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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피플

해체위기 중국 조선족 사회-돌파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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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길림시 룡담구 아라디 (조선족) 관리구 마을. 이 마을 토박이 김동곤(65) 노인의 딸과 사위는 벌써 6년째 한국에 가 있다. 돌이 지나자마자 부모와 헤어진 손자 설홍이는 지금까지 부모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작년 소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김씨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딸과 사위가 무슨 일을 하는지?통?모른다고 한다. 그저 일년에 두어 번 전화 통화가 고작이라고.




 
“거 여기저기서 말들을 들으니께 한국정부에서 5-6년 이상 장기 체류한 조선족 노무자들을 올 해 안으로 다 강제로 내쫓는다고 하던디 그게 참말이요? 그러면 우리 딸하고 사위도 조만간 돌아와야 할 것인디. 지금 돌아오면 말짱 도루묵이요. 5-6년 동안 돈도 크게 못 벌었나 봅디다. 얼마 전에는 애 아버지가 크게 차 사고가 나서 그나마 얼마 안되는 돈도 다 까먹은 모양이요. 여기서 갈 때 (브로커에게) 소개비조로 인민폐 10만원(한화 약 1500만원)을 주고 갔소. 그것도 다 빚이었제…”
김 노인의 갑갑한 속내는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고스란히 묻어났다. “돌아와도 살길이 막막하긴 마찬가지요. 뼈빠지게 농사지어 봤자 한 해 벌어 한 해 먹기도 바쁘니 누가 농사를 지을라고 하겄소. 이 마을 조선족들도 다 농사를 안지을라고 하요. 젊은 사람들은 다 돈벌러 나가고, 있는 땅뙈기는 그냥 놀리기 아까우니까 한족들한테 소작을 줘요. 이러다가는 땅도 잃고 한족사람들 노예되는 거 아닌지 몰러. 그래도 어떻게 살길을 찾긴 찾아야 할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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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리봉동 일대와 안산의 공단지역 등 한국 내 조선족 타운에는 연초부터 강한 한파 (韓波)가 몰아쳤다. 조만간 강제출국 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해 7월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 개선방안은 불법체류자 전원추방과 산업연수제 확대를 골자인데 발표 이후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재검토를 요구하자 지난해 11월 말 다시 수정안을 내놓았다. 내용은 ‘불법체류 기간이 3년 미만인 외국인 노동자는 출국을 1년 유예하고, 3년 이상인 불법체류자들은 3월까지 전원 출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강제출국 방침은 조선족들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치는 꼴이다. 거액의장리돈(빚)을 얻어 한국으로 온 조선족들에게 보통 2-3년은 빚 갚는 기간이고 3년 이후부터 알곡 같은 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코리안 드림‘의 종지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번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힌 사람은 다시 한국행 비자를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03년 새해부터 한국의 조선족 사회는 이렇게 술렁였다.
