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 도연이에게!
자주 연락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항상 물가에 내놓은 녀석이라고 생각된다.
전화기 속의 친절한 아들처럼 여전히 잘 있지?
흠, 네가 벌써 25살이 되고 군인이라는 사실에 가끔은 놀라기도 한다.
네 어렸을 때의 감동과 추억이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상도동 장승백이의 산부인과에서 처음 본 너는 엄마 아빠에게 최고의 선물이었지.
꼬물꼬물 재롱을 피우고 유치원을 가고 그리고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과 책임감을 느끼던 시절이 참으로 좋았었다.
물론 아빠는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때라 네게 친절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엄마가 너를 아끼는 유리잔처럼 돌봤었지. 너는 어려서 잘 모르거나 기억나지 않겠지만 그 부분은 내내 미안하고 아쉬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옆에 있었다고 변명해 본다. 이런 아빠를 엄마는 “체~”하고 힐난할지 모른다.ㅎ
상냥하고 웃음이 많은 너는 아파트 주민들이 인사 잘하는 어린이로 알게 되었고,
학교 에서도 여러 가지를 잘 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로 때로는 약한 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정의감 있는 아이로 성장했던 것을 기억한다.
어린나이에 좀 멋짐이 날렸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어느 날 엄마가 네 걱정 때문에 얘기 좀 하자고 했었다.
애가 무엇 때문인지 공부를 하지 않고 다른 짓을 하는 것 같다고. 어려서부터 좀 더 자유롭고 감성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어 했던 엄마는
네가 잘못될까 싶어 걱정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마 그때 너는 너만의 세계에 빠졌고 게임에 홀릭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면 아빠의 소년시절처럼 공부가 모든 것은 아니라고 너만의 결정을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빠도 많은 부분을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했던 당찬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 전교 1등도 해본 적도 있을 만큼 알아서 공부했고
운동부 주전이기도 했고 학교 짱이기도 했지. 믿지 않겠지만.
그런 아빠의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조금 신중하게 너의 미래를 고민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믿고 놔둬보자는 것이었지. 우린 비교적 너를 억압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자유인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또는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초등학교시절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졌던 아빠의 인생역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러한 철학을 네게도 물려주고 싶었던 유산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성장통을 겪는 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다려주고 싶었다. 독립적인 사람으로 크기를 바랐었지.
그래서 유아시절부터 체벌이 아닌 대화와 설득이 우선이었고 이후에도 가능하면 가이드라인만 주고 자기 스스로 헤쳐 나가기를 바랐었지.
그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일이 되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엄하게 훈육하는 것이 옳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
조금 더 도와줬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미안함.
다행히도 엄마 아빠의 걱정만큼이 아니게 건강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너로 큰 것을 보면서 듬직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돌이켜보면 너란 녀석을 알고 있는 부모입장에서는 아쉬운 점도 많았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했던 것도 같고, 그래서 너의 큰 그릇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몰랐던 것도 같고...
엄마 아빠는 네가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 다만 네가 그것을 방기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었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 엄마 아빠가 조금 더 기대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때쯤 비로소 각자가 자기 자신을 돌이켜 봐야 할 때가 된 듯하다.
너도 제대하면 자기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해야 할 시점이 된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긴장되고 치열할 수밖에 없다.
우선 상해교통대학교는 졸업하고 그 이후는 어떻게 준비할지도 순전히 네 몫일 수밖에 없다. 아빠가 농담처럼 얘기하는,
“외국어를 잘하면 놀기도 좋고 얻어먹어도 넉넉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네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너를 중국에 보낸 것도 이유 중에 하나다.
중국이 너의 취향과 맞든 그렇지 않든 중국어는 네 삶에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아빠의 결정이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년간 투자했던 네 청춘과 시간과 노력이 무의미하게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
중국과 중국어가 네 삶에 자양분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빠도 요즘 다시 시작한 영어공부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처럼 특히 외국어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이유는 그것에 투자하는 시간이 네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자
시기이고 결국 너를 강하게 하는 무기가 될 것이라는 노회한 아빠의 예측이다.
이제는 칭얼대고 넋두리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이해하렴.
세상은 넓다. 그리고 너는 넓은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다. 좁은 이 땅에서 아등바등하는 것을 엄마, 아빠는 바라지 않는다.
네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 순전히 너의 의지에 달려있지.
네 스스로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이 너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엄마 아빠는 묵묵히 응원해 주고 싶다.
盡人事待天命이란 말처럼 무엇이든 아니, 가능하면 네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위해서 준비하면 좋겠구나.
실패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고 청춘을 보내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거야.
준비하고 도전해 보렴. 그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니?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성격을 만들고 성격은 인생을 바꾼다고 한다.
대충 머리가 크면 자기가 경험하고 배운 수준을 가지고 자신이 의외로 많은 것을 안다고 자부하기 쉽지. 그래서 고집이 생기기도 한다.
문제는 습관이다.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는 기준이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이뤄진다면 조금은 어설플 수밖에 없을 터.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오던 습관을 과감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아빠가 생각하는 그것은 ‘자신감’이라는 긍정적 에너지이지 싶다.
그동안 도연이가 스스로에게 내렸던 평가와 태도 즉, 루틴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는 습관이 필요할지 모른다.
자신감은 누군가에게 증명하는 것이 아니란다. 자기의 잠자고 있는 재능을 찾아내고 발전시키는 것이지.
그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일종의 책임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너는 더욱 크고 강해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여행을 꿈 꿨으면 좋겠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된 자만이 자만에 묶여 있는 자기 속박에서 벗어나리라’라는 말이 있다.
여행은 보다 넓고 높고 깊은 무엇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지.
물론 여행을 한다고 인생의 길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야.
여행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해보고, 나 아닌 세상의 무수한 이들의 삶의 흔적과 치열한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면서
시야를 넓혀 보라는 뜻이다. 여행을 통해서 무엇이 되리라는 판타지를 가질 필요는 없지만 길을 걸으면서 세상을 보고
그 속에서 너의 잠재된 삶의 용틀임을 보라는 것이다.
먼 거리를 걸으면 본능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아빠는 그런 경험을 꽤 했었지.
힘든 만큼 자기를 사랑하게 되고 난관이 생길 때마다 비상해지며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면 희열을 느끼고는 했었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듯 위험하고 짜릿한 경험을 통해 성숙하게 되지.
너도 그런 세상과 조우하고 네 스스로를 키우는 자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마 처음인 듯싶구나. 아빠가 아들에게 이렇게 장문의 글을 통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참으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그런 것이 문득 쑥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잘 자라주어서 크게 간섭하거나 잔소리가 필요 없었던 것도 이유겠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만큼 너는 컸고, 앞으로 그만큼 격동의 세상과 마주치게 될 너에게 예방주사 같은 잔소리를 조금 하고 싶었다.
아프지 말고 뒤처지지 않고, 주어진 자기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서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과 함께 더불어 살 줄 아는 소시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된다.
네가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이라면 엄마, 아빠는 항상 응원하고 곁에 있을 것이다.
봄이 참 좋다.
비록 군대에 있지만 봄에는 꽃을 보는 마음과 바람을 맞는 느낌을 상쾌하게 느껴보기 바란다.
세상은 어렵지만 아름다운 것도 많단다. 그것은 마음에 따라 보여 진다.
아름다운 세상을 많이 보기 위해 애쓰기 바란다.
아직도 조금은 어린 우리 아들 도연에게 엄마 아빠의 애정을 듬뿍 담아서!
2018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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