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나눔의 기쁨] |
‘탐욕 열차’서 내려 나눔의 바다로 |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상임이사 … “나눔의 마음, 성공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습관” |
그는 더 늦기 전에 삶의 태도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91년 8월, 한창 물 오른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박 변호사는 그곳에서 처음 서구의 발달한 기부문화를 접했다. “신문에 기부금을 모은다는 광고가 심심치 않게 실리더군요. 또 ‘영국 국민의 73%가 매년 1회 이상 기부에 참여한다’는 등의 기사가 눈에 띄기도 하고요. ‘아,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때부터 손 닿는 대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죠.” 영국 유학 후 이어진 미국 하버드대학 객원연구원 생활은 기부에 대한 그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어느 날 대학신문에서 도로시 파커라는 소설가가 쓴 칼럼을 읽게 됐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은 뒤 ‘그것은 바로 체크 엔클로즈드(check enclosed)’란 답을 내놓았더군요. 우리말로 옮기면 ‘수표 동봉’ 정도가 될 텐데, 기부금이 들어 있다는 뜻이죠.” 서울 가회동 아름다운재단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이 칼럼을 비롯한 각종 기부 관련 자료들을 꼼꼼히 정리해놓은 스크랩북이 아직도 남아 있다. 93년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박 변호사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집도 없고 차도 없었다.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명색이 변호사인 가장은 아내, 심지어는 딸아이에게까지 가끔 차비 빌려달라 손 벌리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그는 “막상 돈에서 자유로워지니 돈을 좇던 시절에는 맛볼 수 없던 마음의 여유를 벌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남편인 내가 잘 벌던 시절엔 분명 생각도 못했을 일에 자기 이름을 걸고 열심히 사는 아내와, 물려줄 것 하나 없으니 알아서 잘 커야 한다고 반협박하는 부모 덕에 어린 시절부터 자립심 하나는 확실하게 다져진 아이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공익과 자선 목적 재단법인 설립 기부문화 이끌어 박 변호사는 99년 다시 두 달간 미국에 머물며 현지 시민운동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패권주의의 상징으로만 생각해온 미국 사회 전역에 참으로 다양한 기부문화가 발달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공익과 자선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이 가진 놀라운 마력’은 그에게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재단법인 기금은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한번 들어온 기금은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좋은 목적에 쓰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 당연하고도 대단한 힘을 제대로 확인하고 온 셈입니다.” 2000년, 마침내 그는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함께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했다. 2002년부터는 상임이사로 재직하며 ‘1% 나눔 운동’ ‘아름다운 가게’ ‘나눔의 가게’ 등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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