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의 개방성 유연성 불확정성을 진리의 특성으로 본 것이다. 규격성과 통일성을 중시하는 게 남성적인 것이라면 비정형성과 다양성에 대한 수용은 여성적인 것이다. 미리 만들어진 틀 속에 대상을 집어넣으려는 것이 남성적이라면 대상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것은 여성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가부장적 세계관에 입각한 근대성이 잉태하고 있는 문제점들의 극복 수단으로 이런 여성적 특성의 중요성을 말한다. 현대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체제적 변화를 설명하는 유효한 해석 중의 하나다.
뉴스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니체의 관점을 따른다면 “미래의 저널리즘은 여성일 것이다”라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과거 전통적 뉴스가 규격화돼 있고 통일성을 추구하는 남성적인 것이었다면 미래의 저널리즘은 좀 더 비정형적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여성적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객관적 보도만이 진실이라는 단선적 사고를 넘은, 주관성의 인정과 주관성 간의 상호 소통을 통해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이 새로운 저널리즘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연설 저널리즘이 아니라 지인들 간의 커피숍 대화, 응접실 대화와 같은 것이 미래의 저널리즘이다.
대화에서는 꼭 따라야 할 형식이 없다. 해야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의 구분도 엄격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재미도 있고 이해하기도 쉽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긍정에는 이런 대화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함으로써 자연스레 진실을 드러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최근 자료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과거보다 뉴스를 덜 읽고 덜 보고 있다고 한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 욕구가 줄어들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수세기 동안 뉴스메이커들은 공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정보의 내용과 형식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결과가 근대적 의미의 뉴스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미 해체되어 버린 가부장적 권위 위에 안쓰럽게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뉴스가 부담스러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오랜 기간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풀어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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