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미디어 리뷰 : 방송] '대사대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라는 상투적인 말로는 올해의 충격을 설명할 수없을 만큼 정말 엄청난 일도 많았고 혹독한 어려움도 많았던 '대사대난(大事大難)했던 한 해'였습니다.
특히 MBC는 'X파일 사건'과 '황우석 파동'을 취재 보도함으로써 올해 10대 뉴스가운데 두 개나 만들어내는 뉴스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구찌 핸드백 스캔들'에다 '상주 참사'나 '성기 노출 사건' 등도 좀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을만한 일이지요. 방송계로 보자면 최문순 사장의 취임 자체도 파격적인 뉴스였습니다.
그 덕분에 방송 담당 기자들은 1년 내내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문화부가 마치 사건 부서가 된 듯한 느낌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차분하게 문제점을 진단하거나 사안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이를 둘러싼 목소리만을 중계방송하기에 바빴지요.
그 점을 보완하자고 한국언론재단이 마련한 이 글마저 뉴스만을 쫓느라, 아니면 네티즌의 항의를 의식해 비슷한 오류를 적지않게 저질렀음을 고백합니다. 안목이 모자라고 취재가 부족한 점도 인정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희망조합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올 한해 이 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골 주제는 경인방송(iTV) 재허가추천 거부와 그에 따른 경기ㆍ인천지역 새 방송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다른 사안들은 길어봐야 한두 달 안에 논의가 마무리되는 데 반해 이 문제는 1년 내내 끌고도 아직도해결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지난 12월 21일은 방송위원회가 iTV의 재허가추천을 거부하기로 결의한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이날을 맞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지요. 저도 지난 1년의 일이 눈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군요.
스스로 밥그릇을 차버렸다는 비난을 뒤집어쓰고도 1년 동안 튼튼한 대오를 유지하며 줄기차게 투쟁해온 희망조합 조합원들의 의지가 놀랍니다. 투쟁의 목표나 방법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일각에서는 iTV 재허가추천거부에 책임을 져야 할 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지만, 이들의 투쟁 의지 덕분에 어쩌면 더 늦어졌을지도 모를 새 사업자 허가추천 심사가 (경기북부까지 권역이 넓어진 상태에서) 이제라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방송기술인연합회 등 현업 언론인단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특정 사업자를 편든다는 부담을 안고서도 희망조합이 포함된 굿TV 컨소시엄에 지지를 표명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지요.
이들은 굿TV에 참여한 주주의 면면이나 굿TV 사업계획이 다른 컨소시엄보다 낫고 못하고를 떠나 희망조합이 지금까지 보여준 단결력과 의지라면 '공익적 민영방송'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걸 만하다고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와 함께 경인지역 민영방송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희망조합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 과실을 따먹게 되는 상황을 두고볼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방송위나 심사위원들은 이들의 이런 생각에 수긍한다 하더라도 사업자 선정 심사는 별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방송위는 이미 발표한 심사기준과 앞으로 심사과정에 영향을 주려는 성명이나 토론회 등이 방송위 독립성과 심사의 공정성을 해칠수 있다는 입장을 공보실장 명의로 출입기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특정 사업자를 지지하는 단체들은 더이상 '장외심판'의 권위를 인정받기는 어렵다는지적을 하기도 했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희망조합이 경인민방 사업자 선정 결정을 이끌어낸 점은 다른 컨소시엄들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적격 사업자를 가려내는 일과는 구별돼야 하겠지만, 조속한 방송 재개와 후유증 최소화를 위해서도 방송위가 청문이나 허가추천 과정에서 희망조합을 포함한 전직 직원들의 최대한 고용을 (사업자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권고하는 방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경인민방 신청 컨소시엄 사업계획 공개
방송위는 지난달 11월 24일까지 접수한 허가추천 서류에 대해 12월 19일 보완절차를 마무리하고 21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인터넷과 우편 등을 통해 시청자 의견을 접수하고 있습니다.
서류 보완절차에서는 굿TV의 지분율이 다소 바뀌었습니다. 당초 발표에서는 자본금 1천억원에 황금에스티ㆍ태경산업ㆍ기전산업 각 15%, 시민주 10.0%, CBS 9.9%였으나 자본금 900억원에 공동 1대주주 각 16.67%, CBS 11.0%로 조정했습니다. 이는 추후 시민주 공모를 통해 증자할 100억원을 미리 포함시켜 발표했기 때문인데 보정대상에 해당되는지 법률 자문을 거쳐 고쳤다고 하네요. 당초 사업계획서에도 이 내용은 모두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단자를 중심으로 한 나라방송(NBC)은 최초 납입 자본금을 575억원으로 써냈다가 3년 동안 투자계획 1천150억원을 한꺼번에 내겠다고 추가로 결의했으나 이는 보정되지 않았습니다. 방송위 관계자는 "추가 결의를 서류로 제출하지도 않아 보정 여부를 검토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방송위가 적정 자본금 규모를 제시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본금이 많다고 꼭 유리한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사업계획에 따른 자본금 규모의 적정성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시청자 의견접수를 위해 공개된 5개 컨소시엄의 사업계획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겹치는 내용이 많아 상대적으로 차별적인 항목만 예시하도록 하겠습니다.방송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요약문이 실려 있습니다. 차례는 방송위 서류 접수순입니다.