중국의 조선족 사회도 술렁이고 있다. 그러나 술렁거리는 이유는 한국의 조선족 사회와는 다르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갑갑한 코리안 드림 대신 이들은 중국에서 살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조선족 이주사 150여 년이래 최초로 지식인과 기층간부, 기업가 그리고 한국인 등 조선족 문제와 관련한 모든 민족 역량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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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민인 우리가 자기 땅에서도 지위를 잃어버린다면 (한국으로) 산돼지 잡으러 갔다가 집돼지 잃는 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동포라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잘해 달라고 졸라대는 것은 더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이제 졸라댈 생각을 하기보다 중국이라는 광활한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한국의 소외계층과 북조선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하며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월9일부터 12일까지 중국 길림성 장춘시에서는 ‘제 9회 조선족 발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과 워크샵’이 열렸다. 지난 94년부터 중앙민족대학교와 조선족 경제인들은 중국 조선족 사회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연례 심포지엄을 개최해 왔다. 이번 심포지엄의 가장 큰 의의는 그동안 지식인 중심으로 문제를 인식하던 차원의 심포지엄이 아니라 이번에는 각 부락의 촌장과 기층 간부들이 대거 참여해 조선족 사회의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과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여기에 한국의 생태농업 지도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댄 최초의 ‘중한 공동심포지엄’이라는데 있다. 이번 대회를 주관한 중앙민족대학교 한국문화 연구소의 객원연구원 임진철(47)씨는 “중국 조선족 역사에서 촌장 등 기층간부들이 다 함께 모인 적이 없었다. 이번 대회는 그 자체가 엄청난 성과다. 심포지엄의 주체가 촌장이라는 것, 그리고 조선족 기층간부가 중심이라는 것이 바로 획기적인 사건이다. 즉, 지식인과 기층간부, 기업인, 그리고 한국인 등 조선족 문제와 관련해 모든 주체들이 모여서 조선족의 현실과 문제를 진단하고 분석하면서 향후 나아가야 할 총 전략을 수립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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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포지엄의 발제자인 이동춘(48, 제 9기 중국전인대 대표, 백두산 집단 회장)씨는 시종일관 “중국 조선족들은 철저하게 자신이 ‘중국공민’이라고 인식해야 하며, 중국땅에서 조상 대대로 지켜온 ‘땅뙈기’를 매개로 새로운 살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춘 씨의 발제내용은 다른 발표자들보다도 훨씬 더 ‘살벌’했다. 심지어 현재의 조선족 사회를 ‘집단적으로 병든 군체’로 비유하며, 한국의 불법 체류 조선족들의 문제를 “사탕 달라고 우는 애기 가엽다고 계속 사탕을 주면 애 버리는 것이고 이빨 다 썩게 하는 것”이라고 조선족사회와 관련한 한국의 시민단체를 향해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이동춘씨의 이런 문제의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조선족은 (한국에) 나간 사람보다 (중국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더 많고, 나갔더라도 다시 돌아와야 할 처지이며 이들의 영원한 조국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처방보다 중국에서 장기적인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씨의 지론이다.




 
지금까지 조선족의 문제는 이동춘씨 지적처럼 흔히 한국에 가 있는 약 20만 가량의 노무인력 체류자들의 문제로만 국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 간 조선족은 중국 조선족 200만명 중 10%에 불과하며 이들 10% 역시 결국 돌아와야 한다. 그러므로 중국 땅에 남아 있는 대다수 조선족의 살길을 찾는 것은 바로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돌아올 길을 열어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동춘 회장을 비롯하여 이번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제는 중국에 있는 90% 조선족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도달한 결론은 바로 ‘뭉쳐서 살자’는 것이다. ‘조선족 집중촌 건설’은 이번 심포지엄의 큰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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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1월부터 중국 길림성의 대표적인 조선족 신문인 ‘길림신문’은 ‘조선족 집중촌’에 대한 기획기사를 1년여 동안 연재했다. 이 기사를 담당한 한정일 기자는 “조선족 중심촌들이 해체되고 붕괴하는 것을 더 방치하다가는 중국 조선족사회 전체가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심각한 위기 의식이 조선족 집중촌 건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싹텄다"고 설명한다. 이 기사를 연재한 이후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큰 반향이 일기 시작했다. 길림시 금풍촌(金豊村)은 이러한 반향의 정도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금풍촌은 중국 심양의 만융촌과 더불어 도시근교형 집중촌의 대표적인 모델로 꼽히고 있는 마을인데, 지난해 ‘길림신문’에 이 마을과 관련한 기사가 나간 이후 촌민위원회 사무실에 문의전화가 폭주했다. 이 마을 권기동 서기는 금풍촌을 조선족 집중촌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금풍촌은 다른 조선족마을보다 조건이 낫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하게 사람이 빠져나가 해체 위기를 겪었다. 지금도 전체 370여 가구에 인구 1,248명인 이 마을 주민들 중 200명 이상이 한국에 가 있다고 한다.
