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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 부는 변화의 태풍

뉴스룸에 부는 변화의 태풍

이 희 용  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

 

신문사 편집국에 거센 변화의 태풍이 불고 있다. 90년대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한 그동안의 모든 바람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듯한 속도와 강도를 지니고 있다.

온-오프라인 뉴스룸을 통합해 기자들마다 마감시간도 없이 쉴새없이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물론 기자들마다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를 지급받아 텍스트와 사진, 동영상까지 아우르는 멀티미디어형 기자로 변신하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와 함께 데스크를 지낸 부장급ㆍ부국장급 기자를 현장에 내보내는가 하면 팀제와 에디터제를 도입해 수직적 피라미드형 조직을 수평형 협업 체제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공채 기수 중심의 순혈주의를 깨고 경력기자 모집에 나서는 것도 새로운 흐름. 특히 한겨레신문은 분야별 전문가와 함께 시민운동가에까지 문호를 개방했다.

지면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뉴스 밸류의 판단 기준이나 전달 방식이 일방성에서 벗어나 쌍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과감하게 뉴스통신(연합뉴스)에 의존하고 기획기사와 탐사보도에 치중하는 ‘선택과 집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뉴미디어의 등장, 정부 부처 기자실 개방 등에 따라 연공 서열식 문화와 고정 출입처 중심의 취재 관행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편집국 시스템을 뿌리부터 바꾸지 못한 채 대증요법에만 치중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계에서도 신문들이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불어닥친 미디어 지형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다가 영상세대의 증가와 시민기자의 등장,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강세 등에 따라 뉴스 소비행태가 급변해 결정적인 위기를 맞자 이대로 가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서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을 택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면 지상파방송 뉴스룸은 이 같은 변화의 태풍에서 비켜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방송사들도 팀제 도입(KBS), 전문기자 확대(MBC), 시민기자형 U포터 채용(SBS) 등 보도국에 새 바람을 넣기 위한 다양한 실험에 나서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실시간 뉴스도 강화하는 한편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뉴스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역시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뉴스 시장의 변화 추세에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따라가려는 태도처럼 비치고, 뉴스룸 조직과 함께 뉴스 포맷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혁신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방송은 신문과 달리 오래 전부터 실시간에 가깝게 기사를 생산해왔고 영상과 텍스트를 결합시킨 멀티미디어형 뉴스를 지향해왔다. 경영적 측면에서 따져볼 때도 신문사보다는 전반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영상세대의 증가 추세도 신문보다는 방송에 유리한 조건이며, 뉴미디어에도 방송이 훨씬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낙관할 수 있는 사정은 못된다. 지상파방송의 뉴스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여왔다. 특히 젊은층들은 TV와 함께 자라온 영상세대라고 하지만 지상파방송 뉴스를 외면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뉴스를 수용하는 방식이 유행처럼 자리잡고 있다.

더욱이 오마이뉴스의 ‘YS 고대앞 사건’보도처럼 이제는 ENG나 중계차 없이도 누구나 생방송을 시도할 수 있다. 오히려 지상파방송은 대형 재난재해 등이 아니면 오마이뉴스처럼 15시간씩 중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지금까지는 케이블TV나 위성방송 등의 뉴미디어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해도 DMB 보급이 확대되고 IPTV와 와이브로가 자리잡으면 신문과 지상파TV 위주의 뉴스 시장은 급격히 무너질 것이다. 틈새시장을 겨냥해온 인터넷방송도 언제 전면전에 나설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상파방송의 보도국은 연공 서열식 피라미드형 조직, 고정 출입처 위주의 취재 시스템, 프로페셔널보다는 제너럴리스트만 양산하는 부서 순환제, 공채 중심의 순혈주의 문화 등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뉴스 화면에서도 중견급 남성 기자와 젊고 아름다운 여성 아나운서의 코앵커 시스템, 스테레오타입화된 앵커의 코멘트와 기자의 리포트, 판에 박은 듯한 아이템 선정과 편집 방식, 비슷비슷한 취재원 선정 등이 크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간혹 파격적인 코멘트나 아이템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수반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회성 일탈에 그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자극적인 화면을 동원하거나 연성 주제를 앞 부분에 배치했다가 ‘시청률만 의식한 선정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지상파방송 보도국은 경쟁상대를 다른 지상파방송 보도국으로만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때 만월을 자랑했던 신문은 하현을 지나 그믐으로 향하고 있고, 곧 환한 빛을 발할 거라던 뉴미디어들은 아직도 미미한 초승달에 머물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러다보니 경쟁 방송사보다 조금이라도 시청률을 높이는 일에만 매달릴 뿐 근본적인 변화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꺼번에 바꾸면 기존 패턴에 익숙한 시청자들을 잃을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시청자들이 호감을 느낄 만한 앵커를 내세우거나 좀 더 눈에 띄는 아이템과 화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경쟁을 펼치는 것 같은 양상도 띤다. 뉴스 시작 전 일일드라마끼리 벌이는 전초전에 희비가 교차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믐으로 향하는 신문은 더 이상 회생할 가망이 없는 것일까. 뉴미디어는 영원히 초승달에만 머물러 있을까. 시민기자들을 계속 아마추어라고 무시해도 좋을까. 이미 실시간 뉴스시장에서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공룡이 돼 있는데 전체 뉴스 시청률은 떨어져도 경쟁방송사만 누르면 되는 일일까.

이 모든 질문에 한꺼번에 답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변화를 시도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고민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의 변화 태풍을 피해다니기만 하다가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신문사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heeyong@yna.co.kr(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