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재생에너지 자원으로 수소에너지의 세계적 흐름과 비전을 주도하는 아이슬란드 현지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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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사이의 북대서양에 자리잡은 섬나라 아이슬란드. 우리에게 아이슬란드는 영화 <프리 윌리>의 주인공 범고래 ‘케이코’의 고향으로 바이킹의 후예들이 사는 나라 정도로 기억된다. 한반도 남쪽 땅보다 넓은 10만㎢에 빙하와 화산이 뒤섞인 아이슬란드의 전체 인구는 고작 우리 나라 중소도시 규모인 29만여명이다. 이렇게 극지의 한파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슬란드가 새로운 에너지 문명의 싹을 틔우고 있다. 북반구의 쿠웨이트를 꿈꾸며 ‘수소경제’(Hydrogen Economy)를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서 수소를 재발견하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 아이슬란드
정부는 레이캬비크의 모든 대중교통 버스를 내년까지 수소 연료전지 차량으로 바꿀 예정이다. 레이캬비크 시내를 운행하는 수소 연료전지 버스가
충전소에 정차해 있다. 레이캬비크 수소 충전소에 있는 수소 주입 기구가 자물쇠로 잠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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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를 몰아내버려라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의 60%인 18만명가량이 거주하는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앞으로 다가올 수소경제의 실상을 체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소경제의 수장국이 되려는 아이슬란드의 야심이 속절없는 바람으로 느껴질 정도다. 아이슬란드 전역을 누비는 10만여대의 승용차 가운데 수소연료 승용차는 단 한대도 없다. 기껏해야 수소 연료전지 버스가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대중교통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하지만 일단의 학자들이 1970년에 30년 계획의 수소 개발 계획을 수립한 이래 시시각각 다가오는 수소경제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 레이캬비크
시가지에 승용차들이 주차돼 있다. 이들은 모두 화석연료로 운행된다. (사진/ 김수병
기자) |
지난 1999년 아이슬란드 정부는 ‘아이슬랜딕 뉴에너지’(당시 회사 이름은 ‘아이슬란드 수소연료전지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정부 지분이 51%이고 나머지는 다임러크라이슬러·셸 오일·노르스크 하이드로 등 세계적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다.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던 아이슬란드의 수소경제가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나면서 거대 기업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아이슬란드가 수소에너지 기술의 선진국은 아니다. 아이슬랜딕 뉴에너지의 환경 간사 힐도르 마크는 “수소에 관한 기술을 보려 한다면 미국이나 일본 등지를 찾아야 한다. 아이슬란드는 정부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수소경제를 위한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는 등 정책적 지원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다”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수소에너지 버스만 해도 레이캬비크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유럽연합은 연료전지 버스를 9개 도시(마드리드·바르셀로나·암스테르담·함부르크 등)에서 운행하는 ‘CUTE’(Clean Urban Transport For Europe)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연료전지 자동차 의무판매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전세계에 수소에너지 충전소도 87개나 있다. 세계적 자동차 회사들도 수소연료 차량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수소에 관한 사회경제적인 의미에서 말한다면 아이슬란드는 수소경제의 작은 시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슬란드는 ‘수소경제를 위한 국제협력 파트너십’(IPHE)의 의장국으로서 수소에너지에 관한 세계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마치 아이슬란드를 통하지 않으면 수소경제에 다가서지 못할 태세다.
정말로 레이캬비크는 수소경제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화석연료가 필요 없는 나라를 일구려는 아이슬란드의 비전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여전히 세계를 뒤흔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해 ‘오일쇼크’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화석연료를 레이캬비크에서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대신 우주를 뒤덮고 있는 수소로 사회경제 시스템을 실현하려고 한다. 발게르뒤르 스베리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에너지부 장관은 수소에너지 정책에 대해 “궁극적으로 지구를 오염시키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 국제적 기반 조성을 지원하며 수소에너지에 관한 세금 지원과 수출입 관세 등의 정책까지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아이슬란드의 재생에너지 자원이 수소문명을 향한 야심찬 도전을 떠받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거대한 화산 제국이다. 16세기부터 아이슬란드 화산 분출량은 지구상 분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화산활동이 활발히 이뤄졌고, 화산활동으로 데워진 온천수가 지표면 곳곳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분출하고 있다. 레이캬비크를 벗어나면 곧바로 화산지대에서 피어오르는 커다란 수증기 기둥이 눈을 사로잡는다. 지열을 이용하는 곳곳의 발전소에서 몇백MW급의 전력을 생산하며 수십km에 이르는 지름 90cm의 파이프라인으로 섭씨 94도 안팎의 온수를 공급한다. 또 거대한 바트나 빙하를 비롯한 곳곳의 얼음지대와 화산 폭발로 깊게 잘린 계곡의 폭포 등을 이용해 수력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듯 아이슬란드는 천혜의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지열과 수력을 수소경제의 밑거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에너지 강국의 꿈이 하루아침에 나온 것은 아니다. 지금은 70살을 코앞에 둔 아이슬란드대학 화학자 부나기 아르나손이 수소경제의 씨앗을 뿌렸다. 그는 지열 전문가로 1970년대에 아이슬란드 전역의 온천수 위치를 파악해 지열 에너지 매장량을 밝혀냈다. 그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지열 에너지 잠재량은 연간 20TWh(테라와트시·1W의 전력을 1시간 동안 사용할 때 나오는 전기량의 1조배)나 되는데 실제로 생산하는 것은 7TWh/year에 지나지 않았다. 수력에너지는 거의 방치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재량(30TWh/year)의 5%도 채 되지 않는 1.4TWh/year만을 생산할 뿐이었다.
