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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피플

환경특집-야생동물들 '비운의 로드킬'2

[환경 특집|변화된 도시생태계]

야생동물들 ‘비운의 로드킬’
23개 고속도로에서만 하루 평균 2.4마리 희생 … 이동통로 절대 부족, 그나마 유명무실
 

야생동물이 도로를 건널 수 있게 만든 이동통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선의’라면 최적의 위치에 설치되고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로드킬 방지를 위한 동물 이동통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으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환경부는 1998년 지리산 시암재에 이동통로를 시범설치한 뒤 올해 6월 말까지 전국 주요 도로에 92개의 이동통로를 설치했다. 그러나 위치선정 문제와 도로라고 하는 환경이 주는 이질감, 부실한 사후관리 등으로 인해 야생동물 이동에는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대표는 “로드킬 방지를 위해서는 로드킬이 발생하는 위치를 알고 이동통로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어떤 동물이 어디서 많이 죽는지를 알아야 로드킬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외국의 경우 이동통로를 만들려면 최소 1~2년간 로드킬 조사를 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92개 이동통로는 로드킬 조사 없이 만들어졌다. 전북지방경찰청이 2003년 3월부터 2년간 도내 주요 도로 로드킬 실태를 조사한 뒤 “이처럼 많은 수의 야생동물이 희생되는 것은 도내에 설치돼 있는 11개의 이동통로가 주변의 지형지물 및 산림식생과 맞지 않아 야생동물이 이용하기에 적당치 않기 때문”이라고 밝힐 정도다.

우리나라 100개 이상 생태계 파편으로 조각나

이동통로는 동물이 늘 다니는 길에 그들이 안심하고 맘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온 야생동물은 조심성이 많고 예민해 주변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접근을 꺼리는 특성이 있다.

백두대간에 설치된 이동통로를 방문해보면 주변 식생과 전혀 다른 영산홍, 누브라 참나무 등의 외래종을 심어둔 곳이 많았다. 그나마도 이 나무들은 다리 위에 심어져 있는 상태라 거의가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또 유도벽을 설치하지 않아 이동통로 앞뒤에서 야생동물이 죽은 경우도 있었다. 이동통로 위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등산객도 있었다.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김태경 사무국장은 “백두대간에는 12곳의 이동통로가 있으나 5곳이 야생동물 접근이 힘든 급경사에 설치돼 있고, 10곳은 사람들의 통로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었다”며, 또한 “백두대간 진고개에 설치된 야생동물 이동통로는 사람도 기어서 오를 수 없는 급격한 경사에 설치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통로를 건설한 뒤 야생동물 이동 모니터링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92개의 이동통로 가운데 백두대간 12곳을 빼고는 모니터링 장치를 단 곳은 아예 없었다. 백두대간 12곳에 설치된 이동통로도 1년에 한 번 모니터링할 뿐이다.

이동통로 업무는 건교부, 행자부, 환경부로 업무가 분산되어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야생동물연합 조범준 사무국장은 “위치선정과 설계 및 시공은 건교부가, 사후관리는 환경부가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당 고속도로 연장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6위다. 하지만 오늘도 건설 경기 부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도로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도로와 송전선로 등으로 인해 100개 이상의 생태계 파편으로 조각나 있다.

2004년 말 현재 전국의 도로 연장은 총 10만278km이다. 그러나 이동통로는 불과 92개뿐이다. 이동통로 폭을 30m라 봤을 때 2760m의 이동통로가 놓여져 있을 뿐이다(전국 도로 연장의 0.03%).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의 최태영 연구원은 “도로와 차량은 늘고 있지만 야생동물 이동통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로드킬 수와 지점을 파악하는 기초조사를 하고, 도로의 문제점을 발견해 구조 개선과 이동통로를 설치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해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