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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제철화학 전경 |
방송위원회가 iTV에 대해 재허가 추천거부 결정을 내린지 1년여의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방송위의 발표가 있던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미증유의 사태에 놀랐다. 그러나 이해당사자격인 경인지역 주민들을 포함, 대부분의 이들이 이 사태를 개별 언론사의 문제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10개월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학계·언론계·시민사회가 한 목소리로 ‘iTV 재허가 추천거부 사태는 사영화 된 민영방송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경인지역에 건강한 자본, 지역성을 담보할 수 있는 언론노동자, 그리고 시민사회가 조화된 참된 민영방송을 설립해 여타 지역민방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변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iTV노조(현 iTV 희망조합)다. 이들은 생계수단 상실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지역민방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해왔다. 그 결과 이번 사태의 종착점이 보이고 있다. 방송위가 올해 안에 경인지역 새 방송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하고, 그에 따른 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 수많은 저명인사들과 시민들이 건강한 경인민방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업권을 노리는 각 주체의 경쟁, 방송위의 석연치 않은 행보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이에 본보는 iTV노조의 활동을 중심으로 경인방송 사태를 정리, 과연 어떤 성격을 가진 주체가 경인민방을 운영해야 하는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총 3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iTV 재허가 추천거부 사태 통해 본 민영방송의 그늘
②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일구는 'iTV 희망조합' 사람들
③ 또 하나의 한겨레, 다시 쓰는 언론개혁의 역사지난 10일 본보에 ‘최대주주 사리사욕이 부른 경인민방 중단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된 뒤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iTV 대주주인 동양제철화학(DCC)에서 온 연락이었다.
처음에 “iTV에서 보도제작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DCC 관계자는 기사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그는 통화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iTV노조(현 iTV 희망조합)을 힐난하고 있었다.
그는 “대주주가 다 잘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어떻게 방송위원회에 회사의 문을 닫게 해달라고 한 노조의 행동을 정상적인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 채 “노조원들은 (대주주에게) ‘돈만 내놓고 나가라. 우리 마음대로 사장을 뽑겠다’고 했다”면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나라에서 어떤 미친 사람이 그냥 물러나겠느냐”며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동양제철화학에는 인천지역과 연관된 많은 현안이 있었지만,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방송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면서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동양제철화학만큼 공익적 민영방송에 충실한 대주주가 없다고 본다”며 말하기도 했다.
DCC 관계자와의 전화통화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경인지역 새 방송 창사준비위원회(창준위)에서 연락이 왔다. 박상은 전 iTV 회장이 창준위가 지지를 선언한 ‘Good TV 컨소시엄’에 대해 흑색선전을 벌이고 다닌다는 고발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창준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박 전 회장이 조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흑색선전의 핵심 내용은 ‘Good TV 컨소시엄이 반 기업적인 방송사를 설립하려 한다’는 것”이라며 “그 구체적인 사례로 100% 고용승계와 시민주 대표의 이사회 참여, 소유와 경영의 분리 등을 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나서 “이 같은 사항들은 방송위원회가 예비 사업자들에게 대부분 적극 권장하는 것들이며, 실제로 방송위원회가 마련한 심사기준에도 높은 점수가 배정되어 있다”면서, 구 iTV법인을 밀고 있는 박 전 회장에게 “처신과 언행에 신중을 기해주기를 정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창준위 비난은 어불성설
케이블TV나 위성DMB의 도입으로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도래했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의 채널선택권이 한층 더 넓어졌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의 전파는 여전히 희소하다.
따라서 전파는 국민의 것이라는, 전파 사용권을 위임받은 사업자는 국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명제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지상파방송이 공공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지상파방송의 공공성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시장논리에 따를 경우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공익적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지상파방송에서 드라마나 쇼·오락 등 소위 잘 나가는 프로그램 외에 노인·장애인·어린이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시청자의 액세스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방송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방송이 엘리트주의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과 동시에, 시청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방송에 담을 수도 있다.
과거 iTV는 이 두 가지 차원에서 공익을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경기·인천지역 시민들의 목소리를 방송에 주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했다. 또한 이들의 방송참여를 유도하는 데에도 인색했다. 자연스럽게 지역시청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고, 결국 방송계에서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 것이다.
최근 창준위와 ‘Good TV 컨소시엄’이 △100% 고용승계, △시민주 10% 모집 및 시민주 대표 이사회 참여 보장, △시청자 참여제도 마련, △사장공모 추천제 등에 합의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고, 방송을 지역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경인지역 사정에 밝은 방송노동자들에게 방송실무를 맡기는 일이 어찌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시민들의 방송참여 또한 방송의 공익성을 높이고, 경인민방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애착심을 고취시킨다는 점에서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사장공모 추천제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 iTV에는 자격 없는 인사가 경영진에 부임, 사적인 이해를 위해 방송을 이용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이 같은 폐해의 재발을 막고, 전문경영인에 의해 경인민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해나가자는 것이 어찌 잘못됐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경인민방을 지역주민들에게 되돌려주려는 모든 조치를 ‘반 시장적’이라고 폄훼하는 이들은 어쩌면 아직까지도 ‘방송은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방송을 통한 사리사욕 채우기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렇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만간 제2의 iTV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경인지역 시민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불행의 재발은 막아야 한다.
방송위가 언론개혁에 이바지하는 길은
결국 모든 것은 방송위의 선택에 달려있다. 새로 시작되는 경인민방이 과거의 불명예를 씻고 온전히 지역에 뿌리내리느냐, 아니면 또 다른 파국의 위험성을 안고 달려가느냐는 전적으로 어떤 기준에 의해 사업자를 고르는가에 좌우된다. 그만큼 방송위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iTV 사태를 거울삼아 지역에 보다 밀착한 방송, 사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방송에 주안점을 두고 사업자 선정절차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방송위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CBS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사실상 사업자선정에서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한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최근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그랜드 컨소시엄을 유도할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이 때문에 상황은 더욱더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재까지의 판세는 ‘6파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일찍부터 경인민방에 관심을 보여왔던 CBS와 중기협 외에 한국단자공업, 휴맥스, 제일곡산, 영안모자 등 경인지역에 근거를 둔 중견기업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면서 다자구도가 형성되는 양상이다.
향후 판세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아무 손에나 덥석 경인지역 민영방송 사업권을 쥐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때일수록 침착하게 기본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시청자의, 시청자에 의한, 시청자를 위한 방송을 하겠다고 밝힌 이들이 있다면 주목해봐야 한다. 이들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과거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또 다시 화려한 말에 속아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성원을 받으면서 함께 비전을 만들어 나가는 예비사업자가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다. 시민들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에 따른 판단은 그 무엇보다도 유용한 선택의 잣대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히 살펴보다보면 옥석은 가려지게 마련이고, 어떤 선택을 하든 뒷탈이 생기지 않게 마련이다. 이 평범한 노력만으로도 방송위는 언론개혁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방송위가 지금부터라도 두 눈을 부릅떠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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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준위 출범식 장면 ⓒitv 희망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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