수소학자, 30년전 미치광이 소리를 듣다
지금은 전세계 수소경제의 대부 노릇을 하는 부나기 아르나손이지만 30여년 전의 그는 미치광이 소리를 들어야 했다. 화산활동에서 나오는 지열과 거센 강줄기를 이용한 수력 등을 이용해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자는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는 드물었다. 자연상태에 널려 있는 수소를 분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수소를 연료전지에 주입해 모터를 돌리면서 무공해 에너지원으로 이용하자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당해했다. 수소라면 우주계획에서나 이용하는 폭발력의 상징으로 여기는 탓이었다. 수소로 모터를 돌리면 소음도 없고 부산물로 물만 나오는데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수력발전을
이용하는 알루미늄 공장 인근의 흙이 죽어 있는 모습. |
그나마 1978년 부나기 아르나손이 아이슬란드대학에 수소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몇몇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요즘 수소경제의 전도사로 맹활약하는 아이슬란드 학자들이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이다. 현재 IPHE 회장을 맡고 있으며 지열로 수소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아이슬란드대학의 물리학자 토르스테인 지그퍼슨은 수소의 재발견으로 아이슬란드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고 말한다. “아르나손은 아이슬란드의 자연조건을 이용할 수 있는 실증적 연구를 통해 에너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청정 에너지의 무한 공급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에너지 수입국 신세를 면치 못하는 아이슬란드에서 아르나손이 국가적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아이슬란드는 엄청난 에너지 소비국이다. 화석연료라 해봐야 한파에 쉽게 얼어붙는 토탄밖에 없기에 석탄을 수입해 주요 연료로 사용했다. 요즘은 연간 85만t의 석유를 수입해 국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38%를 충당하고 있다. 연간 5TWh의 에너지를 석탄과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차량 운행과 어선, 에너지 집약산업인 알루미늄 생산 등에 각각 3분의 1씩 쓰이고 있다. 사정이 이런 탓에 아이슬란드는 난방과 전력은 수력과 지열로 해결하면서도 국민 1인당 탄화수소 방출량이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마땅한 대체산업이 없는 탓에 갈수록 알루미늄 공장 굴뚝은 높아만 가고 있다.
△ 아이슬란드가 수소경제 부국을 꿈꾸는 것은 풍부한 천연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화산지역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물로 온수를 공급하고 전기를 만든다. |
하늘땅 에너지를 모으기만 하면 된다?
아이슬란드가 수소경제를 선언하고 레이캬비크가 ‘수소 벤처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이렇듯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나름대로 수소 생산 실험도 해왔다. 1950년대 후반부터 레이캬비크 근교의 국영 비료공장에서 수력발전에 의한 전기로 액화수소를 만들어 암모니아의 원료로 이용했다. 아이슬란드대학 수소연구소의 시규르도르 스테인도르손은 “대양 컨베이어 벨트와 화산대지, 대기 등이 1차 에너지 생산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는 에너지를 모으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조건은 화석연료 체계의 중동이 더 이상 부럽지 않다”면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체계를 이용하는 것만 남았다고 주장한다.
