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 피플

물고기와 달걀의 인도주의-화장품의 대체시험법

물고기와 달걀의 인도주의

제브라피시로 종양모델 만들거나 달걀에 화장품 독성을 주입하는 대체실험
고통 기억 시간이 최대한 짧은 생물 이용하는 노력, 아직 한국은 걸음마 단계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마우스, 개, 원숭이만이 실험동물이 되는 걸까? 아니다. 최근에는 물고기도 실험동물로 이용하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어류는 포유류에 비해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극히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통을 최소화하는 3R 원칙에 다가서려는 노력이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경제적이기도


△ 암 메커니즘 연구에 쓰이는 제브라피시(위)와 종양 유전자를 집어넣은 치어들. 물고기는 포유류에 비해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극히 짧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윤운식 기자)

서울대 수의대 박재학 교수팀은 제브라피시(잉어과의 대표적인 관상어)를 이용해 암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박 교수는 “고등동물보다는 하등동물을, 하등동물보다는 동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1월31일 찾은 그의 실험실은 수족관으로 둘러싸여 축축이 젖어 있었다.

“제브라피시는 사람과 유사성이 많아요. 사람처럼 척추동물이고, 폐를 제외하곤 인간이 가진 장기를 다 가지고 있죠. 2000년대 이후 윤리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동물 모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연구에서는 마우스가 종양모델로 이용된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서도 인공적으로 쥐에게 ‘테라토마’를 만들었듯이, 연구자들은 많은 실험에서 쥐의 세포에 종양 유전자를 주입해 암을 만든다. 종양 유전자를 품은 쥐들의 암 발생 과정을 연구해 암 발생 메커니즘과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실험실의 쥐들은 태어나자마자 외부에서 주입된 암을 앓다가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 한다.

연구팀의 석승혁 연구원은 깨알만 한 알이 들어 있는 샬레를 현미경 재물대 위에 얹었다. “쥐에게 종양 생성 유전자를 집어넣을 때는 세포에 직접 주입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요. 하지만 제브라피시는 세포보다 훨씬 큰 알에 주입하면 되기 때문에 손쉽고 실패율이 낮아요.”

제브라피시는 경제적이기도 하다. 세 달이면 성체가 되는 짧은 생애주기, 한 번에 200~300개의 알을 낳는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 실험용 쥐가 한번에 6~10마리 낳는 데 비해 엄청난 번식력이다.

그렇다고 물고기는 생명이 아닌가. 물고기가 고통을 느끼는지, 느끼지 못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학계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어류는 포유류에 비해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극히 짧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과학계에선 종양 모델 연구가 불가피하다면, 어류를 이용한 종양 연구는 ‘인도주의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물고기도 물론 ‘생명’이기 때문에 실험을 피해야 하지만, 최대한 동물의 고통을 줄이려는 인간의 선의의 노력으로 해석하자는 것이다. 제브라피시를 이용해 혈액암 연구모델을 확립한 논문은 2003년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박 교수팀은 제브라피시를 이용해 뇌 종양과 간 종양 모델을 확립하는 게 목표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 화장품의 안전성을 시험하기 위해 독성물질이 투여된 유정란. 토기의 안점막을 대신한다.

그러나 박 교수처럼 대체실험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국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1월20일 경기 기흥의 태평양 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실험동물의 대체에 관련된 특별 세미나’에 참석한 70여 명의 동물실험 연구자들의 얼굴에는 위기감이 가득했다. 이날 4시간 남짓의 세미나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참석자들의 하소연이 네댓 차례 반복됐다. 실험동물의 대체에 관한 한 한국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동물실험을 이용한 화장품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또한 2005년 11월7일에는 관련 업체와 연구자들이 모여 “화장품은 물론 화학합성물에 대한 동물실험도 금지하기 위해 이를 위한 대체실험법을 연구해 보고한다”는 브뤼셀 선언을 발표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체실험법 체계를 갖춰나가고 있다. 1994년 유럽은 유럽대체실험검증센터(ECVAM·European Center for the Validation of Alternative Methods)를 세워 민간에서 개발되는 대체연구법을 검증·인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역시 같은 기능을 가진 대체실험검증위원회(ICCVAM)가 1997년 세워졌고, 일본에서는 일본대체실험검증센터(JACVAM)가 2004년 설립됐다. 이 기관들은 민간의 대체실험을 지원·연구하는 한편, 대체실험법을 통해 얻은 독성시험 결과를 검토한다. 세계 추세는 동물실험에서 대체실험으로 가는데, 국내에선 연구하는 학자도 드물고 정부기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 잡지를 보니까 뒷면에 동물 실험하는 회사와 하지 않는 회사를 써놓았더라고요. 소비자들이 구매에 참고하는 것이죠. 다행히 우리 회사는 리스트에 없었지만, 이젠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부터라도 대체실험법을 준비하지 않으면 수출 등 기업 활동에도 지장이 생길 겁니다.”

