로 불렀다.

그 무렵, 5월부터 버마 군사정부가 마 틴 윈(Dr Ma Tin Win)이라는 사학자를 동원해 <뉴 라이트 오브 미얀마>에 “19세기 타이 왕실은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고자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타이를 팔아먹었다”는 기사를 실은 뒤 두 나라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그렇게 ‘역사왜곡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버마 정부군 포탄이 타이 왕립 프로젝트 지역인 북부 국경 도이 앙캉으로 날아들기도 했다.

이에 대한 타이쪽의 대응도 만만찮았다. 신문들은 “버마 군사정부의 최고 실권자를 암살하라”며 무장철학을 노골적으로 부추겼고, 탁신 친나왓 총리는 “그 모욕적인 기사는 버마 정부가 조종한 것이니 부적절한 부분들을 당장 수정하라”고 외치는 한편 “타이 군은 항의할 합법성을 지녔다”고 무력 시위에 나섰다.

전통적으로 타이와 버마가 ‘삿 뚜르 티 수어 라이’(흉포한 적)니 ‘파르 나잉 응안’(매춘국)이니 하며 아예 상대를 대놓고 깔아뭉개온 말질 속에는 뿌리 깊은 불신감이 숨어 있다.

타이가 1767년 아유타야 왕국을 공격해 불상이란 불상은 모조리 목을 날려버린 버마에 대해 공포심과 적개심을 갖고 있다면, 1960년대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제3세계 개발의 본보기로까지 불리다 장기 군사독재로 뒤틀려버린 버마는 정치·경제적 발전을 통해 상황을 역전시킨 타이에 대해 불타는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



이번에는 타이 남부 말레이(무슬림)쪽으로 넘어가보자. “못 믿을 무슬림들” “기회주의자 무슬림들” “난폭한 무슬림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이런 비열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타이 사람들 사이에 아무 탈 없이 돌고 있다. 탁신 총리 정부가 무슬림 분리주의 박멸작전에 돌입한 2004년 1월부터 이런 폭력적 인식은 날개 단 듯 온 천지를 날아다닌다. 그런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맞댄 타이 남부 무슬림 3개 주인 빠따니, 얄라, 나라티왓은 그야말로 피로 물들었다.

타이의 왕조사를 둘러싼 논란
남부 3개 주 ‘무슬림 형제’를 놓고 국경을 맞댄 말레이시아와 타이 사이의 총성 없는 전쟁도 꼴사납기는 마찬가지다. “남부 무슬림 분쟁의 해결책은 자치권 부여뿐이다.”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나섰다.

“상황을 이해하려면 공부를 더 해라. 타이 무슬림 분리주의자들이 말레이시아로 가서 군사훈련을 받아온 책임이나 질 일이지.” 탁신 총리도 질세라 맞받아쳤다.

그렇게 설전이 오가는 사이 두 정부 사이에는 메우기 힘든 골이 패었고, 시민들 사이에는 적대감이 쌓였다.

타이의 탐마삿대학 부설 동남아시아연구소 소장 타넷(Thanet Aphornsuvan)은 “19세기 말부터 타이 정치사가 말레이계 무슬림들을 ‘반역자’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날조해왔다”며 무슬림에 대한 타이 사회의 전통적인 차별과 편견이 역사 왜곡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타이에서는 역사를 교육할 때, 남부 무슬림 분리투쟁은 ‘말레이계 무슬림들이 존재한 적도 없는 빠따니 왕국을 들먹거리며 빠따니, 얄라, 나라티왓을 타이로부터 이탈시키려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니 타이에서 남부 무슬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을 만나기란 참으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만다.

그러나 분명한 건, 타이가 자신들 왕조사의 출발점으로 삼는 수코타이 왕국 이전부터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를 잇는 힌두-부디스트 왕국 스리위자야의 중심지 노릇을 했던 빠따니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13세기 무렵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이슬람을 받아들여 17세기까지 남중국해를 끼고 빛나는 해양문화를 건설했던 빠따니 왕국은 1563년 버마로부터 공격받던 타이 왕국 아유타야를 한때 장악하면서 자신들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바로 이 역사 지점이 오늘날까지 타이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잡은 ‘기회주의자 무슬림’을 낳는 도구로 활용됐다.



“타이가 늘 빠따니 왕국을 타이의 일부로 표현해왔지만, 빠따니 왕국은 정치적으로 타이에 복속된 적이 없었다. 1902년 시암(타이의 옛 이름)이 빠따니 왕국을 강제 합병한 뒤, 다시 1909년 말레이반도의 식민 종주국인 영국과 나눠먹기 방콕조약을 통해 타이-말레이시아 국경선을 그어 결국 빠따니 왕국을 지워버리기 전까지는.” 통차이(Thongchai Winichakul·위스콘신대 사학) 교수는 역사 왜곡이 편협한 민족주의자들의 잇속을 채우는 도구라며 비판했다.

그렇게 타이에 합병된 빠따니 왕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동맹한 타이에 맞서 연합국을 지원함으로써 전후 독립을 보장받았으나, 영국이 약속을 깨고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오늘날까지 타이를 상대로 지난한 분리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니, 타이가 가르쳐온 ‘흉악한’ 남부 무슬림 분리주의 투쟁이 남부 무슬림으로 가면 ‘거룩한’ 독립투쟁이 되고 만다.

“지도는 다시 그리면 그뿐이야”
이렇듯, 타이를 낀 동남아시아는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다. 거친 삿대질과 우격다짐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지는 모양새다. 그 모든 천박한 기운은 짐승처럼 혈통을 따지는 ‘인종주의’와 역사적 산물을 왜곡한 ‘민족주의’, 그리고 돈놀이판 ‘애국주의’라는 피투성이 삼형제가 난투극을 벌인 결과다. 그 속에서 아시아 시민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음흉한 새벽을 눈치채지 못한 채, 삼박자 핏빛 행진곡에 덩달이 노릇을 하고 있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질리도록 들어온 ‘역사 교과서 왜곡’이니 ‘영유권 분쟁’이니 하는 말들이 한국, 중국, 일본 시민들만의 것이 아님을 독자들께 소개해 올리면서 이번주 아시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덧붙여, 아시아 네트워크는 정치에 주눅든 타이 불교 전통을 깨고 거침없이 정치판을 난도질해온 끼띠삭(Kittisak Kittisophano) 스님의 말을 이번주 화두로 올린다. “처음부터 나라를 가르는 지도가 어디 있었어. 세상 만물은 변하는데 지도라고 변하지 말란 법이 또 어딨어. 까짓 지도는 다시 그리면 그뿐이야. 사람을 중심에 놓고 지도를 그리란 말이야!”

 
출처 : 블로그 > 닥터상떼 | 글쓴이 : 닥터상떼 [원문보기]
 

'have a feel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백두대간 훼손  (0) 2006.01.17
[스크랩] 도시 하천  (0) 2006.01.17
[스크랩] 물  (0) 2006.01.17
[스크랩] 레드 신드롬  (0) 2006.01.17
[스크랩] 중국/짝퉁  (0) 200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