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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8일 (금) 중앙일보-멀리 본 일본, 호주서 달러를 캐낸다

2006년 7월 28일 (금) 05:14   중앙일보

멀리 본 일본 … 호주서 달러를 캐낸다

[중앙일보 권혁주.서경호.심재우.임미진.조민근] 2003년 말 존 하워드 호주 총리가 한국에 왔다. 천연가스를 사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손을 저었다. 가스산업 구조개편이라는 발등의 불이 급했던 데다 시베리아 가스전을 노리고 있는 터였다.

그로부터 약 2년6개월 뒤인 2006년 7월, '천연가스를 구입할 수 없느냐'며 한국이 호주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신세가 됐다.


시베리아 가스 확보는 러시아의 에너지 국영화 조치로 물거품이 되다시피했다. 가스 광구 확보전에 한국가스공사가 뛰어들었지만 그새 가격은 2배로 훌쩍 뛰었다. 세계 각국이 호주를 상대로 천연가스 '구애 작전'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 확보가 시급한 한국전력도 호주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1990년대 한전은 호주에 3개 광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에 따라 광산 지분을 팔고 현지 사무소까지 폐쇄했다. 최근 다시 광산 투자에 나섰지만 가격도 비싼 데다 경쟁도 치열하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갑자기 팔고 나간 탓에 장기 투자를 원하는 호주 업체들이 한전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국 업체들이 다급하게 호주 자원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한발 늦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한 까닭에 호주 시장을 눈여겨보지 않았고, 그 사이에 가격은 비쌀 대로 비싸졌다. 호주 자원업계의 콧대도 높아져 한국이 좀처럼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70년대부터 시장을 선점한 일본은 오히려 자원 확보 붐을 즐기고 있다. 한국이 호주 광산 지분을 팔 때 일본 최대의 종합상사인 미쓰비시는 2001년 광물 메이저 BHP빌리톤과 50대 50으로 합작해 호주 최대의 석탄 회사이자 수출사인 BMA를 설립했다. 자원산업의 활황 덕에 지난해 미쓰비시의 순익은 92%나 늘었다. 현지 업체 관계자는 "미쓰비시가 생산하는 제철용 원료탄은 t당 생산원가가 30달러인데 판매 가격은 120달러"라며 "석탄이 아니라 돈을 캐는 셈"이라고 전했다. 미쓰비시 등 일본 상사들은 연합해 호주 최대 천연가스 공급사인 NWS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이 호주의 천연가스에 관심이 없을 때인 2000년, 중국은 일찌감치 25년간에 걸쳐 180억 달러어치의 천연가스를 들여오겠다는 계약을 했다. 바로 지난달 말에는 당시 계약한 첫 번째 천연가스 물량이 중국에 인도됐다.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가 중국으로 날아가 첫 공급을 축하했다.

중국은 막강한 '구매자 파워'를 기반으로 철광석 시장의 주도권도 잡았다. 지난해 호주가 중국으로 수출한 철광석은 58억 달러어치. 전년 대비 127% 늘었다. 우선문 포스코 호주법인 사장은 "내년부터는 철광석 수출가격 협상의 주도권이 신일본제철에서 중국의 바오산철강으로 넘어갈 것이 확실하다"고 전했다.

중국의 직접투자도 급속히 늘고 있다. 중국 최대 알루미늄 업체인 찰코는 30억 호주달러를 들여 퀸즐랜드주의 보크사이트 광산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 실현된다면 퀸즐랜드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광산 프로젝트다. 중국의 현지 투자는 규모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중국 구매단이 왔다 가면 마치 거대한 메뚜기떼가 훑고 지나간 듯하다"며 현지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다. 맬컴 크래머 퀸즐랜드주 천연자원부 부국장은 "새 광산이 개발되면 도로가 뚫리고 도시도 생겨나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던 내륙이 개발되는 효과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현재 진행 중인 자원 프로젝트만 90여 개. 사업타당성을 분석하고 있는 사업도 166건에 달한다. 90여 프로젝트에 투자될 금액이 340억 호주달러다. 프로젝트는 많지만 한국 기업에 돌아오는 기회는 적다. 유망 사업은 자원 메이저들이 독식하고 그나마 시장에 나오는 것도 대량 구매자인 일본.중국이 낚아간다.

한국은 정보.전문성에서 일본에 밀리고, 덩치에서는 중국에 밀리는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절실하다. 박경규 대한광업진흥공사 호주지사 대표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협력해 투자 규모를 키우고, 동시에 위험부담도 나눠 가지면서 호주 자원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시드니.리스고(호주)=특별취재팀

◆ 특별취재팀 : 아프리카=권혁주 기자, 중남미=서경호 기자, 유럽.중앙아시아=심재우 기자, 캐나다=임미진 기자(이상 경제부문), 호주=조민근 기자(국제부문)

woongjoo@joongang.co.kr ▶임미진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lazymi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