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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기부를 말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이 말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이 우리사회의 사각지대를 돌아볼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최근 의무와 책임을 더욱 강요받는 곳이 바로 기업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성장을 위해서만 달려왔다면 이제는 그 성장을 기반으로 나눔을 실천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사회공헌사업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 중인 기업의 기부문화를 진단해 본다.

기업의 사회공헌사업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이 하나의 경영방침으로 보편화 된 요즘 톡톡 튀는 아이디어 기부 가 등장하고 있다. 단순히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것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기업들의 기부활동을 소개한다.
교보생명 희망 장학금, “울타리가 되어드립니다”
교보생명은 만 18세가 되어 보육원 떠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희망 장학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공부해온 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 학비와 생활비 조달의 이중고를 겪는 보육시설 청소년에게 대학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사업도 운영 중이다. 이 밖에 보육원 출신 청소년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는 ‘희망과 다솜’ 자원봉사 캠프, 7해빗(habits)프로그램 등 이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2003년부터 수혜자를 점차 늘려 현재는 60여명에게 매년 2억~3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희망 장학생인 강해빈씨는 “대학에 갈 여건이 안 돼 걱정하던 중 희망장학금 덕분에 특수교육을 공부를 할 수 있게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희망 장학금’ 대상자는 연 1회 심사를 통해 선발, 1년 등록금 전액을 실비로 받는다.
한전 러브펀드, “월급에서 1000원씩만 모아도 충분”

2004년 한국경제신문 주최 사회공헌 기업대상을 수상한바 있는 한국전력은 사내 봉사단의 활동재원을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기금인 ‘러브 펀드’로 충당한다. 러브펀드란 전 직원을 대상으로 1계좌당 1000원씩 매월 급여에서 공제되는 방식으로 현재 임직원의 85%가 참여하고 있다. 1000원의 힘으로 연간 10억원의 모금을 조성하고 있다고. 이는 직원들의 자발적 가입으로 조성되는 만큼 기부문화를 일상에 뿌리내리고 기부의 기쁨과 즐거움도 배가 된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 임직원과 함께 회사도 모금액과 같은 액수의 후원금을 기부하는 ‘매칭그랜트’ 제도를 도입했다.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격려와 지원을 제도화하기위한 노력이다.
한전사회봉사단은 ‘세상에 빛을, 이웃에 사랑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 8000여명의 임직원으로 구성된 270개의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어려운 농촌을 돕기 위한 ‘1단1촌 자매결연’, 장애인 및 독거노인 대상 ‘건강관리 상담 및 지원’ 프로그램, ‘미아예방 캠페인’ 사업, 전기요금 납부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단전가정을 지원하는 ‘빛 한줄기 희망모금’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앞으로도 이들은 보편적 봉사활동의 지속적 전개와 함께 ‘장애인 및 거동불편 노인용 무선 전원 스위치 보급’ 등 특화된 사업도 계속 전개할 방침이다.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 활동이 우수한 직원에게는 회사차원의 지원제도도 마련할 계획이다.