“20년 전만 해도 마을이 북적북적 했다. 학생수도 320명 정도였고 그중 100여명 정도가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점점 한국으로, 도시로 돈벌이 나가면서 인구도 줄어들고 학교도 망할 지경이다. 현재 남아있는 학생은 50여 명이다. 길림시에도 원래 157개의 조선족 학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40여 개 정도만 남았다. 그나마 3년 후에는 또 20개가 없어질 예정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학교가 없어 한족학교로 가고 있다. 우리 마을도 이러한 문제들이 누적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족 집중촌을 만들자는 목소리들이 나온 것”이라는 것이 권 서기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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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집중촌 건설을 위한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간 금풍촌은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과 토지, 마을의 잉여노동력을 활용해 기업들을 유치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미 200만 위안(한화 3억원)을 투자해 농업시범단지를 꾸려놓은 상태이고 조만간 중외합자 기업과 일본 독자기업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금풍촌 촌민위원회는 다른 조선족 촌들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한국으로, 도시로 나가면서 국가가 30년 동안 무상으로 불하한 토지들이 거의 불모지화하고 있는 상태라 이 ‘버려진’ 땅을 집체 관리하고 있다. 즉, 노는 땅을 기업 등에 임대하거나 농촌집체기업을 만들면 땅도 살리고, 일자리도 창출해 돈도 벌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땅을 산업기지화해서 조선족 집중촌을 꾸리고 있는 예는 심양의 만융촌이나 흑룡강성의 해림시 신합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조선족 마을 가운데 땅을 활용해 가장 성공적인 농촌집체기업을 만든 모델로 거론하고 있는 신합촌은 이곳에 ‘백두산 집단’이라는 집체기업을 만든 이동춘씨의 발상의 결과이다. 즉 도시에 근교한 지리적 여건을 활용하여 도시 인접지 땅을 폐경해 2, 3차 산업기지로 전환했다. 그리고 다시 그곳을 공업단지, 아파트 단지, 문화오락구역, 공원과 민속촌 구역으로 나누고 촌민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 후 재분배한 것이다. 심양시 만융촌도 이와 비슷한 발전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 조선족 집중촌 모델로 논의하고 있는 유형들은 이들 도시근교형 외에도 중국최대의 코리아 타운으로 유명한 심양의 서탑거리와 같은 도시중심형 집중촌, 길림시 아라디촌과 같이 도시외곽에 있지만 경제적 조건이나 주변에 중심적인 향진급의 집중촌들을 끼고 있는 중심촌형 집중촌등이 있다.
현재 백두산 집단의 이동춘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족 지도자들은 이러한 집중촌 건설 운동과 더불어 ‘중한간 합작교류를 활성화하는 온라인 창구’가 될 차이나-코리안닷컴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도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한중간 교류를 도모하면서 이러한 ‘교류의 힘’들을 조선족 집중촌 건설에 보태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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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선족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산업연수 인력의 확대나 체류기간의 연장 등 ‘한국에서 돈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중국공민’인 중국 조선족들의 문제를 동포라는 감상적 차원으로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모색하고 있는 집중촌 건설은 합리적인 해법 가운데 하나다. 한국의 두레마을이 연변 등지에 세운 대규모 생태농업단지는 조선족 집중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암시해 주고 있다. 생태중심의 선진 농법으로 고부가 가치의 농산품을 생산하는 것은 조선족 사회의 해체를 막고, 한국에서 돌아온 조선족들을 품을 수 있는 공동체 건설의 물질적 기반이 될 것이다.
중앙민족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의 임진철(47) 객원연구원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동북아 한민족 경제 네크워크’의 건설을 얘기한다. “21세기는 동북아의 시대다. 중국이 거대한 시장과 전 세계에 걸친 강력한 화교네트워크를 발판으로 부상하고 있듯이, 우리도 한민족의 경제네트워크를 형성해 동북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만일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다면 우리는 화교자본이나 유태인 자본 못지 않은 하나의 거대한 경제공동체를 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재외동포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점하고 있고, 21세기 초 강국으로 부상할 ‘중국’ 공민인 조선족 사회의 발전은 이러한 네트워크 형성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
심양시 근교에 자리한 대표적인 조선족 발전촌 중 하나로 꼽히는 만융촌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일하며 떳떳하게 살아갑시다’[Edition 40, 2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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