한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연단에 서서 이렇게 푸념했다. 연구자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우리가 대체실험법을 개발해도, 인증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이를 인정해줄지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올라온 연구원은 식약청과 4~5개 기업이 공동으로 대체법 연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국내 화장품업계에서는 제1위 업체인 태평양 정도만 대체실험법을 제한적으로 도입한 상태다.

화장품에서 주로 사용되는 동물실험은 ‘드라이즈 테스트’라고 불리는 안점막 실험이다. 화장품이나 샴푸·린스의 특정 성분이 눈에 들어가도 실명이나 눈병의 위험이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일정량의 독성물질을 토끼의 눈에 투여하고 1시간, 24시간, 48시간째 경과를 확인한다. 물론 간결한 실험결과를 위해서 토끼는 결박되며 마취제의 투입도 제한된다.

대체시험법 준비 서두르는 식약청

태평양은 계란을 이용한 대체실험(헷캠·HET-CAM)을 도입해 토끼에게 고통을 주는 안점막 실험 횟수를 줄이고 있다. 열흘 정도 부화시킨 유정란에는 혈관이 발달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독성물질을 투여한 뒤 눈이 충혈되는지 여부를 따져 독성을 가린다. 막 자라기 시작한 유정란의 혈관이 토끼의 안점막을 대신하는 것이다. 소의 각막세포를 이용한 방법도 있다. 식용으로 도축된 뒤 나오는 각막세포를 독성실험에 이용한다. 김배환 태평양기술연구원 박사는 “모든 실험에 대체실험을 도입하진 못했고, 10번의 실험이 있다면 9번을 대체실험으로, 나머지 1번을 동물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횟수를 줄인다”고 말했다.

식약청은 대체시험법 확립을 위한 준비에 서두르고 있다. 식약청 산하 국립독성연구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독성시험 가이드라인에서 인증한 대체실험법을 도입해 시험해보고 있다. 또한 화장품 안전성 인증에 필수적인 피부감작성 시험에 대한 대체시험법을 2009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독성연구원의 이종권 박사는 “화장품 안전성 평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며 “국내 연구 인프라가 취약해 다수의 기업연구소와 대학이 연계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유럽에 비해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본은 국가기관도 만들었다”

[인터뷰_ 야수오 오노 박사]

각 기관과 기업에 동물실험위, 대안연구 지원하는 검증센터도


일본은 동물 대체실험 연구 역사가 긴 편이다. 2006년 8월에는 세계 동물실험 대체법 연구자들이 모이는 ‘제6차 생명과학에서의 동물이용과 대체법에 관한 세계 과학자 회의’를 개최한다. 한국 과학계에 이 회의를 홍보하러 1월20일 서울에 찾아온 제6차 회의 의장인 야수오 오노 박사에게 일본의 대체연구 현황을 들어봤다. 국립 식품의약품위생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일본 대체실험법 연구회 대표를 지냈다.

일본의 동물실험 실태는.

=예전엔 일본에서도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동물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대해선 안 된다. 이를테면 중추신경계 관련 약물의 안전성을 검증할 때, 굳이 영장류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배양세포에서 검사해도 충분하다. 또한 될 수 있으면 하등동물을 쓰고, 동물실험을 할 수밖에 없을 때는 마취약을 쓰는 등 고통을 경감시켜야 한다. 대체실험법학회는 그런 실험을 연구 개발하고, 과학자들에게 교육하는 단체다. 1982년 대체실험법 연구회로 시작해 1990년 학회를 결성했고, 2002년에 일본 학술원 등록단체가 됐다. 현재 330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동물실험에 대한 국가적 규제가 있나.

