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3기 방송위가 걱정되는 이유 |
황상재 한양대 교수·언론학 |
남귤북지(南橘北枳), 황허(黃河) 남쪽의 귤을 강북 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를 모델로 해서 김대중 정부 때 재탄생한 방송위원회가 바로 그 꼴이다. 2003년 새 방송법 제정으로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방송위원회는 KBS, MBC, EBS 이사 구성 및 사장 선임 같은 우리나라 방송계의 핵심 요직에 대한 인사는 물론이고, 방송사업자를 선정하는 일에서부터 광고 규제에 이르기까지 방송 전반에 걸쳐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방송 현안에 대처해온 그동안의 방송위원회 모습을 보면 늘어난 권한과 위상에 비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정책에 대한 소신과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탄핵방송 파동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내가 잘했니, 네가 잘했니 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도 정작 방송 주무부서인 방송위원회는 정치권, 방송사,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디지털 전환방식은 어떠했는가. 전문성도 부족한 상태에서 정보통신부 결정만 쳐다보다가 시민단체와 방송사들이 문제를 제기하니까 우왕좌왕하면서 4년이나 허송세월했다. 미국식 디지털방식을 채택한 것은 HD 방식의 기술적 우수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방송위원회는 슬그머니 지상파 4사에 한 달간 기존 디지털TV 채널(6㎒)에서 화질이 떨어지는 간이형 HD급에 3∼6개의 다채널을 방송하는 멀티모드 서비스(MMS) 시범방송을 허용했다. 도대체 어떤 경로로 이 같은 정책이 결정됐는지, 왜 정책이 바뀌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이다. 4개의 지상파 채널 중 3개가 공영방송 채널이라는 한국의 방송사들은 광고 수입을 올리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월드컵 올인 방송’을 했다. 월드컵 개최국인 독일보다 2배나 많다고 국회에서까지 문제가 됐지만 방송위원회가 어떤 조치를 취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방송위원회의 무소신과 무능력, 무책임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방송위원회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방송위원 선정방식을 보면 위원 9명 중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권을 갖고, 3명은 국회의장이 국회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해 추천한 자를 임명하며, 3명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추천 의뢰를 받아 국회의장이 추천한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정부와 정당 간 나눠먹기식 인선과정을 거쳐 선출된 방송위원들은 전문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인물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선출된 위원들이 힘 있는 방송사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 방송 사업에서의 공정한 경쟁 도모’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너무 순진한 것이 아닐까?
정파 성향 노골적 인물 추천 ... 공정성 훼손 불 보듯
그래도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다. 2기 방송위원 임기 만료가 50일 이상 지나도록 제3기 방송위원들 선임을 미루기에 옥동자를 낳기 위해 진통이 크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다. 아니, 더 악화된 것 같다. 아직 최종 결정이 남아 있지만 3기 위원들은 2기 위원들보다 더한 코드인사나 정파적 인물들로 채워질 것 같다. 이번 인선의 특징은 그동안 다양한 루트를 통해 자신의 정파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표명한 인물들이 대거 추천됐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들 방송위원들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분야에서는 자신을 추천한 정당을 위해 각자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힐 게 뻔하다. 반면 힘 있는 방송사업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정책은 차일피일 미루고, 그도 안 되면 목소리 큰 편이 이기는 정책이 계속 펼쳐지리라. 이런 방송위원회에 통신까지 합쳐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든다고 한다. 잘나가는 통신 산업까지 무소신, 무책임한 정책으로 망가질까 참으로 걱정된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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