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군비 확산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국회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 홍성태/ 상지대 교수
한국에 로카쇼무라가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핵연료 사이클 시설’의 미명 아래 거대한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이 시설이 초래할 새로운 핵군비 확산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 국회는 의원방문단을 조직했다. 그 방문단에는 당시 평화민주당의 초선 의원이었던 현 이해찬 총리도 있었다. 그는 로카쇼무라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월간 <말>에 ‘일본 핵무기 개발의 현장 로카쇼무라를 가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일본 핵무기 개발의 현장’이라는 제목 자체가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 위험천만한 시설이 완공되어 플루토늄의 생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 부처·재벌·보수언론의 복합체
노무현 대통령이 1991년 10월11일 민주당 의원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로카쇼무라 관련 발언을 한 사실도 있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그는 이렇게 질문했다. “일본 아오모리현의 로카쇼무라에서는 대규모 핵처리 시설이 건설 중에 있다고 한다. 이 경우 일본은 막강한 핵전력을 보유하게 되는 것 아닌가.”
사실 이해찬 총리나 노 대통령의 침묵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로카쇼무라의 배후에는 일본을 진정한 ‘혈맹’으로 생각하는 미국의 지지와 지원이 있다. 이 점에서 로카쇼무라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핵질서의 불공평성을 웅변하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면,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의 기준을 잘 지켰고, 이 때문에 핵 재처리 시설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공식적으로 의견을 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의회는 다르다. 국회의원들은 로카쇼무라의 문제에 대해, 그것이 야기할 새로운 핵군비 확산의 위협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국회의 핵군축모임은 물론이고 모든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 지난해
11월19일 한-일 시민들의 로카쇼무라 핵 재처리 시설 가동 반대 시위에 참여한 필자(앞줄 오른쪽). 영국 셀라필드에서 온 주민운동가 마틴
하워드(왼쪽에서 두 번째)도 함께했다. |
한국의 찬핵 세력은 로카쇼무라를 마치 ‘성지’와 같은 곳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회의 관심이 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로카쇼무라의 가장 대표적인 시설로는 중·저준위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처분장, 우라늄 농축시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시설 등 4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한국의 찬핵 세력은 이 가운데 중·저준위 핵폐기물 영구처분장만이 로카쇼무라에 있는 것처럼 선전했으며, 더욱이 그 시설을 무슨 복지시설이나 문화시설인 것처럼 선전했다. 이에 대해 로카쇼무라 지역의 주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로카쇼무라가 있는 일본 아오모리현의 ‘핵폐기장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모임’은 1994년 1월21일 한국방송위원회 위원장 앞으로 로카쇼무라 핵폐기장이 민주적으로 선정된 것처럼 묘사한 광고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한국의 찬핵 세력은 사실상 거대한 ‘복합체’를 이루고 있다.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문화재단 등의 정부 부처와 공기업이 그 핵심에 자리잡고 있고, 재벌을 중심으로 한 많은 기업들, 그리고 보수언론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로카쇼무라에 대한 이들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핵발전을 위해 로카쇼무라와 같이 핵폐기장 시설을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여기서 나아가 궁극적으로 로카쇼무라와 같이 핵폐기물 처리장은 물론이고 핵 재처리 공장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로카쇼무라처럼 핵발전은 물론이고 핵무장에 대해서도 유용한 시설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핵산업론’은 ‘핵주권론’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 찬핵 세력에게 로카쇼무라는 가장 훌륭한 모범이다.
이런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한국의 찬핵 세력은 일본의 찬핵 세력과 적극적인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한-일 원자력발전 세미나’와 같은 정례적 학술회의를 열 뿐 아니라 활발한 기술교류와 산업제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보수언론의 기자들을 로카쇼무라로 데려가서 관광을 시키고 일방적인 홍보기사를 써내도록 하고 있다.
△ 지난해
7월13일 도쿄에서 '한국의 평화운동과 로카쇼무라'를 주제로 강연회가 진행되고 있다. 로카쇼무라는 일본을 넘어 세계의 문제로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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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의 위험천만한 연대여
그러나 로카쇼무라는 결코 ‘성지’가 아니다. 그곳의 ‘핵연료주기 복합시설’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설이다. 어떤 홍보로도 이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 설령 중·저준위 폐기장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로카쇼무라 전체를 ‘성지’로 선전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의 문제에 눈을 감는 것은 너무도 잘못된 것이다. 한국의 찬핵 세력은 핵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국가와 민족의 복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은 인류의 복리에 대한 위협이며, 따라서 국가와 민족의 복리에 대한 위협이다.
한국의 찬핵 세력은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도 내심 같은 시설의 보유를 추구하는 위험천만한 세력이라는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일의 연대운동, 결실 맺을까
내가 로카쇼무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당시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이 건설되면서 국내 언론에 이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전부터 핵발전의 위험성을 깊이 우려하고 있었고, 그 연장선에서 로카쇼무라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이해찬 의원의 글이 실린 <말>도 구입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으며, 몬주고속증식로 등에 관한 기사들도 한동안 계속
모았다.
찬핵 세력이 로카쇼무라를 ‘성지’로 선전하는 것에 맞서 로카쇼무라 지역의 주민들과 한국의 핵폐기장 정책 관련 지역의 주민들, 그리고 한국의
환경운동 사이의 연대활동이 활발히 펼쳐졌다. 그러나 이 활동은 한국의 핵폐기장 정책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로카쇼무라 반대운동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로카쇼무라 반대운동 쪽에서 참여연대로 연대활동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나는 일본의 요청에 따라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의 가동을 막기 위한 한-일 연대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먼저 2005년 7월6일에
일본의 운동가인 다쿠보 마사후미씨가 서울로 왔다. 이어서 7월12일에 내가 도쿄로 가서 두 차례의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7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한-일 연대활동을 조직했다. 그 결과 여러 단체와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11월8일에 국회
동북아연구회의 도움을 받아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연 ‘로카쇼무라 위협에 관한 한-일 국제 세미나’는 그 중요한 성과다. 이어서 11월17일에
나는 다시 도쿄로 가서 기자회견과 심포지엄은 물론이고 집회와 거리시위에도 참여했다. 특히 11월의 행사는 전국 단위의 반핵·반로카쇼무라 운동으로
펼쳐진 것이어서 여러모로 중요했고 인상 깊었다.
일본의 로카쇼무라 반대운동에는 핵발전에 찬성하는 쪽도 참여하고 있다. 핵발전을 찬성해도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과 같은 위험천만한
준군사시설은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은 일본의 핵무장 의지와 무관하게 세계적인 핵군비 확산의 위협을 높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엄청난 ‘특혜’이기 때문이다. 또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일어나거나 테러를 당하게 된다면, 그 지역은 물론이고 동북아 전체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일상적으로도 상당한 양의 방사성 물질을 대기와 바다로 배출하게 되기 때문에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은 극히 위험한
시설이다.
한반도 평화구상은 동북아 평화구상의 맥락에서 추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전범국’ 일본의 평화 의지는 북한의 평화 의지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의 가동을 막는 것은 우리의 절박한 과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생산공장은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결코 일본만의 문제일 수 없다. 그것은 세계의 문제이며, 무엇보다 일본과의 불행한 역사를 여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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