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민둥산 억새, 바람따라 이리 저리 쓸리는 [일간스포츠]
산에도 황금빛 들녘이 있었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2리 민둥산 정상. 해발 1119m의 그곳에는 바람에 따라 이리 쓸리고 저리 몰려가는 화려한 군무가 펼쳐지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우리 곁을 찾아오는 억새의 춤이다. 빠른 속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새하얀 ‘깃털’이 서산으로 넘어가는 석양빛을 받아 하루에 한 번씩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그래서 억새의 군무는 해질녘이 가장 아름답다. 38번 국도를 이용해 영월을 지나 정선으로 접어든 후 태백 방향으로 가다 증산에 이르면 민둥산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만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철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지나면 곧바로 민둥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다. 봄·여름·겨울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썰렁함마저 감도는 민둥산은 억새가 피는 가을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해만도 억새를 보기 위해 50만 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이젠 가을 등산의 명소가 됐다. 매표소를 지나면 등산의 시작이다. 길이 완만하고 흙으로 덮여 있어 산책을 나선 느낌이다. 산의 이름과 달리 숲은 울창하다. 석양을 보기 위해 느지막이 산행을 시작한 탓인지 오후 4시를 조금 넘겼는데도 등산로 주변은 벌써부터 어둑어둑하다. 가파른 등산로가 있으나 많은 사람을 위해 지그재그식으로 길을 내 쉬엄쉬엄 오르면 누구라도 정상에 오르기에는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정상까지 계속 오르기만을 요구한다. 빠른 걸음이 아니라면 최소한 두 시간 이상 투자해야 한다. 한 시간쯤 오르면 콘크리트 포장 도로가 앞을 가로지른다.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곤 차량이 들어올 수 있는 곳으로 커피나 컵라면 등을 파는 노점상이 있어 반갑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기를 한 시간 여. 억새 몇 송이가 나무 사이에서 얼굴을 드러낸다. 가을 손님을 맞는 전령 같다. 이윽고 고개를 넘자 온통 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사람 키보다 큰 억새는 이제 막 피어나고 있다. 성급한 놈들은 솜뭉치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달 중순이면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햇빛에 반사되는 억새의 새하얀 빛깔은 화려한 듯하지만 어찌 보면 머리가 하얗게 센 우리 할머니의 뒷모습 같아 마음이 무겁다.끝없이 펼쳐지는 장관에 취해 걷다 보니 드디어 정상이다. 멀리 두위봉·함백산·가리왕산 등 태백 준령이 파노라마처렴 이어진다. 사방을 돌아봐도 아름다운 우리 산하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불현듯 ‘엉뚱한’ 생각이 스쳐간다. 비록 가을 한 달 억새를 앞세워 생명을 유지하지만 이만한 아름다움에 견줄 곳이 또 있을까. 게다가 주변의 풍광까지 배경으로 삼으니 이런 산이야말로 명산이 아닌가 하는 ….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낯선 여인의 손길처럼 옷속을 파고들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낸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서 “와”하는 탄성이 상념을 털어낸다.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주보기를 거부하듯 강렬한 빛을 내뿜던 태양은 하루의 일과를 마쳤다는 신호인 양 붉디 붉은 색으로 얼굴을 바꾼다. 덩달아 하늘도 홍조를 띠고 이를 배경으로 억새도 옷을 갈아입고 있다. 불과 10여 분. 해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노을을 배경으로 억새를 향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 대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구름으로 커튼을 만들어 해를 가리고 만다. 해는 내일을 기약하고.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빨리 암흑 속으로 파고든다. 소리 없이 주위를 뒤덮은 어둠은 빨리 자신의 영역에서 나가라고 떠밀고 있었다. ■원래 이름은 한치뒷산 정상을 중심으로 30만여 평에 참억새밭을 이루고 있는 민둥산의 원래 이름은 한치뒷산이라고 한다. 정선아리랑의 “한치뒷산의 곤드래 딱주기/님의 맛만 같다면/올 같은 흉년에도 봄과 난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주오”에서 나오는 한치뒷산이 바로 민둥산이다. 한치뒷산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예전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하나의 봉우리였다. 하지만 억새로 유명세를 타면서 이젠 민둥산이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게 됐다. 민둥산에는 곤드레 등 나물이 많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나물이 더 잘 자라게 하기 위해 화전민들이 봉우리에 불을 냈고. 결국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것이 오히려 억새의 성장 환경을 돕게 됐고. 이젠 억새 세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가는 길 중앙고속국도 제천IC에서 나온 후 38번 국도를 이용해 태백 방면으로 지나 약 1시간 정도 가면 된다. 제천에서 영월까지는 4차선 도로가 뚫려 있고. 태백까지는 오는 2009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서울 청량리역에서 증산역으로 가는 영동선 열차를 타면 된다. 오전 8시부터 대체로 2시간 간격으로 열차가 떠난다. 평일에는 6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2편이 증편돼 모두 8편 있다. 대부분 무궁화호 열차로 3시간 54분 걸린다. 1544-7788. 철도역에서 증산초등학교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 증산초등학교에서 정상까지는 4㎞ 정도로 2시간 조금 더 걸린다. 자가용이나 기차가 불편할 경우 여행 상품을 이용해도 된다. 우리테마투어(www.wrtour.com)는 오는 14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매주 수·토·일요일 당일 일정으로 민둥산 산행을 떠난다. 3만 5000원. 02-733-0882. 정선=글·사진 박상언 기자 [separk@ilga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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