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콘텐츠의 글로벌형 포맷과 해외 수출 전략
박 재 복 MBC 글로벌사업본부 차장
해외 수출을 통한 제작비 회수 시대
방송 콘텐츠의 해외 수출은 많이 알려진 것처럼 경제 외적인 부대효과가 금전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는 점에서도 묘미가 있지만, ‘연간수출 1억 달러’대를 넘어서면서 이제 수출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직접적인 경제적 가치도 결코 적지 않다. 왜냐하면 방송 콘텐츠 상품은 상품특성상 해외 수출을 위해 들어가는 추가 비용이 거의 10%를 밑돌 정도로 미미하고 마진율은 90%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마진율이 한자릿 수에 머무는 일반상품 수출과 대비해서 본다면 일반상품 수출 몇 백억 달러에 견줄 만하다고 할 것이다.
일부 킬러 콘텐츠급의 경우 에피소드당 단위 수출액이 20만 달러(한화 기준 2억 원)를 넘어서는 작품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어서, 직접제작비를 기준으로 60% 이상을 해외수출을 통해 회수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더러는 제작비의 2~3배를 해외에서 회수하는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는 내수시장 규모가 작다는 근본적인 취약점과 한계를 가진 우리의 운명적 상황에서 보면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니며,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근본적인 틀을 한 단계 레벨업 시킬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드라마 중 해외수출이 활발히 이루어진 몇몇 작품은 직접제작비를 기준으로 볼 때 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회수하는 사례가 다수 나오고 있고, 드라마 「겨울연가」처럼 특정 몇몇 작품은 해외에서 제작비 전액 혹은 10배에 가까운 수익을 창출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이나 「신입사원」의 경우 각각 직접 제작비의 두 배 혹은 그 이상을 해외수출에서 회수하고 있고, 퓨전사극 「대장금」의 경우도 사극류가 현대 멜로물에 비해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높고 수출도 어렵다는 이중의 핸디캡을 딛고 세계 40개 국 이상의 지역에 수출되면서 수출액이 총액기준으로 600만 달러(한화기준 60억 원)에 육박하면서 제작비의 90% 이상을 해외수출에서 회수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또한, 드라마 「겨울연가」는 언론에 알려진 국내외 매출실적을 집계하면 특히 일본지역에서의 이례적인 대히트에 힘입어 대략 직접제작비의 1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추세는 한류열풍이 지속되고 있는 중에 수출지역이나 권리범위가 점점 다양해지고 수출계약 금액 측면에서도 단위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적극 반영하여 최근에는 외주제작사를 중심으로 아예 해외시장에서 상당 수준의 자금을 유치하거나 선판매하여 지극히 국내 중심이던 수익구조를 나라 밖으로 돌려서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킬러콘텐츠가 중요하다
여기서 또 하나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주제 중 하나로 국제경쟁력을 가진 킬러콘텐츠의 제작역량이 승부의 관건이 된다는 산업특성이다. 주지하듯이 방송콘텐츠를 포함한 문화적 상품은 ‘승자독식’ 혹은 극단적인 ‘80대20’룰이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같은 콘텐츠 상품의 특성은 국내 시장이든 글로벌 무대든 차별없이 적용되어 수출전선에서도 킬러콘텐츠급 몇몇 작품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2005년의 경우에도 수출액 1억 2천만 달러가 넘어설 정도의 금자탑을 이루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킬러콘텐츠로는 MBC의 드라마 「대장금」 「내이름은 김삼순」 「신입사원」, KBS의 「겨울연가」 「풀하우스」 「해신」 그리고 SBS의 「천국의 계단」 「올인」 등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킬러콘텐츠급들은 단일 작품의 수출액이 평균 300만 달러(한화 기준 30억 원)대를 넘어서고 있고 특정 몇몇 작품은 600만 달러를 넘어서 2천만 달러에 이르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과연 이 같은 방식의 투자패턴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협소한 국내시장의 틀에서 벗어나 글로벌 무대에서 해답을 찾는 노력을 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얼마든지 방법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일본과 중화권이 우리의 공동노력을 위한 파트너로 등장하고 싶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화권에 대한 선판매(Pre-sale)방식의 참여만 확보해도 전체 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부담하고 제작관련 위험을 분산시키는 구조가 가능한 상황에 이미 진입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드라마 「풀하우스」나 「슬픈연가」의 경우를 살펴보면 제작단계에서부터 대만, 일본 등으로부터 선판매 방식에 기반한 선투자를 확보하여 안정적으로 대형 프로젝트 제작역량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방송산업분야도 더 이상 내수시장에 매달려 독야청청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르별 상품특성을 비교한다면 영화가 홈런을 노린 투기적 성격이 강한 상품이라고 한다면 드라마 같은 방송콘텐츠는 착실하게 안타 위주로 점수를 뽑아내는 저위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점에서 보면 최근 우리나라 문화산업 부문의 투자패턴이나 전문펀드의 선택은 균형감각 없이 지나치게 영화부문에 편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마치 “아프리카 얼룩말떼 중 한 마리가 오판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결국엔 거의 전체가 이유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달리기 시작해서 결국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떼죽음을 당한다”는 웃지못할 상황이 우리 주변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관련업계뿐만 아니라 정부관련 기관 심지어 언론마저도 사업성이나 파급효과 등에 관계없이 영화에 함몰돼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미래를 탄탄히 다지기 위해서는 적정한 투자효과 분석 작업을 통해 균형감각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경쟁력있는 방송 콘텐츠의 포맷
궁극적으로 드라마 같은 감성 상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킬 수 있어야 비로소 가치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그 시작은 감동을 주는 스토리를 개발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문화 전쟁에서 우위에 설 만큼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별처럼 빛나는 스타 연기자들을 많이 발굴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감칠맛 나고 탄탄한 구조의 시나리오를 창작해 내는 역량있는 작가와 영상 언어를 풀어가는 표현감각을 갖춘 연출자를 육성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수출 상품들이 즐비할 것 같지만 지금도 수출 현장에서는 ‘당당하게 시장에 내놓고 소개할 만한 고품질의 킬러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온다.