지난 1999년 아이슬란드 정부는 수소에너지 강국을 지향하는 ‘ECTOS(Ecological City Transport System)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레이캬비크는 수소도시를 향하며 2005년까지 대중교통 시스템을 수소로 바꿀 예정이다. 지금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수소 연료전지 버스 3대와 수소 충전소 한곳뿐이다. 버스 승객들도 차량에 물의 분자기호(H20)가 쓰인 것을 신기하게 여길 뿐 수소경제를 실감할 수 없다. 물을 산소와 수소로 쪼개면서 문을 열고 승차하면 된다. 수소에너지 버스라고 해서 특별히 승차감이 다른 것도 아니고 운행 속도가 느리거나 빠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용하게 수소경제가 시민들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 가정에
난방용 온수를 제공하는 23km의 파이프라인. |
현재 레이캬비크 시대를 운행하는 수소 연료전지 버스는 도심 외곽의 일반 주유소 옆에 있는 충전소에서 수소를 주입한다. 특별한 차량들이 수소 충전소를 이용한다는 선입견을 깨뜨리려는 것이다. 버스에 올라탄 뒤 차량에서 수소에너지 차량임을 확인하기는 힘들다. 압축 수소가 가스로 충전돼 차량의 지붕에 실리며 그 앞에 차량 발전소 구실을 하는 연료전지가 있다. 수소에너지 버스 운전기사 뢰그발더르는 “처음 도입된 수소에너지 버스를 운전해 기분이 좋다. 수소는 안전성이 확인된 속도로 5~6분에 걸쳐 주입한다. 한번 주입하면 220km를 가는데 충전 시기가 빠른 게 그다지 문제되지 않다. 아직까지 시내에서 최대 속력인 시속 80km까지 운행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사실 수소 연료전지 버스 3대는 거대한 시작의 첫걸음일 뿐이다. 버스 운행에 필요한 수소는 수력발전소에서 나오는 것이다. 수소에너지 생산은 차츰 지열발전소로 확대될 예정이다. 내연기관보다 효율이 높은 연료전지가 잇따라 등장해 수소에너지 차량이 버스에서 승용차로 확대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는 디젤에 의존하는 선박에도 연료전지가 장착될 예정이다. 일단 레이캬비크에서 운행되는 수소 연료전지 버스를 유럽연합의 도움을 받아 1천여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유럽연합은 레이캬비크 수소 연료전지 버스 도입에 285만 유로를 지원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대중교통 수단을 수소 연료전지 차량으로 바꾸는 데 모두 700만 유로가 들어갈 예정이다.
△ 아이슬란드는 지열·수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력으로 수소를 만들려고 한다. 지열발전소에서 레이캬비크 일대로
전력을 공급하는 선로. |
물론 아이슬란드의 재생 가능한 천연에너지가 수소경제에 활용되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온실가스 방출량 제로가 되는 것은 아이슬란드의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수소경제의 소프트웨어 구실을 하는 수소에너지 자동차 모델에 관한 국제적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수소를 차량에 저장하는 방식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수소에너지 자동차에 관한 자체 기술력이 없는 아이슬란드로서는 수소경제의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근래에도 아이슬란드 정부는 거대한 빙하 유역인 카란주카 일대 57㎢에 690MW급의 발전설비를 건설해 연간 4600GWh의 전력을 생산하기로 했다. 언제 눈앞에 펼쳐질지 모르는 수소에너지 체계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환경단체 회원들의 시위에도 직면
하지만 수소경제로 나아가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수소 연료전지 버스 1년 동안 불안을 경험하기도 했다. 수소연료 주입구가 돌출되는 사고도 발생했고 냉각관 이상으로 차량 내부에 냄새가 퍼져 승객이 대피한 일도 있다. 게다가 환경단체는 거대 수력발전소 건립으로 생태계가 멍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IPHE 운영위원회가 열린 레이캬비크 국립 문화원 앞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이색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자연의 친구들’ 회원인 페토르 소르라이프손은 “수소에너지를 내세워 무작정 댐을 건설하는 것은 반대한다. 카란주카만 해도 미국의 알루미늄 제조업체 알코아사와 계약을 맺는 등 알루미늄 공장을 위한 것이라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금 레이캬비크 시민들은 수소경제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수소에너지 주입에 따른 미확인 위험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민의 90%는 수소 연료전지 버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버스 도입 이전의 수소경제에 대한 지지보다 30%가량 높아진 수치다. 이젠 수소경제를 미래의 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척박한 자연환경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자리잡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수소를 수출하는 차세대 에너지 강국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 관광과 어업과 알루미늄 산업에 의존하는 경제의 기틀을 바꿀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아이슬란드는 어떤 나라도 시도하지 않은 수소경제 강대국을 향하며 경제와 환경, 에너지 등을 둘러싼 ‘트라이레마’(Trilemma)를 극복하려고 한다.
협찬/ 한국과학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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