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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스크랩] [은퇴이민 Ⅲ] 일본 사례

뉴스: [은퇴이민 Ⅲ] 일본 사례
출처: 주간조선 2006.11.14 11:34
출처 :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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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민 Ⅲ] 일본 사례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83세다. 세계 최장수국이다. 절제된 식습관과 생활습관으로 1947년 50세에서 비약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샐러리맨 생활을 마쳐야 할 정년(停年)은 예나 지금이나 60세다. 정년 후 23년이나 인생이 더 남은 것이다.

예전에 문제는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에 국한됐다. 인생의 의미에 관한 질문이다. 나라가 돈이 많아 노인에게 연금, 의료혜택을 풍부하게 제공할 때 얘기다. 하지만 15년 불황을 겪고 나라 빚 850조엔을 짊어진 일본은 더 이상 풍부한 혜택을 제공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 일본 노인은 “뭘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존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기자가 이용하는 도쿄 가야바초 지하철역 옆 편의점에 언제부턴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1명 늘었다. 머리가 하얀 노인이다. 아직 수습을 못 벗어나 카운터에서 계산은 못하고 편의점 청소를 도맡아 한다. 청소를 하다가 손님 물건 고르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해했다 싶으면 허리를 굽혀 “미안합니다”를 반복한다. 그 모습을 보면 일본도 살기 힘든 나라가 됐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기자가 가끔 들르는 도쿄 간다의 고기덮밥집 ‘요시노야’에서도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가 노인이다. 빠른 동작,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같은 절도(節度)가 젊은 종업원에 뒤지지 않는다. 지하철역 근방 가야바초 ‘요시노야’ 종업원 중 1명이 피부색이 검은 외국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일본 노인의 처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정규직으로 흡수되는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터를 빠르게 채워나가는 것이, 정년이 지난 노인이다.

일본 노인은 노후에 주로 저금과 연금에 의지해 생활한다. 물론 현역 시절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는 풍부한 저금을 한 사람은 현역 시절보다 노후에 훨씬 풍요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금만으로 생활해야 하는 사람 상당수는 늙어서도 일을 하든가, 물가가 싼 나라에서 살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은퇴 후 해외 거주가 행복한 선택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은 올해 초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에 소개된 사례다.

말레이시아 페낭섬. 39층 맨션에서 마쓰나가 지아키(63)씨가 독신 생활을 시작한 것은 1년 전. “할 수 있다면 계속 이곳에서 살고 싶어요. 골프도 시작했어요.” 다니던 회사에서 58세에 정리해고, 예전에 남편과 사별, 정리해고 후 3년 반 동안 홈 헬퍼(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는 장애·노인 등을 돌보기 위해 파견되는 가정 봉사원)를 했지만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로 포기, 연금은 월 13만엔….’

물가가 많이 내렸다고 하지만 월 13만엔(약 104만원)으로 일본에서 생활하기는 힘들다. 한국에서도 생활하기 힘든 금액이다. 이런 마쓰나가씨에게 노후의 편안한 보금자리를 제공해준 나라는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일본에서보다 2배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선전 문구로 일본 정년 퇴직자들을 불러들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마쓰나가씨. 4인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3LDK(방 3개, 거실, 부엌)를 구했다. 임대료는 월 4만8000엔(38만여원). 일본에서 1LDK를 구하기도 힘든 금액이다. 주로 밖에서 사먹는 식비는 월 2만엔(약 16만원). 10만엔(약 80만원) 정도면 한 달을 지낼 수 있다.

말년에 보금자리를 태국으로 선택한 71세 회사원 출신 노인은 연금이 월 10만엔 수준이었다. 구청에서 소개받은 ‘노인 홈’은 2인1실. 밤에는 외출도 할 수 없다. 고민 끝에 일본 생활을 단념하고 태국행. 현재 집세는 월 2만1000엔(16만여원)이라고 한다.

이런 형태의 이민을 일본에선 ‘연금 이민’이라고 한다. 행복한 이민이 아니다. 연금을 가지곤 일본에서 살기 힘들어 일본보다 물가가 싼 동남아시아를 선택하는 이민을 말한다.

도쿄= 선우정 조선일보 특파원 s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