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적 지원이나 관련 연구들의 관점이 공급은 제처두고 천편일률적으로 마케팅과 홍보에만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방송 콘텐츠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시아권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정’과 ‘한’을 바탕으로 내용이 깊이를 더하고 지리적 근접성과 문화적 유사성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이 이야깃거리를 찾아 세계 곳곳을 헤매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들이 이미 창작해놓은 이야기를 흉내내거나 베껴쓰는 방식으로는 세계 정상을 넘보기가 힘들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 동안 다듬어 온 여러 가지 신화나 전설 등을 발굴해서 훌륭한 콘텐츠로 창조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글로벌 시대에 수출용 콘텐츠의 포맷은 시장 조사나 바이어 상담 등을 통해 수렴된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대략적인 표준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우선 장르 면에서는 드라마가 전체 수출액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궁극적으로 월드 메이저로 도약하기에는 문화적 할인율이 낮아 전략 상품으로서 역할이 기대되는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 및 육성 전략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효자 상품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드라마 부문을 축소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주제와 내용 면에서는 인류 공통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살펴서 일차적으로 보편성을 확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 민족 특유의 멋을 살리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출연자는 초기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기존의 한류 스타들에게 어느 정도 기대는 전략이 유효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소수의 특정 연기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태도는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외에도 방송 콘텐츠는 상대국의 편성 패턴이나 수입규제 정책 역시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는데, 예컨대 중국의 경우 수입쿼터가 연간 20시간 단위로 운용된다는 점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방송 콘텐츠의 수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디지털화에 따른 신규 매체의 출현과 매체 융합 등 시대적 조류에 부합하는 새로운 포맷을 창출하려는 노력도 심도깊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고어가 주도하는 신규 매체에서 모든 콘텐츠의 길이를 2~7분 안팎에 제작하기로 결정했다는 외신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상물의 시청과 관련하여 현대인의 호흡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생활의 전반에서 조급해지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소설이나 수필보다 짧으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 편의 영상시 혹은 방송광고 같은 포맷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나라 방송계도 ‘한뼘 드라마’나 좀 더 짧은 다큐멘터리 형식이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어들의 구매 욕구 파악해야
얼마 전 우리나라 드라마를 자주 구입하는 10여 명의 바이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듯하다. 여기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방송 콘텐츠를 구매해 가는 바이어의 대부분은 드라마 장르에 가장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우리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상품가치가 있고 소구력이 있다는 뜻이지만, 다큐멘터리 등 기타 장르는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프로그램 구입 시 드라마의 길이와 내용을 먼저 따져보고 그 다음으로 출연자에게 의미를 두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바이어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내용과 주제를 우선 고려하기 마련인데, 초기 단계에서는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알려진 스타 연기자의 출연 여부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탄탄한 스토리, 즉 내용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포맷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시청 패턴이 다르고 편성 스타일도 다르다는 점에서 반드시 어떤 방식이 좋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20부작 내외의 길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류 열풍 속에 우리 드라마의 상품 가치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중국처럼 쿼터 제도를 운영하는 특수한 상황 외에는 장편 드라마 심지어 장편 사극류도 거의 제한없이 수출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대체로 1~2부작으로 끝나는 작품보다는 10부작 이상의 대작을 선호하고, 애니메이션은 전통적으로 13, 26, 39, 52부작 등 에피소드가 긴 작품일수록 어느 정도 성공한 작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방송 콘텐츠를 제작해서 국내외의 시청자들에게 선을 보이는 것은 음식점에서 요리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놓는 것과 비슷하다. 음식점 경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경쟁력있는 솜씨를 확보한 후에야 비로소 이를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방송 콘텐츠도 사람들이 보고싶어 하고 재미있어 할 내용을 제작해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마케팅과 홍보 활동이 들어설 여지가 생긴다.
한편 킬러 콘텐츠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 성공 모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흥미롭고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그것을 전달하는 잘생기고 섹스어필한 연기자들이 작품을 받쳐주며, 거기에 영상미와 음악적 요소가 보편적 가치를 키우고 드라마다운 맛을 더해주는 작품이다. 시청자들은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에 선악의 갈등 구조가 명확하고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행복한 결말을 갖춘 이야기 구조를 선호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 나라의 드라마와 영화는 주인공이 불치병 아니면 교통사고로 죽는 새드 스토리를 유난히 자주 다루는데, 이는 시장 소구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콘텐츠 수입국 국민들에게 ‘한국엔 불치병이나 사고가 많다’는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이것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그간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jbl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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