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3원칙 앞세우면서도 핵무장 포기 않고 독립적인 플루토늄 생산에 열올려
▣ 로카쇼무라=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보통 우리가 기술에 관해 말할 때 평화 이용이니 군사 이용이니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에너지원을 말할 때 석유나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평화를 위한 석유’나 ‘평화를 위한 석탄’이라고 구별하지 않으며 또 구별할 수도 없다. 강철 기술이나 비행기 기술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비행기 기술을 평화 이용이니 군사 이용이니 하고 구별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원자력의 경우에는 새삼스럽게 평화 이용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 이용과 엄연히 구별해서 평화 이용이라고 하면서까지 그 어떤 신화로서 선전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원자력은 처음부터 군사 이용, 즉 원자탄 개발을 위해서 시작됐기 때문에 군사적 성격을 띤다.”
방위 목적의 핵무기는 괜찮다?
세계적인 반핵운동가이자 시민과학자인 다카기 진자부로는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또 “원자력 기술은 그 역사나 기술 실태를 볼 때 본질적으로 극히 파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며 “기술적으로 볼 때 군사용으로 쓸 수 없는 원자력 기술과 군사용으로만 쓸 수 있는 원자력 기술로 나눌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젠하워가 1953년 유엔에서 한 연설 중에 나오는 ‘핵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이라는 말은 어쩌면 형용모순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을 터트린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이래저래 핵을 둘러싼 아이러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 1992년
11월부터 93년 1월까지 일본 정부는 프랑스에서 재처리한 플루토늄을 아카스키호를 통해 일본까지 실어날랐다. 당시 그린피스가 전개한 수송 반대
캠페인. |
일본이 핵 알레르기에서 그렇게 빨리 회복했다는 점 역시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어쨌든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진 1945년에서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때인 1953년 핵을 에너지 생산에 이용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시로서는 외교정책의 목적을 위해 기술적 리더십을 이용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선택을 일본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당시 미국은 핵에너지에 관한 지식과 설비의 보급이 핵무기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미-일은 원자력 협력협정을 맺고 두 나라 사이의 협력을 공식화했다. 미국은 일본에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조건으로 경수로와 관련한 기술과 함께 핵연료로 농축우라늄을 제공했고 일본은 이것을 기초로 핵에너지 이용을 시작했다. 일본 역시 전후 복구 시기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팽창하는 전력수요량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나 당시에 싸고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개발된 원자력은 냉전 시기가 지나면서 새로운 안보위협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수평적 핵 확산 문제를 동반하게 됐다.
일본은 전범국이자 유일한 피폭 국가로 ‘핵무기의 생산·보유·반입의 금지’라는 비핵 3원칙을 ‘국시’로 지키면서 1968년에 핵 비확산 체제, 즉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핵 보유국은 보유 핵을 줄이는 핵군축이라는 수단으로, 비핵보유국은 핵에너지가 군사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는 비확산이라는 수단으로 하는 국제조약 체제)의 틀 안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본이 내세우는 ‘비핵 3원칙’은 허울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많다. 헌법이나 법률로 명문화한 것도 아닌데다 핵무기를 장착한 비행기나 항공모함이 일본 영내로 들어오는 것은 사실상 눈감아주는 등 실제로는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또 대외적으로는 비핵 체제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대내적으로 ‘핵무장 합헌론’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964년 중국이 최초로 핵실험에 성공해 다섯 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되자 큰 충격을 받은 일본에서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핵무장의 선택지를 유보해둬야 한다”는 핵무장론이 고개를 쳐들게 됐다. 일본 정부는 헌법 9조가 보장한 ‘고유한 자위권을 위한 최소한의 군사력’ 범주에 핵무기도 포함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왔다. 1970년 최초의 방위백서에서 일본 정부는 “핵무기 보유를 정책적으로 부정하지만 방위를 목적으로 한 소규모의 전술핵무기를 보유해도 평화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한마디로 “헌법상 보유 금지가 아니라 정책적 판단에 따라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핵연료 사이클 정책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고속 증식로 몬주(오른쪽 아래). 그러나 1995년 나트륨 누출사고(오른쪽)로
가동이 중단된 뒤 아직까지 재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AP 연합)
|
비핵 3원칙 폐기→NPT 탈퇴→핵무기 개발
이런 상황에서 독자적인 핵무장의 물리적 조건을 결정적으로 앞당긴 사건은 1986년 6월 미-일 사이에 이뤄진 원자력 협력협정이었다. 미국은 이 협정에서 “30년 동안 플루토늄을 에너지 생산에 이용하겠다”는 계획에 동의함으로써 일본이 핵 관련 인프라와 기술 면에서 미국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정치적 배경을 제공했다.
1970년대 이후 일본의 핵에너지 장기 계획에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핵에너지 이용에서의 자주성 향상’이다. 이의 정책적 표현이 ‘핵연료 사이클 완성’이고, 물리적 완성이 ‘로카쇼무라 핵복합단지 건설’이었던 것이다. 8차 계획(1992~97)에서는 아예 “미-일 원자력 협력협정을 수정해 플루토늄 저장에서 일본의 독립성을 증가시킨다”고 적시했다. 로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을 통해 플루토늄을 대량 생산, 대량 저장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그때부터 공식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현재 보유 원자로의 규모 면에서 미국과 프랑스에 이은 세계 제3위의 원자력 대국이다. 핵무장과 직접 관련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평가다. 1995년 NPT 무조건 무기 연장의 서명을 앞두고 일본 정부는 한동안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 다시 한 번 일본이 핵무장 의사를 가진 게 아닌가 하는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일본 정부가 한편으로 비핵 3원칙을 들어 평화 국가의 이미지를 내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핵 선택권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를 종합해보면 일본 정부의 정책이 변경된다면 적어도 3~4개월 안에는 일본이 핵무기 제조를 끝낼 수 있다는 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문제연구소의 조성렬 박사는 “일본 정부가 핵무장을 결심하더라도 정치적·외교적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핵무장을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일본이 취하고 있는 핵무기 확산금지 정책은 비핵 3원칙, 원자력기본법, 핵무기확산금지조약 등 3가지 기둥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몇 가지 단계를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첫 단계는 국회 결의로 채택된 비핵 3원칙을 폐기하고 핵의 평화적 이용을 규정한 ‘원자력기본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한다. 두 번째 단계는 제1단계와 동시에 이뤄지거나 곧바로 취할 수 있는 조처로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대상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존 연구용 또는 상업용 핵시설들을 핵무기 제조공장으로 바꾸는 등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 체제로 전환하는 단계다.