롯데, 롯데복지재단 “외국인 노동자와 사랑 나눠요”
롯데그룹의 사회공헌사업을 실천하는 롯데복지재단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계기로 설립됐다. 당시 사고 희생자 중 필리핀 이주 노동자가 포함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신격호 회장의 뜻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외국인근로자를 중심으로, 외국인근로자 무료병원, 무료 진료소, 상담소 등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취업 중 산재 또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보상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쉼터 제공 등 간접적인 방법과, 각종 기자개를 지원하기도 한다. 라파엘 클리닉, 도티기념병원, 요셉의원,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 등 의료서비스와 무료진료소에 대한 의약품 지원도 함께 진행 중이다. 이밖에도 각종 장학금 지급을 통해 문화, 체육 시설이 열악한 학교에 시설지원, 벽지학교를 우선으로 한 첨단학습시설 및 교육기자재 지원, 학술 연구 활동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미개척 학문 발전에도 이바지 하고 있다.
기업 기부는 사회공헌실천인가, 홍보 전략인가
경제·경영서 저자들의 모임인 비비씨(BBC : Biz Book Writer's Club)에서 발간한 ‘경영의 최전선을 가다’에서는 ‘우리 사회도 이제는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계속해서 변화해 왔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 대기업들이 앞 다투어 벌이고 있는 사회공헌사업, 어떻게 볼 것인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홍보전략
장기불황 여파로 기업의 투자는 위축되고 있지만 최근 국내 대기업들의 사회공헌관련 기부 사업과 자원봉사 활동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이일운 경영사례 분석가는 ‘기업의 사회공헌 사례와 홍보전략’이라는 저서에서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은 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닌 기업 이미지 제고를 통한 경쟁력의 확보 차원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가격과 품질이 같다면 공익과 관련된 브랜드나 사회에 기여하는 회사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공익 피알 전문 컨설팅인 콘 커뮤니케이션즈가 기업의 공익연계마케팅(CRM)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가 사회공헌 활동을 실시한 기업에 대해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고 대답했다. 전제 응답자의 61%는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으로 구매 브랜드를 바꿀 용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전 세계에 90여개의 법인을 운영하는 삼성전자는 현지화를 달성하기 위한 마케팅 기법으로 사회공헌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기부행사를 벌이며 사회공헌도가 높을수록 브랜드 이미지가 높게 나타나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파이낸셜 타임즈가 실시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조사에서 삼성전자는 2002년, 처음 조사대상에 포함돼 42위를 기록했지만 2년 만인 2004년에는 3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현대차그룹은 해외 현지 경험을 통해 사회공헌사업이 경영의 성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 계열사별로 실시하던 각종 사회공헌 활동을 그룹차원으로 통합했다. 에스케이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기업별 사회봉사활동을 체계화 하고 이를 그룹 경영의 일부로 통합 운영하고 있다.
공익연계마케팅(CRM : Cause-Related Marketing) 기업이 공익을 내세워 활동하는 마케팅 방법. 비영리기관에 일정액을 기부함으로써 사회적 공익에 앞장서는 형태를 말한다. 1983년 미국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사가 처음 도입했다. 당시 자유의 여신상 복원 캠페인으로 회원들이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일정액을 적립해 170만 달러 기금 조성, 카드 사용액 27%증가, 신규가입자 10%증가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진짜 사회공헌 실천은 홍보보다 뒷전

기업들은 사회공헌사업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만큼 홍보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이일운 경영분석가는 ‘세부사항을 챙겨 전략적으로 홍보활동을 실시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기업의 기부활동이나 자원봉사를 광고에 적극 활용함으로서 이윤을 남기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은 지난 6월 판매자가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후원쇼핑’ 코너를 운영해 일부 상품 매출이 최고 20%까지 늘었다. 지에스(GS)홈쇼핑도 ‘100원의 큰사랑 축제’를 통해 구매 한 건당 100원씩 적립하는 행사를 벌여 평상시보다 주문 고객 수가 30%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사회공익단체 100여 곳과 ‘사이좋은 세상’ 행사를 시작한 싸이월드 역시 300 ∼1000원 하는 후원아이템 6500건을 판매하는 실적을 올린바 있다.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잠정적인 고객까지 확보하는 홍보효과를 달성한 셈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동시에 기업 이미지 제고에 따른 매출상승이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윈-윈전략이라는 평가가 팽배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회공헌활동이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이어지면서 기부 및 봉사활동이 광고를 위한 일회성에 그치거나, 실제로는 광고만큼의 ‘내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임직원을 중심으로 한 사회공헌사업의 경우,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지난해 한 주요 통신사는 임직원들이 불우한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되어주는 멘토링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기업광고에 적극 활용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직원은 30명으로, 주말마다 멘티 아이들과 문화 활동 등을 함께 해왔다. 한 봉사 참가자는 “기업차원의 공식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에도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멘토가 돼주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결심과 가족들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며 “봉사 참여자가 퇴사를 할 수도 있는 일이고,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재단에서는 이런 기업사회공헌의 결점을 감안해 나름대로 대비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중행사로 치러지는 양로원, 고아원 방문 등 기업 자원봉사 활동에서는 참여 여부를 상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연말 복지재단에 ‘김장 봉사’를 다녀온 S그룹의 한 사원은 “업무가 많다보니 좋은 일이지만 선뜻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며 “지원자가 없을 경우에는 상사지시에 따라 반 강제적으로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자발적인 참여’를 부각시키는 홍보 내용과는 현실적 괴리가 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사업과 기부문화 정착이 아직 미성숙 단계에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형우 (주)도움과 나눔 대표는 “(기업의 기부문화가 성숙한)미국의 카네기, 록펠러 재단 등은 기업의 이익이나 이미지, 활동과 무관하게 보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특히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설립자 빌 게이츠가 만든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MS사의 전략적 사회공헌과 일정한 거리를 가지고 움직인다”고 말했다.

홍가희 학생리포터 문경선 기자 babbl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