굿TV의 대표는 이정식 CBS 사장이고 편성 책임자는 iTV 편성제작국장과 보도국장을 지낸 KBS 출신의 안석복 씨입니다. CBS는 김학천 건국대 교수도 대외적으로는 공동대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CBS는 보도자료에서 사업권을 획득할 때까지만 청문출석 등 컨소시엄 대표 역할을 맡고 초대 사장은 사장추천위원회를 거쳐 선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CBS는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절차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보도자료와 달리 법인 설립 이전에는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사실상 초대 사장은 주주들의 동의하에 CBS 사장이 겸임할 것이라고 하네요.
굿TV는 지배주주를 두지 않고 이사회의 3분의 1 이상을 시민사회의 추천을 거친 사외이사로 채우는 등 모범적인 소유구조 분산체제를 확립했다는 점과 함께 시청자국을 두어 시청자 참여를 극대화한다는 것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역뉴스 취재인력 확충과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 확대 등도 눈에 띕니다. 개국 초기에는 약 250명의 정규직으로 출발해 3년 안에 과거 iTV 수준인 300명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하네요. 방송발전기금은 자본금의 5%인 50억원을 허가추천시 일시납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KIBS(경인방송)는 영안모자(30%), 경기고속(25%), 한주흥산(15%), 미디어윌(10%), 대우자동차판매(5%) 등이 주요주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본금은 1천억원입니다. 대표자와 편성책임자는 MBC 보도본부장과 대구MBC 사장을 지낸 김종오 씨와 MBC 편성제작국장과 외주제작국장을 역임한 오명환 씨가 맡았습니다.
KIBS는 사회공헌위원회를 설치해 시청자 권익 보호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합적으로 관리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시간대별 시청 수요에 근거해 구역(Zone) 개념으로 프로그램 편성을 차별화한다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또한 지역 종합유선방송국(SO)과 채널사용사업자(PP)와 프로그램을 공동제작하는 한편 지역민방과도 제휴해 나가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습니다.
방송발전기금 출연계획도 최초에 10%(50억원)를 출연하고 영안모자는 배당금의 3분의 1, 사내유보자금이 최초 자본금의 50%를 넘는 2008년부터 순이익의 5%, 최초 자본금에 도달하는 2010년부터 순이익의 10%를 매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NBC는 80년대 KBS 9시뉴스 앵커를 지낸 최동호 세종대 언론홍보대학원장과 KBS편성실장 출신의 최충웅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를 각각 대표와 편성책임자로 선임했습니다.
한국단자(26%)와 함께 독립제작사협회, 서울문화사, 삼천당제약 등이 주요주주를 이루고 있으며 최초 납입자본금은 575억원(3년 후 1천150억원으로 증자)입니다. 이미 알려진대로 NBC는 iTV와 시설ㆍ장비 양수도 양해각서를 맺었기 때문에 초기 자본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 자본금 규모를 상대적으로 적게 써냈다가 뒤늦게 주주들의 결의로 일시에 3년간 증자금을 납부하기로 했답니다.
NBC는 독립제작사 참여를 통한 외주제작 편성비율 확대와 지역영상클러스터 협력 강화를 제시하는 동시에 인천과 수원 등 6곳에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설치한다는 계획도 내놓았습니다. 일시 출연금으로는 납입자본금의 5%, 순이익 중 출연금으로 3%를 약속했지요.
경인열린방송은 별도로 사업을 준비해오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하림 계열의 제일곡산이 합친 것입니다. 신구종합건설, 경동제약, 농우바이오 등도 주요주주로 포함돼 있습니다. 대표자는 TBC, KBS, SBS를 거쳐 전주방송 사장을 지낸 백낙천씨, 편성책임자는 넷캐스트 대표와 교통방송 TV국장을 지낸 이은우 씨입니다.
경인열린방송도 사장공모추천제를 도입해 전문ㆍ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방안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기협중앙회 자체가 오너가 없는 단체이다보니 이 방안은 자연스럽게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본방송 대비 공익 프로그램 50% 이상, 소수계층 프로그램 25% 이상, 지역밀착형 프로그램 30%(주시청시간대 20%) 이상 등의 쿼터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방송발전기금으로 75억원을 출연하는 것과 별도로 시청자미디어센터 운영과 독립제작사 지원, 방송 관련 학과와 시민단체 지원 등에 향후 5년간 34억원 규모의 지원사업을 벌인다는 계획도 들어 있지요.
휴맥스가 이끄는 TVK에는 대웅제약, 테크노세미켐, 신성이엔지, 디에이피 등의 기업이 합류했습니다. 대표자는 KBS 편성본부장과 스카이라이프 방송본부장을 지낸 이흥주 씨, 편성책임자는 KBS 출신의 이신웅 전 디지컴코리아M&M 대표입니다.
기술 전문회사들이 모여 있다는 강점을 내세워 100% 디지털 방송으로 경기 남부에 형성될 경기 리써치팬타존과 산업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청사진과 함께 난시청 2년 안에 해소, 지역 IT기업들과 영상산업 결합, 디지털 프로세싱 앰프와 UHF 안테나 등 수신설비 지원, 디지털방송 기술연구소 등을 약속했습니다.
이와 함께 장애인 편의방송 비율 80% 이상, 지역밀착형 프로그램 50% 이상 등을 제시했고 HD방송에 적합하면서 해외 판매가 용이한 다큐멘터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방송발전기금 출연 규모는 허가시 5%입니다.
대충 윤곽은 그려지지만 어디가 딱히 앞서는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지요. 구체적인 우열은 심사위원들의 심사와 청문 과정에서 공정하게 가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희용[연합뉴스 대중문화팀장]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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