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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꾼 건축]
도강언(都江堰)
○ 중국을 통일한 치수(治水)의 힘
중국 청두(成都) 사람들은 자기네 도시를 이렇게 자랑한다. “치수(治水)는 고대 중국에선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이었다. 도강언(都江堰)을 가까이 둔 청두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육성과 산업화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 청두(成都) 사람들은 자기네 도시를 이렇게 자랑한다. “치수(治水)는 고대 중국에선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이었다. 도강언(都江堰)을 가까이 둔 청두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육성과 산업화에 매진하고 있다.”
청두의 중심가인 춘희로는 집안의 인테리어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미끈한 사각 타일을 길바닥에 깔고 그 밑에 전구를 박아놓아 밤하늘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시 외곽에선 디지털 산업단지가 가동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10년 전부터 ‘국토를 바꾸겠다’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부 대개발’ 또한 이 청두를 중심축의 하나로 삼고 있다.
도강언(중국 발음: 듀장안)이란 전국시대인 기원전 256년 촉(蜀: 당시 쓰촨 일대를 일컫던 이름)의 태수(지방장관)이자 천문지리에 능통했던 이빙(李氷)이 아들 이이랑(李二郞)과 함께 물살이 빠른 민강(岷江)의 물줄기를 바꿔 토사가 흘러드는 것을 막고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축조한 관개수로와 둑을 말한다. 이빙은 그 물을 끌어들여 농토를 만들고자 했으니 도강언은 ‘치수용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촉을 정복한 진나라가 통일의 주역이 되는 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 도강언의 물이 250리에 뻗치고 이로 인해 생겨난 경지 면적이 남한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1만경(頃)에 이르렀으니 풍요의 땅 쓰촨(四川)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차지할 수밖에.
도강언은 처음엔 전언 또는 김제(金提)로 불렀다. 김제란 금과 같이 귀중한 제방이라 하여 붙인 것으로 그 현장은 청두에서 서북쪽으로 50㎞쯤 떨어져 있다. 유네스코는 ‘고대인의 뛰어난 제방기술을 엿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도강언 지구는 크게 두 개의 지역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이빙 부자 등 도강언과 관련된 인물과 설화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이왕묘(李王廟) 지구이고 다른 하나는 민강 위에 놓인 흔들다리를 건너면 만나게 되는 수리시설이다.
수리시설 또한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어취(魚嘴)와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가 그것이다. 어취는 민강의 강심(江心)에 건설된, 물을 가르는 언제(堰堤)로 큰 물고기처럼 강 한가운데 길게 누워서 민강을 내강과 외강으로 갈라놓고 있다. 내강은 관개에 사용되고 외강은 홍수를 조절한다. 비사언은 언제의 중간에 건설된 홍수 배설구라, 장마철에는 넘치는 물을 배설하고 평소에는 바닥의 모래를 외강으로 흘러보내 보병구가 모래로 덮이는 것을 막는다. 물을 끌어들이고 또 흘러드는 물을 통제하는 보병구는 병목처럼 생겼다. 폭 20m의 이 보병구가 도강언의 중심부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물은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며 인체 역시 70%가 물로 되어 있다. 이는 물이 생명의 모태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인간의 생존, 나아가 민족의 번영은 물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로 판가름난다. 4대 고대문명이 모두 큰 강 유역에서 태어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므로 문명은 물과의 투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북중국을 흐르는 황하 유역에서 태어난 게 이른바 황하문명이다. 허난성(河南省) 정조우(鄭州) 교외에 조성된 황하 유람구는 고대 중국인이 벌인 물과의 투쟁을 잘 보여준다.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대우석상(大禹石像)은 유장한 황하의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멀리 보이는 북안(北岸)에는 강둑이 없어 수량이 조금만 늘어나도 침수될 것 같다. 치수가 완비되었다는 지금도 이럴진대 옛날에는 어떠했을까.
치수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는 유위적(有爲的) 작업으로, 중국의 경우 그 역사는 삼황오제 가운데 한 사람인 우왕(禹王)으로부터 시작됐다. 우는, 아버지 곤이 순 임금의 명을 받아 물길을 막는 방법을 썼지만 수리에 성공하지 못해 결국 수많은 자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보았기에 그와는 정반대의 방법, 즉 배수를 촉진시켜 드디어 수리에 성공했다. 그는 그 일로 무려 13년간이나 집에 들르지 못했다. 그만큼 치수는 힘든 일이었다. 그의 노력을 가상히 여긴 순 임금은 제위를 그에게 물려주었다. 이 때문에 중국인은 예로부터 ‘물을 다스리는 것이 천하를 얻는 것’이라고 하여 치수를 치국의 근본으로 여겼다.
