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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2006이것만은 고치자]문화재 훼손하는 고궁내 촬영

입력 : 2006.02.05 (일) 19:40
[2006이것만은 고치자]문화재 훼손하는 고궁내 촬영
드라마 찍는다고 접착제 마구 붙이고…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끝 장면. 남자 주인공이 세계 각국어로 ‘사랑한다’고 쓴 종이 수백장을 덕수궁 돌담에 붙여 사랑을 고백한다. 이 장면은 “로맨틱한 해피엔딩”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그 흔적은 덕수궁에 고스란히 남았다. 드라마 제작사가 종이를 접착제로 붙였다 떼면서 돌담 곳곳을 손상한 것이다. 방송사는 사과하고 원상복구를 약속했지만 아직도 보수공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궁 내 방송·영화 촬영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KBS는 2000년 ‘왕과 비’를 찍으면서 창덕궁 인정전 마당에 위험천만한 LP가스통을 설치했고, MBC는 ‘국희’ 촬영 당시 병산서원 누각에서 기생파티를 연출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궁궐 내전은 출연진 탈의실로 전락하고 오래된 목조건물은 무거운 방송장비에 짓눌리기 일쑤다.

고궁 내 벌어지는 각종 행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04년 세계신문협회와 국제검사협회가 각각 창경궁과 경복궁에서 만찬을 벌였다. 목조건물 주변에 전열기가 설치되고 참석자들은 술판에 담배까지 피워댔다.

고궁 내 촬영·행사로 인한 문화재 훼손 지적은 일찍부터 나왔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2004년부터 문화재청에서 허가한 촬영·장소사용 허가는 88건. 거의 매주 1건의 촬영·행사가 이뤄진 셈이다. 문화재청은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허가 후 철저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문화유산 시민단체인 ‘한국의 재발견’ 최영환 대표는 “고궁 사용자들의 인식이 부족해 문화재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궁궐 본연의 기능과 무관한 행사는 제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궁과 문화재가 촬영 세트나 행사장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고궁은 모든 시민의 자산으로, 필요한 사람은 촬영세트를 만들고 연회·만찬은 전문시설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석호 기자 soko@seg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