=일본에선 각 기관과 기업에 동물실험위원회가 설치된 뒤, 그런 경향이 줄었다. 대학은 문부성 규정에 따라 동물실험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기업에는 권고사항이다. 최근에는 ‘동물애호와 관리에 관한 법’ 안에 3R 법칙이 명시됐다. 여기서 3R 중에 실험 개체 감소(reduction)과 대체법 활용(replacement)은 권고사항이지만, 고통 감소(refinement)는 의무사항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된다.

대체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일본의 경우 최근까지도 대안 연구를 지원·관리하는 담당기관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대체실험법을 인증하는 일본대체실험검증센터(JACVAM)라는 기관이 생겼다. 관련 예산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체실험이 생명윤리 논란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겠지만, 과학적으로 타당한가. 특히 독성물질을 동물에게 시험하지 않고 내놓을 때, 일반인이 두려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현대에 들어와 엄청나게 많은 화학물질이 합성되고 의약품이 탄생하고 있다. 특히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많이 나오고 있다. 다이옥신을 보라. 각 동물에 투여됐을 때, 동물의 희생도 크고, 주변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다. 대체연구는 이런 위험성을 줄인다. 동물을 이용하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 이런 점에서 대체실험이 강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동물실험이 인간에게 똑같은 결과를 내오지 않는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동물에게 독약이 된다고 해서, 인간에게 독약이 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동물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물질도,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럴 경우 배양세포를 이용해 연구함으로써 독성이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찬찬히 연구하는 편이 낫다.



동물 수를 최대한 줄여라

화장품 대체시험법은 국제적 수준에 비추어 어디까지 왔나

국내에서 개발된 화장품은 ‘기능성 화장품 등 심사에 관한 규정’에 따라 독성시험 결과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제출해야 한다. 신원료의 경우 △일회 투여 독성 시험(LD50) △1차 피부자극 시험 △광독성 시험 △피부감작성(알레르기) 시험 △안점막 자극 시험 등을 거쳐야 한다. 이들 시험에서는 모두 동물이 이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화장품에 대한 동물 대체실험법을 하나둘씩 제시하고 있다. 일회 투여 독성시험은 어린이가 화장품을 예기치 않게 먹게 될 경우 전신에 나타나는 독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 다수의 동물에게 독성물질을 투여해 50%가 치사량에 이르는 수치(LD50)를 구한다. 그러나 ‘OECD 독성시험 가이드라인’이 제시한 대체시험법은 LD50치를 구하지 않고, 동물 수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1차 피부자극 시험은 화장품이 피부에 발라졌을 때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홍반이나 부종을 판단하는 데 이용된다. OECD는 인공피부를 이용한 시험법 등을 채택하고 있다.

광독성 시험은 화장 뒤 빛에 노출됐을 때 생길 수 있는 홍반·부종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다수의 기니피그가 실험동물로 이용된다. OECD는 2004년 4월 마우스 유래의 섬유아세포인 3T3 세포의 변이 여부를 조사하는 ‘3T3 NRU 대체 시험법’을 채택했다.

피부 감작성 시험은 다수의 기니피그의 털을 밀어내고 신원료를 바른 뒤, 3주 동안 알레르기 여부를 지켜보는 방식이다. 반면 OECD가 채택한 대체시험은 국소 임파절 반응법(LLNA)인데, 이는 소수의 마우스의 귀에 신원료를 바른 뒤 6일째 귀의 림프절을 떼어내 세포 증식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실험에 들어가는 동물 개체 수와 고통 지속 기간을 줄이지만, 실험 뒤 방사선을 쬐어 결과를 산출해야 하기 때문에 폐기물 처리 문제가 뒤따른다.

국립독성연구원은 2002년부터 피부 감작성 시험에 대한 대체법을 연구하고 있다. OECD가 채택한 국소 임파절 반응법을 이용하되, 방사선을 쬐지 않는 방법을 2009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박귀례 면역독성팀장은 “방사선 사용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대형 연구기관 외에는 이 시험법을 이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화장품 대체시험법은 동물의 완전 대체 수준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동물 수와 고통을 줄이고 실험 기간을 짧게 하는 것도 많다. 박 팀장은 “과학기술 여건상 아직까지 완전 대체는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