도강언은 우왕의 수리사업을 현대적으로 활용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와 백제도 제방과 저수지를 축조했다고 되어 있다. 백제가 222년에 김제 땅에 축조한 벽골제는 지금껏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길이가 3240m라 당시로선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그들도 벼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다량의 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 신라·백제도 제방·저수지 축조
고대에는 농업용수와 식수의 확보 그리고 홍수 조절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토사의 유출 방지와 수운, 상수도, 전기용수, 공업용수 확보 등 그 용도가 다양화하면서 대규모 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16세기 스페인 땅에 축조된 알자만댐(높이 20m)은 콘크리트 중력댐으론 세계 최초였다. 규모 면에서는 1935년 미국 콜로라도주에 건설된 후버댐이 최고다. 높이 220m에 저수용량이 무려 370억톤에 달한다. 한강 상류의 소양강댐이 29억톤의 저수용량인 것과 비교하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후버댐은 수력발전과 관개용으로 축조됐다. 댐 안쪽으로는 콜로라도, 버진, 마리 등 3개의 강줄기가 후버댐에 막혀서 생긴 인공호수 레이크미드가 펼쳐져 있다. 새파란 물빛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여기서 북쪽으로 50㎞ 정도 떨어져 있는 라스베이거스는 이 댐의 덕을 단단히 보고 있다. 후버댐은 미국이 경제공황에 허덕이던 1931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36년에 완공되었는데 미국 경제를 부흥시키는 계기가 됐다. 댐의 이름은 이 일을 추진한 당시 미국 대통령 후버에게서 따온 것이다.
현재 가동 중인 수력발전소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는 이타이푸(Itaipu)댐이다. 브라질과 파라과이 양국이 파라나강에 18년에 걸쳐 공사하여 1991년 완공했다. 총 연장 7.37㎞, 높이 196m, 저수량 190억톤에 달하며, 18대의 발전기를 가동, 시간당 1만2600㎾를 생산하여 파라과이 전력의 80%, 브라질 전력의 25%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 토목학회(ASCE)는 이 댐을 ‘20세기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았다.
국제 대형댐위원회(ICOLD)의 추정에 의하면 세계 대형 댐의 거의 절반이 중국에 건설됐다고 한다. 그 다음이 5500개를 소유한 미국이며 러시아, 일본, 인도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런 중국이 20세기 말에 들어서도 대규모 댐 공사를 추진했는데,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대사업으로 일컬어지는 양쯔강의 삼협(三峽)댐 건설이다. 길이 2300m에 높이 185m이며, 공사기간만도 17년(1993~2009)이나 소요되는, 단일 댐 공사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소양강댐(높이 123m)과 비교하면 홍수조절 능력은 45배(삼협댐 222억㎥, 소양강댐 5억㎥)에 이른다.
댐이 완공되면 후베이성(湖北省) 싼더우핑(三斗坪)에서 쓰촨성 충칭(重慶)까지 뻗치는, 길이 662㎞의 거대한 호수가 탄생한다. 그에 따라 13개 도시와 150여개 마을을 포함, 632㎢의 육지가 물에 잠긴다. 급격한 경제발전에 따라 전력 수요 또한 폭증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정부는 댐 건설로 847억㎾의 전력이 생산돼 한시름 놓게 될지 모르나 그에 못지 않은 환경파괴와 오염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이집트의 나셀 대통령이 1960년대 강력하게 밀어붙여 건설한 아스완 하이댐이 그런 부작용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아스완 하이댐은 나일강 저지대의 홍수 조절과 관개용수 공급, 전력공급 등을 목적으로 건설됐다. 대부분이 사막이고 5%만이 경작지인 이집트에서 관개용수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댐 건설로 심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쌀과 목화를 수확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1년에 세 차례씩이나.
그러나 바람직하지 못한 생태학적 결과도 나타났다. 홍수 때 떠내려온 침전물로 기름졌던 땅은, 이제는 비료 없이는 수확이 보장되지 않는다. 필요한 비료를 얻기 위해 댐에서 얻은 전력의 상당 부분이 소비되고 있다. 토지는 쌓이는 염분으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양분이 풍부한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자 나일강 하구는 좁아지고 또 정어리, 고등어, 새우, 바닷가재 등의 어획량도 줄어 수산업이 고사 직전이다. 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고, 사막으로 스며드는 물과 증발되는 양이 많아 예상 저수량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의 물과의 전쟁은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서 쉬 해결되지 않는 모양이다. 모양만 바뀌어 재생산되는 것 같다. 흐르는 물을 순화시켜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했던 우왕의 치수나 도강언의 사례는 과거의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오늘에도 되살려야 할 원리란 생각이 든다. 전범(Model)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자료출처: 주간조선(권삼윤
역사여행가)] <자료정리: 부동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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