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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TV방송

[스크랩] 한국방송협회의 [방송문화]라는 발행물에 실린 글입니다....

[방송닷컴]

iTV 방송중단을 지켜보며

이 희 용 연합뉴스 문화부 차장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11시 10분. 인천시 남구 학익동 경인방송(iTV) 주차장에서는 200명 가량의 iTV 노동조합원과 프리랜서 PD, 구성작가 등이 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방송이 종료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애국가를 끝으로 방송이 완전히 멎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다가 끝내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들은 회사측이 직장폐쇄를 풀지 않은 채 사옥 출입을 막자 밖에서 고별집회를 한 것이다.

같은 시간 사옥 안 1층 스튜디오에서는 박광순 대표 직무대행과 비조합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종무식이 열렸다. 고별사를 읽은 박대행은 말을 잊지 못한 채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각을 끝으로 인천과 경기 지역의 UHF 채널 21번과 VHF 채널 4번에는 더 이상 방송신호가 흐르지 않았다. 다만 FM 라디오 90.7MHz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만 들려오고 있다. 97년 10월 11일 우여곡절 끝에 인천 지역의 유일한 민영TV 방송국으로 개국했던 iTV가 불과 7년 3개월 만에 종언을 고한 것이다.

iTV가 이처럼 쉽게 문을 닫을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배주주인 동양제철화학은 일부 주주들의 투자 의향서만 받아내면 재허가 추천을 해줄 것이라고 낙관했고, 노조는 지배주주를 퇴출시킨 상태에서도 방송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방송위원회도 iTV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조건부 재허가 추천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것일까. 노조가 밥을 더 차지하려다가 밥그릇을 차버린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방송사업자 자격이 없었던 지배주주가 심판을 받은 것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방송위원회가 올해부터 강화한 재허가 추천 심사의 희생양이 된 것일까.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설립 당시로 돌아가보자.

iTV는 인천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에 힘입어 2차 지역민방으로 출범했으나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SBS와 수신권역이 겹쳐 SBS 프로그램을 70∼80% 재송신하는 다른 지역민방과 달리 100% 자체 편성으로 프로그램을 조달해야 했으며, iTV의 프로그램을 다른 지역민방에 팔 수도 없었다.

출범 때부터 VJ(비디오저널리스트) 시스템 도입으로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는가 하면 이듬해부터 2년 간 미국 메이저리그 박찬호의 야구경기를 중계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3월 통합방송법 시행을 계기로 케이블TV를 통한 역외 재송신이 엄격하게 금지돼 지역적 한계가 뚜렷해졌다. 비슷한 시기에 경기 남부로 권역이 확대돼 회사명도 인천방송에서 경인방송으로 바꾸었으나 경영 여건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iTV는 811억 1천만 원의 자본금을 모두 소진했을 뿐 아니라 67억 원의 부채까지 졌다. 대표가 8차례나 갈리는 와중에 일관된 경영기조를 유지하지도 못했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해 노사간의 불신은 갈수록 쌓여갔다.

특히 지난해 2월 정계 진출을 계획하던 박상은 회장이 방송을 개인 홍보에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자 노조는 퇴진운동을 벌여 회장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비영리 공익재단 설립과 사장추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공익적 민영방송’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대한제당 등 주주들은 누적적자가 갈수록 불어나는 데다 노조의 요구도 높아지자 좀처럼 투자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방송위원회의 재송신 정책 변화로 올해 1월 26일 이후 케이블TV를 통한 역외 재송신이 가능해진 것도 이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동양제철화학은 투자 계획을 제출하기는 했지만 30% 지분한도에 묶여 있었고, 노조와 적극적인 대화 노력을 보이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 심사가 오히려 지배주주와 노조의 갈등을 부추긴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노조는 SBS와 강원민방이 그랬던 것처럼 이를 지렛대로 회사나 지배주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고, 지배주주는 지배주주대로 투자 유치를 내세워 노조의 발언권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26일 조건부 재허가 추천 방침을 밝히며 iTV에 경영개선 대책을 요구해온 방송위원회는 의견청취와 청문에서 주주들이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자 지난해 12월 21일 재허가 추천 거부를 발표했다.

방송계에서는 iTV의 퇴출을 계기로 재허가 제도가 요식행위에 머물러왔던 것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방송의 공적 책임, 지역과 사회 공헌, 재정의 건전성 등을 유도하는 수단이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심사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다 민영방송과 공영방송의 차별성이 없어 ‘방송 길들이기’ 논란이나 형평성 시비 등을 빚었다.

결정적인 문제점은 시청자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이다. 방송위원회는 사업자를 퇴출시키면서 정파는 막는 방법이 현행법에 없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적 미비점을 알면서도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씻긴 아이를 목욕물과 함께 내버리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표현하며 임시이사를 파견해 다음 사업자가 선정될 때까지 방송이 중단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운영재원은 방송발전기금을 쓰자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문제도 많다. 방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 제기 가능성도 남아 있으며 iTV 노사가 서로 제기한 민-형사상 소송도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새로운 사업자가 선정된 뒤에도 시설과 장비의 양도과정 등에서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iTV 폐업 이후 방송가에서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점쳐지고 있다. 이 지역에는 다른 지역보다 지상파TV 채널이 하나 더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당분간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첫번째다. 그러나 인천과 경기지역의 인구와 땅덩어리 등을 감안하면 언제까지나 민영방송 공백 상태를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두번째로는 권역을 확대해 제2의 SBS를 만드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는 SBS는 물론 MBC 등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설사 추진한다 하더라도 주파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렵다. 세번째는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외주전문채널이다. 문화관광부가 추진해온 외주전문채널로 대체하면 권역 확대는 비교적 어렵지 않겠지만 민영방송 공백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으므로 인천ㆍ경기지역 채널의 성격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현행 조건에서라도 하루 빨리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다. 이미 노조원과 비노조원을 중심으로 두 갈래의 재건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고 일부 기업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지난해 연말 반 년 간의 지상파 재허가 추천 절차를 마무리하며 큰 숙제를 끝낸 듯한 기분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어려운 숙제가 지워졌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천ㆍ경기 지역의 민영방송 공백 상태를 언제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하루속히 내놓아야 하며, 지금까지 드러난 재허가 심사제도의 허점과 법적 미비점 보완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출처 : 희망의 새 방송을 준비하는 사람들
글쓴이 : 곰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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