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은 매카시즘의 흥분이 극에 달하던 1950년대 초반, 방송으로 이에 대항함으로써 사회적 광기를 잠재우는 결정적 기회를 만들었던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우’와 주변에서 그를 도왔던 CBS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권력과 명분을 위해서라면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무리한 책략에 힘을 쏟는 지도자들, 그리고 내가 속한 우리만의 안위를 위해 맹목적으로 동조하며 휩쓸리게 되는 대중의 집단적 최면을 정면으로 타파한 그들의 이야기는 용감한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는 교훈과 감동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먼저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를 솔직히 논한다면, 소재의 인지도가 갖는 매력보다는 각본과 감독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조지 클루니’의 인기일 것이다.
이미 TV시리즈 <이알(E.R.)>, <퍼펙트 스톰>, <오션스 일레븐>을 통해 멋진 배우로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그의 연출가로서의 변신은 평소 이슈 만들기와 과장하기에 호들갑스러운 영화계의 특성상 더욱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될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예상보다 더욱 뜨겁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꽤 많은 후보지명과 수상을 일궈낸 그는 이 두 번째 연출작은 2006년 아카데미 주요 6개 부분 후보로까지 지명되면서 찬사의 방점을 찍으며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조지 클루니’의 재능이 호들갑 이상의 것임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포석은 영화의 내면적 구성에 있어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방송과 이에 대치되는 반론의 공방으로 형성된 당시 사건의 긴장과 생동감을 최대한 극화시키기 위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가족이나 사회적 시각 등을 최대한 배제한 채 방송 자체와 스튜디오의 현장 재현에 큰 힘을 쏟는다.
또, 영화 속에 사용된 인터뷰와 영상을 모두 당시의 실제 자료를 삽입함으로써 작품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기에 노력하기도 했다.
저력 있는 배우들의 호연도 단조로울 수 있었을 영화의 큰 에너지가 된다.
주연을 맡은 ‘머로우’ 역의 ‘데이빗 스트라던’은 80년대에 미국 독립영화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존 세일즈’ 감독의 작품에 단골출연 해왔는데, 국내에는 <돌로레스 클레이븐>,
‘조지 클루니’는 ‘머로우’의 단짝 PD이자 든든한 조력자인 ‘프레드 프렌들리’를 연기하고 있으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페트리시아 클락슨’, ‘프랭크 란젤라’, ‘제프 다니엘스’ 등 출중한 중견 연기자들이 적재적소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펼쳐 보인다.
영화 전반을 감싸고 있는 재즈 선율은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매력적인 ‘다이안 리브스’의 보컬이 두드러지는 삽입곡들은 편안한 음율과 이에 반하는 함의적 가사들로 마냥 고조될 수밖에 없는 영화의 긴장을 적절히 수축하고 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의 O.S.T.는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재즈 보컬상’을 수상하며 그 자체의 음악적 완성도를 인정받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최근의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까지 국민 전체를 공황상태로까지 몰고 갔던 황우석 박사와 MBC “PD수첩” 사건.
이 사건은 절대적이라 신뢰받고 추앙 받는 것, 그리고 다수가 유리하다고 생각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도전은커녕 의심하는 것조차 가치 없고, 발칙한 전복행위로까지 치부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란 점에서 영화가 재연하는 이야기와 많이 닮아있다. 크고 감당하기 어려울수록 더욱 차분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교훈은 진실로 이론과 바램일 수밖에 없을 뿐인가?
이 영화가 그 뛰어난 가치를 평가받는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보여지는 소재의 무게로 인해 되려 역으로 짊어질 수도 있었을 새로운 편견의 위태로움을 냉정하고 균형 잡힌 시선을 통해 극복한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논쟁과 사건의 기억들은 시간의 지혜가 어느 정도 옮고 그름의 선을 심판했다해도 여전히 한쪽에 의지한 일방적인 시선과 경향에만 집착한다면 또 다른 편견과 오해의 시작, 그 이상의 문제를 불러올 소지가 있다.
영화 후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방송국 동료직원 ‘조이 베르쉬바’는 잠자리에서 자신의 부인에게 낮게 질문한다.
“과연 우리가 굳게 믿고 주장하고 있는 게 진실일까?”
영화의 마지막은 방송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행된 ‘머로우’의 연설로 마무리된다.
그는 당시 이미 바보상자란 오명(?)을 듣고 있는 TV의 가치와 책임에 관하여 힘주어 역설하는데, 가치 있는 TV를 만들기 위해서는 TV를 활용하는 우리들이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많은 우리- 바로 시청자라는 이름의 보통의, 그리고 절대 다수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깨어있는 시청자들을 의식한 방송의 책임이란 결국 역으로 책임 있는 방송을 이끄는 깨어있는 시청자를 요구하는 말이기도 하니 말이다. 또 이는 비단 TV라는 매체에만 국한된 전제는 아닐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은 영화의 주인공이자 앵커인 ‘에드워드 머로우’가 자신의 프로 <씨 잇 나우(See It Now)>를 마무리할 때 매번 시청자들에게 던지던 클로징 멘트이다.
어느새 우리의 개별적 삶은 단순히 나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좌우되지 않는 현실이 되었다. 그 행보에 무수히 개입하는 사회라는 굴레와 타인과의 관계는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드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단순한 안녕을 넘어선 행운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통해서만 본다면 적어도 ‘머로우’는 그런 모두를 위한 행운의 단초를 용감히 실천한 사람이고, ‘조지 클루니’는 그 행운의 긍정적 여지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굿 나잇 앤 굿 럭 (Good Night, and Good Luck)
2005년/ 미국/ 93분/ 드라마
감독: 조지 클루니
출연: 데이빗 스트라던, 조지 클루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홈페이지: www.goodnight2006.com
개봉년월일: 2006.03.17.금
★★★★★★★★ (8.0/10)
출처 : 작은화실
글쓴이 : 독일병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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