그는 핵무장 이슈와 관련해 일본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한다. 즉, △북한의 핵무기 보유 또는 통일 한국의 핵무기 보유 △미국의 핵우산 기능 저하 또는 철회 △정치적 위기로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장악할 경우 등이 그것이다. 그는 위의 3가지 시나리오가 핵무장으로 연결될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국내 반대 여론 △주변국의 반발 △국제 레짐(regime)의 제약 △군비능력의 한계 등 4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표 참조).
‘사찰 우등생’의 검은 속내
‘일본 핵에너지 정책의 이중성에 대한 분석’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김지연씨는 “일본은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춘 상태로 핵무기 개발의 관건은 정책 결정자의 판단과 미국이 언제까지 일본에 핵우산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미국이 일본에 대해 핵우산을 거둬들이고 동북아시아에서 핵무기 개발을 포함한 군사력의 증강을 허용하면 일본의 핵무기 개발은 심도 있게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일본의 핵에너지 이용은 에너지 생산에 국한되지 않고 핵무기 개발 능력으로 이어졌다”며 “핵 비확산 체제가 비핵국의 핵개발을 막는 충분한 버팀목으로서 작용하지 못하는 현실과 일본 핵의 잠재적 능력을 감안할 때 일본의 플루토늄 이용은 명백한 핵확산의 범주에 속하고 동북아시아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핵군비 경쟁에서 한쪽의 핵군비 증강은 그 자체가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위협이 되는 모순된 상황을 만든다. 실제 독일 나치 정권의 핵무장 가능성 때문에 미국이 최초로 핵무장을 했고, 미국의 핵위협을 받은 소련이 이어서 핵무장을 했고, 소련의 핵위협을 받은 영국과 프랑스이 핵무장의 길에 나섰다. 미·소의 위협을 받은 중국이, 중국의 위협을 받은 인도가, 인도의 핵위협을 받은 파키스탄이 잇달아 핵무기를 보유했다. 주변국들의 군비증강에 위협을 받은 이스라엘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어렵지 않게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일본은 NPT 체제에서 ‘사찰의 우등생’으로 평가받았다. IAEA 사찰 역량의 10% 이상을 일본에 투입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한 감시 체제에서 핵시설을 운용해왔다. 2004년 6월14일 IAEA는 일본의 원자력 이용은 핵무기 전용 우려가 없음을 인정하면서 핵사찰 횟수를 기존 수준에서 절반으로 줄이도록 결정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일본 정부는 제7차 NPT 평가회의에서 NPT 탈퇴 문제에 대해서 대단히 모호하면서도 자신의 속내가 일부 묻어나는 발언을 해 주목을 끌었다.
“탈퇴 문제 검토를 위한 특별회의 소집은 행정 지원 측면에서 문제가 있으며 주요 이해당사국들에 의한 해결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 안보리의 개입은 역내 협의와 같은 일차적 조치가 취해진 뒤 마지막 해결 수단으로 유보돼야 한다. 특히 탈퇴 문제를 안보리에 자동 이관하는 것은 안보리의 권능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안보리에 통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 로카쇼무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공장 가동은 동북아시아에서 핵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2004년 1월6일 북한 핵사찰단이 평양에 도착한
모습. (사진/ 연합) |
‘플루서멀’은 실패로 판명 났으나…
같은 회의를 앞두고 미국 비정부기구(NGO) ‘우려하는 과학자동맹’(UCS)은 로카쇼무라 재처리 공장 가동을 무기한 연기할 것을 일본에 요청했다. 이 단체가 4명의 노벨상 수상자 등 미국 전문가 27명에게 서명을 받은 요청서는 “로카쇼무라 공장은 핵무기 비보유국 최초의 재처리 공장이기 때문에 계획대로 운전하는 것은 이란이나 북한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 재처리 시설이나 농축시설을 만드는 것을 단념시키려는 국제적 노력에 폐해가 된다”고 못박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핵연료는 리사이클할 수 있다’는 깨진 신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고속 증식로와 ‘플루서멀’(Plu-Thermal·‘Thermal Recycle of Plutonium’의 일본식 조어로 플루토늄을 목스 연료로 경수로에서 소비한다는 계획)은 환경과 안정성 문제로 모두 실패작으로 판명났다. 지혜라는 뜻의 ‘몬주’는 고속 증식로에 붙일 게 아니라 일본 정부 당국자들의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인 듯싶다.
'*시사 & 피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기에 대한 맹세 없애자1 (0) | 2006.03.20 |
---|---|
일본 핵폭탄의 꿈을 경계하라-핵연료 재처리시설 (0) | 2006.03.20 |
원칙적으론 안되지만-핵정책 (0) | 2006.03.20 |
당신들의 오싹한 성지-핵폐기장 (0) | 2006.03.20 |
하얀가운을 보면 피가 끓는다-동물실험의 잔혹함 (0) | 2006.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